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두산의 2011년 첫 번째 맞대결은 올 시즌 첫 무승부라는 결과로 끝났다. 점수는 양 팀 모두 4점씩 밖에 얻질 못했지만, 경기 내용 자체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몇 있었고, 그 부분이 못내 찜찜하게 느껴진다.
▲ 전준우의 중견수 기용, 변화된 수비 라인
이날 롯데의 선발 라인업은 앞선 7경기와는 전혀 달랐다. ‘김주찬(우익)-조성환(2루)-홍성흔(지명)-이대호(1루)-강민호(포수)-전준우(중견)-문규현(유격)-정보명(좌익)-황재균(3루)’으로 구성된 라인업은 1번부터 9번까지 죄다 우타자로 이루어졌다. 상대 선발인 좌완 이현승을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타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수비에서의 이동이다. 전준우가 올 시즌 처음으로 중견수로 출장했고, 황재균과 문규현이 3루와 유격수로 동시 출장했다. 이승화의 타격 부진이 심각하고, 그에 따른 비난 여론이 일자 양승호 감독이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승화의 빈자리는 정보명이 대신했다.
하지만 결국 이 변화는 경기 내내 롯데 야수진의 수비 불안을 야기시켰다. 전준우와 황재균은 이미 스프링캠프 이전부터 포지션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전준우의 경우는 중견수 수비 연습이 턱없이 부족했다. 연장전에서 멋진 송구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 하나의 플레이가 좋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익숙하지 않은 수비 진용이 구축되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는 바로 ‘약속된 플레이의 실종’이다. 경기 내내 롯데의 야수들이 콜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로 충돌할 뻔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내야에서도 문규현과 조성환의 실책이 속출했다. 수비가 불안한 와중에서도 두산의 타선을 4점으로 막아낸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일부 팬들은 이승화가 빠지면 타격에서의 문제가 모두 해소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이 경기에서 롯데가 얻은 점수는 연장 12회까지 모두 합쳐서 4점에 불과했다. 아무리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우타자만 가득한 라인업은 시간이 지나면 공략법이 나오기 마련이다. 경기 초반 이현승을 두들겨 3점을 뽑은 것은 좋았지만, 그 후로는 결국 점수를 제대로 뽑지 못해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르시아의 공백이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칠 줄은 미쳐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성적과 관계 없이 롯데의 중심 타선에 좌타자가 한 명 포진한다는 것만으로도 가르시아는 ‘존재의 가치’가 있었다. 롯데 입장에선 어떻게든 손아섭이 최대한 일찍 복귀하길 바래야 할 것이며, 이승화의 타격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박종윤을 중용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 양승호 감독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
양승호 감독은 현 시점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는 이승화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고, 전준우를 중견수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승화 보다는 못하지만, 전준우는 중견수로 상당히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는 선수다. 그럼 컨디션에 따라 유격수에는 황재균-문규현, 3루에는 황재균-이대호, 1루에는 이대호-박종윤을 다양하게 기용하며 라인업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어떻게든 이승화가 살아나길 기대하고 기존의 라인업을 고집하는 것이다. 어차피 첫 번째 방법 역시, 겨울 동안의 준비가 없었던 만큼 확실하게 정착되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기존의 틀을 깨지 않는 상황에서 이승화 한 명에게 기대를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면 적응하기까지 약간의 시행착오는 각오해야겠지만, 적어도 공격과 수비에서의 변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성공했을 때의 이점이 극대화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승화가 끝까지 살아나지 않으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첫 번째일 때 롯데의 전력이 60~80점 사이를 오가며 안정을 추구한다면, 두 번째를 선택했을 때는 변수가 많아 50~90점을 오르내린다고 할까? 진정 우승이 목표라면 두 번째 방법을 택해서 어떻게든 이승화를 살려야 할 것이고, 작년보다 나은 성적(플레이오프 진출)으로 족하다면 첫 번째를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되든, 두 번째가 되든, 고정된 라인업을 실전에서 한달 이상 운용하여 그것을 확실히 정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이드를 통해 왼손 타자를 보강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제외했다.
▲ 끝내기 찬스에서 강민호 번트? 이건 아니잖아
양승호 감독은 3-4로 뒤지고 있던 9회말, 홍성흔의 볼넷과 이대호의 안타로 만들어진 무사 1,2루의 찬스에서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지난해까지 로이스터의 야구에 길들여져 있던 대다수의 롯데 팬들은 그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무사의 끝내기 찬스에서 강민호에게 번트라니!
강민호는 이 경기 이전까지 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27타수 11안타 .407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로 앞 경기서는 올 시즌 첫 홈런을 신고하기도 했다. 앞선 타석까지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 방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민호에게 양승호 감독은 번트를 지시했고, 그것은 강민호의 번트 미숙과 이인구의 실책이 겹치면서 최악의 결과가 되고 말았다.
무조건적으로 번트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시점에서 양승호 감독이 ‘강민호의 번트 성공률을 몇%로 예측했느냐’다. 그 상황에서 번트를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 이 작전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강민호는 로이스터 감독이 재임하던 지난 3년 동안 딱 한 번 번트를 시도했고, 실패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강타자이자 찬스에 강한 강민호에게 굳이 번트를 지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만약 지시한다 하더라도 성공률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이대호-가르시아 0번, 홍성흔 1번) 헌데 양승호 감독은 그런 강민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과연 강민호가 지난 3년 동안 번트 연습을 얼마나 했을까? 감독이 바뀐 후 야구 스타일이 바뀌었다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강민호가 번트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그는 익숙지 않은 번트를 대느라 본의 아닌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은 2루 주자 이인구가 횡사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비록 3할을 치고 있다 해도 잔기술에도 능한 김주찬이나 황재균에게 번트를 지시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실행할 능력이 충분한 선수들에게 작전을 거는 것은 얼마든지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전에 대해 팬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공’이라는 결과가 모두 해결해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강민호의 번트 작전은 애당초 그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강공이 아닌 번트를 택하는 것은 그것이 진루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번트 성공률은 대략 70~75% 정도. 안타를 통한 진루 확률 보다는 훨씬 높지만, 실패 확률도 최소 25% 이상 존재한다. 번트가 언제나 100% 확실한 작전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도 평소에 번트에 능한 선수들이 많이 시도한 결과가 그 정도다.
발 빠른 김주찬이 지난 3년 동안 기록한 번트 성공률이 63%고 조성환도 64%에 불과하다. 그럼 강민호의 번트 성공률이 얼마나 될까? 한 50% 정도? 고작 그 정도의 확률을 얻기 위해 아웃카운트 하나를 감수하고 찬스에 강한 3할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양승호 식의 야구’를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스타일을 넘어 상식을 파괴하는 선이어선 곤란하다. 롯데 구단은 ‘로이스터의 재미있는 야구’를 포기하고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그 후임자는 재미를 포기한 대신, 반드시 ‘승리’라는 결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번처럼 실패가 뻔히 보이는 작전으로 팬들에게 경기 내용에서의 재미와 승리가 가져다 주는 재미를 모두 빼앗아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양승호 감독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기에, 더더욱 지금과 같은 결과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준비되지 않은 작전은 팬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일부 팬들의 거센 비난 속에서도 지역 팬들을 비롯한 상당수의 야구 팬들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승리라는 결과를 통해 자신의 야구를 관철시키는 힘’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스포츠 조선, 롯데 자이언츠]
P.S. 다음은 각 상황별 번트와 강공 이후의 평균득점과 득점확률을 나타낸 것이다. 무사 1,2루 상황에서 득점에 성공할 확률은 번트나 강공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평균득점은 큰 차이를 보인다. 1득점만으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면 번트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홍성흔과 이대호를 이미 교체한 상황에서 반드시 역전에 성공해야 했던 롯데의 입장이라면 강공을 택해야 했다. 더욱이 그 타자가 강민호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사 1루
번트 - 평균 0.65점, 확률 37%
강공 - 평균 0.93점, 확률 45.5%
무사 2루
번트 - 평균 0.97점, 확률 64.4%
강공 - 평균 1.13점, 확률 64.9%
무사 1,2루
번트 - 평균 1.32점, 확률 68.7%
강공 - 평균 1.86점, 확률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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