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출범 30년째를 맞이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역대 최고 타자는 누구일까? 통산 기록을 토대로 한다면, 그 선택 기준을 ‘꾸준함’과 ‘폭발력’ 중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꾸준함이 최고의 덕목이라면 각종 통산 기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한 양준혁이 ‘역대 최고의 타자’이겠으나, 단기간의 임팩트라면 그 누구도 이승엽을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단일시즌 기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떨까?
사실 기록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뚜렷하게 정해진 하나의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홈런을 중요시하고, 또 어떤 이는 타율을 최고로 치며, 또 어떤 이는 타점이 타자의 최고 덕목이라 여긴다. 요는 ‘하나의 통일된 평가 기준’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MBC Sports+>에서 도입한 카스포인트(Cass Point)는 유용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타자의 경우 20개의 항목에 각기 다른 점수를 부여해, 그 합산된 포인트로 순위를 매기는데, 그 총점이 통일된 평기 기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 카스포인트를 활용하여 ‘역대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고 타자’를 가려보자.
올 시즌 현재 카스포인트 랭킹은 이대호(1,760점)가 투타를 합쳐 통합 1위에 올라 있다. 현재 이대호는 타율(.368)과 홈런(16), 타점(53)을 비롯해 최다안타(74), 출루율(.461), 장타율(.652)까지 6개 공식 부문에서 1위에 올라 있다. 득점(38)도 박용택에 하나 뒤진 2위라, 잘만하면 2년 연속 타격 7관왕도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해의 카스포인트 1위도 당연히 타격 7관왕에 빛나는 이대호(4,250점)였다. 그 뒤를 이어 홍성흔(3,545점)이 2위, 김현수(3,045점)가 3위였다. 전체적인 타격 성적에서는 김현수보다 좋았던 조인성(2,935점)은 4위였다. 이것은 카스포인트에 ‘실책’과 ‘포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되어야 할 지명타자는 이득을 보고, 수비 부담이 큰 포수는 손해를 본다. 이것은 카스포인트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기존 배점 항목에서 몇 가지를 제외했다. 결승타와 주루 및 견제사, 그리고 실책과 포일의 5가지 항목이다. 앞선 3개 항목은 예전의 기록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며, 뒤의 2개는 형평성을 해친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히려 순수하게 ‘타자로서의 능력’만 평가한다면, 이들 항목이 제외되는 것이 좀 더 판단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역대 타자들 가운데 단일 시즌 기준으로 가장 많은 카스포인트를 얻은 주인공은 역시나 ‘라이언킹’ 이승엽이었다. 이승엽은 ‘타고투저’가 극에 달했던 1999년에 환상적인 비율스탯과 누적스탯을 동시에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50홈런 고지를 돌파했다. 4,500포인트 이상을 기록한 4번의 기록 중 무려 3번이 이승엽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과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다.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역대 프로야구 홈런-타점 기록을 경신했던 2003년은 3위에 그쳤(?)다. 오히려 같은 해 나란히 홈런 레이스를 펼쳤던 심정수의 기록이 2위다. 실제로 비율스탯을 살펴보면 심정수의 기록이 이승엽보다 뛰어났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이승엽의 1999년 기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대호의 2010년 기록이 팀 선배인 마해영의 1999년 기록에 조금 뒤진 채로 6위에 랭크되었으며, 양준혁 이전의 최고 레전드였던 장종훈은 한국 야구에 40홈런 시대를 연 타자답게 탑-10 안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위에는 99년 당시 30-30클럽에 가입하며 놀라운 성적을 거뒀던 이병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탑-10의 기록을 보면서 어떤 독자들은 ‘왜 이종범의 1994년이 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이종범의 이름을 11위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순위가 예상보다 낮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카스포인트의 배점상 홈런타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30위권, 아니 40위권까지 범위를 넓혀도 30개 미만의 홈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는 2009년의 김현수와 이종범, 단 둘밖에 없다. 하물며 94년 당시의 이종범은 20개도 되지 않은 홈런으로 11위에 올랐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할 수 있겠다.
그 밑으로는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가 12, 13위를 연거푸 차지하며 모든 외국인 타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고, 99년 한화의 우승을 이끌었던 로마이어가 14위에 올랐다. 1997년의 이종범과 2000년의 박재홍, 1999년의 홍현우 등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탑-1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양준혁이 11~30위권에는 3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이승엽의 이름 역시 3번이나 더 올라와 있다. 2009년에 홈런-타점왕을 차지했던 김상현의 성적은 MVP감으로 손색이 없었으며, 당시 한편으론 김상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김현수의 성적도 역대 30위권에 포함이 된다.
특이할 만한 것은 30위권 중 80년대 기록은 하나도 없다는 점, 그리고 프로야구에 ‘타고투저’ 열풍이 불어 닥쳤던 1999~2003년 사이의 기록이 절반 이상(18번)을 차지다는 점이다. 특히 1999년의 기록이 무려 8번이나 된다. 그리고 그 후 ‘투고타저’로 리그 경향이 바뀌었던 2005~2008년 사이의 타자들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장종훈의 기록이 당시로선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은 카스포인트 자체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 역대 순위를 마냥 ‘진리’라고 생각하며 신뢰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세이버매트릭스 항목을 기반으로 한 각종 순위와 비교해봐도 위의 랭킹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조금씩의 순위 변동이 있긴 하지만, 폭넓게 살펴보면 넓은 틀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앞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하며 발전해야겠지만, 이만하면 카스포인트가 야구팬들의 흥미를 자아낼만한 하나의 유용한 ‘선수평가 기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앞으로 점점 더 훌륭한 기준으로 발전해가길 바란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기록제공=Stat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