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버팔로스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승엽(35)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일본 진출 8년째를 맞이한 이승엽의 성적은 5월 2일을 기준으로 57타수 8안타(타율 0.140), 1홈런 5타점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진출 이후 최악의 성적(5홈런 11타점, 타율 0.163)을 거두었을 때만큼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
오릭스 타자들이 전반적인 침체에 빠져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타격 부진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요미우리 시절과 달리 꾸준히 기회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 좀처럼 타격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엽의 오릭스 이적은 여러모로 ‘호재’가 많았기에 기대가 컸다. 그의 장타력을 인정한 오카다 감독이 이승엽을 중용하겠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왔고, ‘코리안특급’ 박찬호도 팀 동료로 합류했다. 같은 퍼시픽리그 소속인 지바 롯데 시절 저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기분 좋은 기억도 있다. 남은 것은 이승엽의 부활뿐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최근 3경기서 안타 하나 뽑아내지 못한 것을 비롯, 득점 찬스에서 번번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가 당한 25개의 삼진 숫자는 팀 내 최다 기록(2위는 T-오카다, 23개)이다. 방망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장기인 장타력도 실종됐다. 0.246에 불과한 장타율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최근에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자신감이 실종된 듯한 모습이 자주 비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승엽에게 한계가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 2006년 이후 점차 ‘내리막길’을 걷다
실제로 이승엽은 2006년에 40홈런 고지를 돌파 한 이후 점차 내리막을 걷고 있다. 2007년에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3년 연속 30홈런을 달성한 것을 끝으로 그는 두 번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스로 참가하기를 원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준결승 일본전과 결승 쿠바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작렬시키며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과시했지만, 정작 소속팀에서는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월드스타’로 거듭나며 한창 주가를 올렸을 때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는 2006년 지바 롯데에서 요미우리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을 때 1년의 단기 계약을 맺었었다. 그리고 요미우리에서 40홈런을 돌파하면서 계약기간은 종료됐다. 2006년 WBC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감안해 본다면,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메이저리그행 비행기를 마다하고 요미우리 잔류를 선언했다. 왜 그는 미국 진출을 포기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나뉜다. 먼저 그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을 가능성, 또 하나는 메이저리그에서 제시해 온 조건이 요미우리가 제시한 금액보다 상당히 적었을 가능성이다. 어떠한 이유였던 간에 당시 이승엽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승엽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2006시즌 직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어땠을까?’하는 한 가닥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 이제는 조심스럽게 ‘국내 복귀’를 생각해야 할 때
사실 이승엽은 일본 무대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이뤘다. 소속팀의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 그리고 3년 연속 30홈런 돌파 등이 그것이다. 물론 개인타이틀을 따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타지에서 적응하기 어렵다는 핸디캡을 극복했다는 점 또한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지하게 국내 복귀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승엽 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본에서의 명예 회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엽은 벌써 4년째 일본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할만한 수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기다리는 국내 팬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도 고려를 해봐야 할 때다.
1976년생인 이승엽은 우리나이로 올해 서른여섯, 내년이면 서른일곱이 된다. 더 늦기 전에 ‘현역 이승엽’의 모습을 국내 팬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도 ‘국민타자’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임무’라 생각한다.
// 유진 김현희[사진=Osen.co.kr, 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