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두산은 그동안 불펜 에이스로써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온 임태훈에게 마무리 자리를 맡겼다. 물론 지난 시즌 보여준 부진한 모습을 떠올린다면 다소 의아한 선택일 수 있으나 그동안 불펜에서 쌓아온 경험과 스프링캠프를 통해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되찾으며 팀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낙점됐다.
개막 후 한달 간 보여준 임태훈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공적이었다. 평균자책점 1점대(4월 평균자책점 1.54)를 기록함과 동시에 오승환과 함께 세이브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새로운 구원왕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5월 들어 연달아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인것과 더불어 현직 스포츠채널 아나운서와의 스캔들에 휩싸이며 결국 마무리 자리 박탈과 동시에 2군행을 통보받게 된다. 그 이후 현재까지 두산의 마무리 자리는 공석이다.
마무리는 쉽지않은 자리다. 이미 임태훈은 정재훈이 마지막으로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08시즌 잠시나마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미 마무리로써의 가능성을 테스트받았다.(물론 결과가 좋지 못했기에 임태훈은 계속 불펜에 남았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인 셈인데 안타깝게도 두 번째 도전 역시 이대로라면 좋지않은 결과로 끝날 듯하다.
물론 불펜에서 맹활약을 펼친 임태훈이 마무리 전향에 실패했다고 해서 불펜이 마무리자리보다 수월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언제 등판할지 모르고 불펜에서 어깨를 데워둬야하는 불펜이 마무리보다 더욱 힘든 자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선수가 느낄 중압감만은 마무리 자리가 더욱 큰 것이 사실일 것이다. 신인 선수들이 데뷔 첫해 마무리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신인 선수들이 감당해내기엔 마무리투수를 짓누르고 있는 책임감과 무게감이 너무도 막중한 까닭이다.
그렇담 현재 상황에서 두산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일까. 현재 두산은 집단 마무리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두산이 택할 수 있는 좋은 선택 중 하나일 진 몰라도 옳은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집단 마무리를 기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가장 컨디션이 좋은 투수를, 혹은 상대 타자가 좌타자냐 우타자냐에 따른 변화를 주면서 기용하게 된다면 분명 더욱 좋은 성적을 낼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집단 마무리 체제를 적용해서 성공한 팀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이전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서 우승을 거뒀던 팀들은 하나같이 확실한 마무리투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현대의 조용준, 삼성의 오승환, SK의 정대현, 그리고 KIA의 유동훈까지. 확실한 마무리투수 없이 우승을 거뒀던 팀은 사실상 없다고봐도 무방하다.(물론 지난해 SK는 한 명의 확실한 마무리투수를 보유하진 못했지만 전반기에는 이승호가, 후반기에는 송은범이 뒷문을 책임졌기에 집단 마무리체제라고는 볼 수 없다.)
집단 마무리가 아니라면 두산 역시 한명의 투수를 마무리로 내세워야 할 텐데 현 상황에서 볼때 정재훈이야말로 적임자라는 생각이다. 물론 고창성 역시 뛰어난 투수지만 마무리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과 이제 겨우 프로 3년차라는 점은 그를 마무리로 내세우는 것을 다소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고창성을 제외한다면 현재 두산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는 정재훈 뿐이다. 이미 05,06시즌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과 자웅을 겨루며 특급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던바 있는 정재훈은 08시즌 부진 이후 마무리 보직을 박탈당했지만 10시즌 다시 제 기량을 되찾으며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로 발돋움했다. 더불어 정재훈의 이러한 활약은 일시적인 싸이클이 아닌 확실한 부활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시즌을 기점으로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은 정재훈에게 부활의 기회를 마련해줬고, 칼날같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정재훈은 넓은 스트라이크존 원하는 곳에 공을 구석구석 찔러넣으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올 시즌 역시 이러한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다.(올시즌 평균자책점 2.01) 스트라이크존이 위아래로 급격하게 줄어든다던가 다시 이전의 크기로 돌아가지않는 이상 정재훈이 다시 부진의 늪을 헤멜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기량저하와는 별개로)
더구나 최근 김상현이 불펜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정재훈의 보직변경으로 인해 불펜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 역시 큰 우려는 되지 않는다. 집단 마무리라는 무리수를 두느니 정재훈이라는 확실한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현재 두산에는 더욱 적절하다.
최근 경기장 안팎으로 흉흉한 소문들과 더불어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두산이지만 오늘 정재훈의 4이닝 호투는 분명 좋은 징조라 본다. 연장까지 가는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진 정재훈의 오늘 활약으로 하여금 마무리투수에 대한 고민을 말끔히 씻겨줄 수 있을 만큼의 좋은 모습이었다. 정재훈의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두산 팀 또한 다시금 상승세를 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버닝곰 김성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