‘Manny being Manny’로 유명했던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이유가 참으로 가관이다. 도핑테스트 결과 또 한 번의 양성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란다.
사실 은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이번이 두 번째인 라미레즈는 100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게 되어 있다. 올해 39살의 선수에게 그만한 징계는 그 자체가 은퇴나 마찬가지. 라미레즈의 은퇴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던 셈이다.
라미레즈는 2009년 5월 처음으로 도핑테스트에 걸렸을 때만 해도 ‘실수’였을 뿐, 자신은 금지약물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었다. “최근 건강 문제로 의사를 찾았는데 의사가 준 약이 불행하게도 약물규정에 금지되는 것이었다”는 것이 라미레즈의 구차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그 해 7월에 2003년에 대대적으로 실행했던 도핑테스트 양성반응 선수 명단에 라미레즈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스>를 통해 확인되면서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혔다.
당시 라미레즈의 보스턴 시절의 팀 동료인 데이빗 오티즈도 함께 걸려들었는데, 그는 평소 자신은 깨끗한 척하며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비롯해 스테로이드와 관련된 선수들에게 거침 없는 독설을 날렸던 장본인이라 그 충격이 더 컸다. 결국 보스턴은 ‘밤비노의 저주’를 ‘스테로이드의 힘’으로 깬 셈이다.
1996년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활약하기 시작한 97년 이후 한국의 야구팬들 역시 메이저리그 야구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필자 역시 그때부터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열성적인 팬이 되어있었다.
그 이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만 했던 이름이 바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매니 라미레즈라는 두 슈퍼스타의 이름이었다. 한 명은 5툴 플레이어의 대표주자로, 다른 한 명은 찬스에 강한 특급 거포로 명성을 날렸다. 둘은 90년대 후반 이후의 메이저리그는 그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드리게스는 박찬호의 동료로, 라미레즈는 김병현의 팀메이트였다. 그 덕에 그들은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내의 메이저리그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둘을 비교하는 글이 게시판 전체를 가득 메웠을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둘 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전성기 시절 자신의 힘에 +@를 더했음이 드러났다. 그들만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선수들이 금단의 영역인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고, 한두 명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미국은 물론 한국의 야구팬들도 큰 혼란을 겪었다. 결국 이들에 대한 애정이 눈 녹듯 녹음과 동시에 메이저리그를 향한 한국 팬들의 관심도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했던 한 사람의 팬으로서 지금과 같은 사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프로 스포츠는 선수와 팬이 신뢰의 관계로 끈끈하게 엮여야 하는데, 지금은 선수는 팬을 속이고, 팬들은 선수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긋지긋한 스테로이드 파문.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것은 메이저리그와 팬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대체 이 끔찍한 악몽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팬들은 누굴 믿으면 좋단 말인가? 20대 시절의 순수했던 로망이 시간이 가면서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이 느낌,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S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