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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타임스 필진 칼럼

외국인 선수는 용병? 팀의 당당한 일원이자 주역!

by 카이져 김홍석 2011. 5. 21.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흔히용병으로 불린다. ‘고용된 병사라는 의미인데, 사실 은연중에 외국인 선수를 우리와 같은 일원이 아니라 돈을 받고 잠시 고용된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배타적인 뉘앙스가 강해 그다지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론이나 스포츠 관계자들의 입에서는용병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남발되곤 한다.

 

해외에 진출했거나 혹은 다시 돌아온 선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타지에 나가보니 외국인 선수들에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외국에 나갔다 온 선수들은용병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 어느 리그건 마찬가지겠지만, 타지에서 외국인 선수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 외적으로 전혀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일도 쉽지 않고, 은연중에 텃세나 차별에 시달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높은 기대를 받고 영입된용병의 경우, 보통 토종 선수들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최근 세계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무대에 진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타국에서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활약하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적과 인종을 떠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소통이다. 단체 스포츠에서 팀의 일원으로 녹아 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스카우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 성공하는 외국인 선수의 제1조건으로인성을 꼽는다. “실력은 형편없는데 착하기만 한 선수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력과 품성, 자기관리, 팀원들과의 조화 등은 각기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이다. 성격이 좋고 동료들과 잘 융화하며, 코칭스태프의 지시에도 착실하게 잘 따르는 선수들이 반드시 성공한다. 반면 외국에서 좀 했다고 거들먹거리거나 한국야구를 우습게 보는 선수들치고 성공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타이론 우즈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야구 최초의 외국인 MVP로 기억되는 우즈는 사실 초창기만해도 경력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다. “다른 구단들이 모두 이름값을 보고 선수를 영입할 때 우리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우즈는 당시 영입 검토중인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 비하여 경력이 특출하지도, 기량이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누구보다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목표의식이 분명했다. 우즈는 한국에 와서도 자신을 외국인 용병이 아닌 팀의 일원으로 생각했고, 누구보다 한국야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 우즈에 대해 추억하는 두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팀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결정권을 쥐고 있는감독과의 소통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대체로 지도자들에게 평판이 좋은 편이다. 야구만 하더라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나 중남미 계열의 선수들과 달리,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도가 높고 지도자의 지시에 잘 따르는 성실하고 근면한 이미지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은 자기관리가 뛰어나고, 부지런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상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라고 해서 살벌한 경쟁의 세계를 피해갈수는 없다. 9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타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았던 선동열과 이종범은 일본 진출을 통해용병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던 케이스다. 국내 무대에서당대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동열과 이종범이지만, 일본무대에서는 나란히 부상과 부진으로 2군행의 굴욕을 겪는 등 시련의 계절을 겪었다.

 

이종범과 선동열의 차이를 가른 결정적인 전환점의 하나는 바로 팀을 이끌고 있던 감독과의 소통 문제였다. 당시 주니치를 이끌고 있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과 이종범의 악연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진출 초기, 이종범을 총애했던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이 사구로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외국인 선수가 근성이 없다. 부상이 두려워서 야구를 못한다면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고 독설을 날리며 이종범을 압박했다. 사실 이것은 양측간 소통의 차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이종범에게 외국인 선수의 성적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중남미 출신이나 흑인들과는 달리 제대로 외국인 선수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의 자기주장을 감독에 대한 항명으로 받아들였다. 외국인 선수가 감독과 대립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종범은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같은 한국인 선수이던 선동열과의 궁합은 또 달랐다.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에게도 한때 2군행을 지시하며 혹독하게 다루기도 했지만, 선동열이 온갖 굴욕과 고난을 이기고 이듬해 일본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자 누구보다 강한 지지자로 탈바꿈했다. 3년간 선동열을 주니치 부동의 마무리로 중용한 것은 물론이고, 99년 주니치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에도, 호시노 감독은 선동열을 마지막 투수로 특별히 등판시키며 우승의 영광을 마운드 위에서 맛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동열은 지금도 호시노 감독을 은사로서 각별히 대접한다.

 

지도자가 된 이후 선동열 감독의 야구철학은 여러모로 호시노 감독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많이 묻어난다. 특히 외국인 선수를 대하는 방법에서도 닮은 장면이 자주 보인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 재임시절, 타자보다는 투수, 선발보다는 불펜을 선호하는 야구를 펼쳤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종종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이점은 사실상 호시노 감독과 유사하다.

 

선 감독의 재임시절 동안 삼성에서 감독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외국인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선동열 감독은 외국인 선수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용병으로만 대우했다. 외국인 선수들은 5회 이전에 선발을 교체하거나, 타자들에게 들쭉날쭉한 출전기회를 주면서도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높았던 선동열 감독에 대하여 종종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의 뒤를 이은 류중일 감독은 외국인 타자 라이언 가코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표시하며나믿가믿이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류중일 감독은 전임자가 외국인 선수들과의 소통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다른 각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롯데의 양승호 감독이나 넥센의 김시진 감독 등도 외국인 선수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인물들로 꼽힌다. 조금 부진하더라도 꾸준히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컨디션의 상태나 팀 사정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배려가 외국인 선수에게는 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높여주고, 낯선 환경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감독들이 외국인 선수들과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언어상의 문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개성이 강한 외국인 선수들을 너무 가깝게 두면 통제하기가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지난해까지 롯데를 이끌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이방인이 아닌 팀의 일원으로 인식했던 인물이다. 본인 스스로가 외국인 감독이기도 했지만, 로이스터는 외국인 선수를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하여 교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퇴출위기에 몰렸던 가르시아를 자신의 재임기간 3년 내내 감싸 안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로이스터 감독시절 외국인 선수들이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데는 인내심을 가지고 외국인 선수들의 한국 적응을 기다려준 로이스터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야구도 이제 외국인 선수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지 올해로 14년째다. 한국야구사에 외국인 선수들이 남긴 족적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가 그러하듯, 한국야구가 점차 다문화 시대를 발전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한국야구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함께 소통하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선수들 역시 해외무대에 나가서외국인 선수신분의 한계를 딛고 활약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용병이 아니라 한 팀의 당당한 일원이자 주역들이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기록제공=Stat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