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복귀한 이혜천 선수에게 김경문 감독은 선발 중책을 맡겼다. 일본으로 진출할 때부터 일본에서 선발로 활약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차례 내비췄던 것(그렇기에 야쿠르트를 선택)으로 돌이켜봤을 때 이혜천 역시 선발 보직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감독은 그런 그를 로테이션에 포함시켰고, 개인적으로 달갑지는 않았지만 본인이 원했고, 감독 또한 그렇게 해주길 바랐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이혜천은 나의 바람대로 불펜으로 보직이 변경되게 된다.
일단 이것은 이혜천의 기량을 폄하한다거나 그를 하찮게 봐서가 절대 아님을 일러둔다. 그저 그의 투구 유형으로 봤을 때 분명 그는 선발보다는 불펜이 어울리는 선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성기 시절 김병현이 마무리 보직을 버리고 무리하게 선발 진입을 노릴 당시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팬들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이혜천이 불펜으로 합류하게 됨에 따라 두산의 불펜진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정재훈, 고창성, 임태훈 그리고 최근에 불펜에 합류해 주력 투수들의 체력소모를 덜어주고 있는 김상현, 마지막으로 좌완 사이드암 이혜천이 불펜으로 전향하게 됨에 따라 두산의 불펜은 위력으로 보나, 선수층으로 보나, 다양성으로 보나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철옹성 불펜진이 완성됐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선발진의 안정화다.
안타깝게도 현재 팀 내 선발투수 중 제 몫을 해주고 있는 선수는 엄밀히 말하자면 니퍼트 한 명뿐이다. 물론 오늘(16일) 경기에서 김선우가 퀄리티스타트(7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으나 토종에이스로써 기록 중이 성적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런 면에서 장민익이 보여준 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시범경기를 통해 그의 피칭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불과 1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장민익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해 입단과 동시에 화제를 뿌렸던 장민익은 두산 입장에서도 당장이 아닌 향후 몇 년을 내다보고 지명한 선수였음에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추이라면 굳이 몇 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지난 해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라면 지난 해에는 단지 큰 키, 그리고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부여받았다면 올 시즌 장민익은 경쟁력을 갖춘 투수로써 1군 무대에서의 경쟁에서 살아 생존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 해 장민익은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는 투수였다. 큰 키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을 던지고 나서 휘청거리는 듯 보이는 딜리버리는 엉성하기 짝이 없었고 구위 역시 타자를 압도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기에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제구는 애당초 기대도 안했다. 하지만 올 시즌 그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일단 체중을 늘리면서 자연스레 하체가 안정되었고, 그 결과 이전과 같은 엉성한 딜리버리가 아닌 안정된 투구 딜리버리가 완성되었다.(물론 그의 투구 폼이 완성단계란 말은 아니다.) 구속 역시 아직까지 최고 140km 중반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시범경기를 통해서는 이미 147km까지 기록했던 바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피칭에서 인상적인 점은 같은 패스트볼이라도 상당히 낮게 낮게 제구되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장민익과 같이 큰 키의 선수가 높은 타점에서 던진 공이 낮게 제구되어 들어간다면 타자 입장에서는 여간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제구 역시 우려했던 수준과는 상당한 갭이 존재했다. 이제 갓 신인티를 벗은 선수에 불과하지만 상당히 믿음직한 선수로 성장해버린 듯 하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으나 좌완 기근 두산에 간만에 등장한 좌완 유망주기 때문에 속내를 숨기기가 참 쉽지 않다. 이제 장발에 수염만 좀 기르면 아주 믿음직한 선수가 될 듯 하다.
장민익의 반대급부로 이혜천이 불펜으로 합류하게 됨에 따라 당장 한시름은 놓은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해선 안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그 중 선결과제가 바로 새로운 용병 영입이다.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던 용병 라미레즈가 짐을 싸서 돌아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제대로 된 용병을 뽑는 것이다. ‘늦더라도 제대로 뽑겠다‘며 데리고 온 라미레즈는 절대로 제대로 된 선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니퍼트 급은 바라지도, 아니 꿈도 꾸고 있지 않는다. 그저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줄 수 있는 투수면 족하다. 그런 면에서 SK의 용병 인선을 배울 필요가 있다.
SK는 이미 개리 글로버와 짐 매그레인을 보유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1군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하지만 시즌 초반 매그레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제빨리 대체 용병 물색에 나섰었다. 물론 매그레인이 호투하면서 일단은 매그레인 신임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모양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SK가 용병 인선을 위해 다른 곳도 아닌 대만을 택했다는 것이다.
근 몇년간 SK 용병들을 살펴보자면 케니 레이번, 마이크 존슨, 짐 매그레인은 대만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고, 마이크 로마노, 크리스 니코스키, 게리 글로버, 카도쿠라 등은 일본에서 활약하던 선수 들이다. 이 중 마이크 존슨과 니코스키 정도만이 실패한 케이스고 그나마도 니코스키는 두산으로 둥지를 옮긴 후 후반기 팀의 투수진을 이끌다시피 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용병 인선의 방향을 미국보다는 아시아 쪽으로 용병 선택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시아 야구를 경험했고 안했고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물론 예외도 존재하지만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아시아 야구를 경험하지 못하고 시즌 도중 합류하게 된다면 적응하는데 애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 야구 유 경험자를 영입하게 된다면 이러한 걱정은 덜게 된다.
더불어 어차피 기량을 갖춘 선수들은 대부분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 선수들 역시 빅리그 승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에게 한국행은 그저 소 귀에 경 읽기 일뿐이다. 방향을 미국이 아닌 아시아 쪽에 맞춰야 하는 이유다.
두산 측은 이달 내에 새 용병 영입을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또다시 라미레즈 같은 실수를 범하느니 이번에야말로 ‘늦더라도 제대로 뽑겠다’던 당초의 방침을 이어가줬음 하는 바람이다. 물론 너무 늦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