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최고의 선발 투수는 누구일까? 다승 1위인 롯데 장원준? 아니면 평균자책점 1위인 카도쿠라? 그것도 아니면 탈삼진 1위인 류현진?
기자들은 물론 야구팬 역시 ‘최고의 선발투수’가 누구인가를 가리기 위해 다양한 기준을 적용하곤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투수 3관왕’의 항목인 다승과 평균자책점, 그리고 탈삼진이다. 탈삼진이 투수의 실질적인 투구 내용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항목이라 치면, 투구이닝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겠다.
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평균자책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도 평균자책점이야 말로 투수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가장 널리 두루 사용되는 항목일 것이다. 하지만 5이닝 동안 1점을 허용한 투수와 7이닝 동안 2점을 허용한 투수의 경우, 전자의 평균자책점이 낮지만 후자의 피칭이 전자의 그것보다 수준이 낮았다고 말하는 야구팬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평균자책점 또한 완벽한 기준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승은 타선의 지원이 어느 정도는 받쳐줘야만 선두권을 형성할 수 있는 항목이다. 실제로 LG의 박현준은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도 8승을 거둬 1위에 올라 있으며, 평균자책점 1위인 카도쿠라(2.28)는 5승에 불과하다. 실제로 ‘승’이라는 항목은 타선의 지원은 물론, 경기 속에서의 다양한 ‘운’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투구 이닝 역시 팀 내부의 사정이 반영되기에 명확한 척도가 될 수 없다. 류현진의 투구이닝이 많은 것은 그만큼 뛰어난 피칭을 하기 때문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실한 한화의 불펜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반대로 김광현의 투구이닝이 적은 편인 이유는 볼넷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SK의 불펜이 막강하기에 다소 이른 시점에 교체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발 투수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좀 더 유효한 기준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은 다음의 3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퀄리티스타트(QS)
선발투수의 덕목이라 하면 ‘점수를 최대한 허용하지 않으면서 긴 이닝을 소화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퀄리티스타트(QS,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는 선발 투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6이닝 이상을 던졌다면 일단 선발투수로서의 책임은 다했다고 볼 수 있으며, 3자책점 이하로 상대 타선을 막아냈다면 그것이 ‘승리보증 수표’는 되지 못하더라도 ‘승리의 발판’ 정도는 마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 경기마다 꾸준히 QS를 기록해주는 투수만큼, 감독을 기쁘게 해주는 투수가 또 어디 있겠는가?
현재 다승 공동 1위인 장원준과 박현준(이상 8승)의 경우, 똑 같이 14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QS에 성공한 것은 7번으로 그 확률이 50%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다승 1위에는 타선의 지원 같은 운이 좀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장원준의 득점지원은 7.00점으로 전체 1위이며, 박현준(5.97점)은 5위다.
올 시즌 QS를 가장 많이 기록한 투수는 KIA 로페즈와 SK 글로버(이상 9회)이며, 차우찬과 윤석민이 8회씩으로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선발등판 대비 퀄리티스타트 성공 확률(QS+)도 12번 중 9번을 달성해 75%를 기록 중인 로페즈가 1위, 윤석민(66.7%)과 글로버(64.3%), 카도쿠라(63.6%)가 2~4위다.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로 기준을 높인 퀄리티스타트+(QS+)라는 항목도 있다. 역시 로페즈가 8회로 최다를 기록 중이며, 류현진은 자신이 기록한 7번의 QS가 모두 QS+로 이 부문 2위에 올라 있다. 차우찬과 윤석민, 김선우가 5번씩의 QS+를 기록해 이 부문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퀄리티스타트를 기준으로 보면, 현 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는 KIA 로페즈(7승 2패 1세 2.83)라고 할 수 있다. 로페즈는 전체 투구이닝(89이닝)과 경기당 투구이닝(7.33)에서도 1위에 올라 있으며, 다승과 평균자책점은 리그 3위다. 이만하면 ‘최고의 선발투수’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작년에는 연속 QS 신기록 행진을 이어간 ‘괴물’ 류현진이 23번의 QS를 기록해 20번의 김광현을 제치고 횟수와 성공률(92%)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특히, QS+는 22번을 기록했는데, 11번에 그친 2위 그룹(사도스키, 송승준)을 압도적인 차로 제치고 독보적인 1위에 올랐었다.
2. 게임 스코어(Game Score)
앞서 언급했듯, 선발투수의 가치 척도 중 다승은 운에 의존하는 바가 매우 크다. 따라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세이버매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게임 스코어(Game Score-이하 GS)’라는 새로운 스탯을 고안해냈다.
이 지표는 운에 의해 달라질 수도 있는 ‘다승’이라는 지표를 제외한 채 순수하게 “선발 투수가 얼마나 경기를 지배했는가?”에 대한 답을 하나의 통합된 수치로 표현해준다. 각각의 항목에 점수를 부여한 후 그것을 합친 점수로 선발 투수의 피칭을 판단하는 지표인데, 그 계산법과 배점은 다음과 같다.
• GS는 기본점수 50점에서 시작한다
• 아웃 카운트 하나당 +1점(즉 1이닝 3점, 9회를 완투하면 27점)
• 5회부터는 이닝이 끝날 때마다 +2점씩
• 탈삼진 하나 당 +1점
• 안타 하나 당 -2점, 볼넷 하나 당 -1점
• 자책점 허용은 -4점, 비자책점일 경우는 -2점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27탈삼진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게 되면 9이닝 기준으로 최고점인 114점을 얻게 된다. 기록 전문 사이트인 스탯티즈(Statiz.co.kr)에서 선발투수들의 게임스코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단일 경기 기준으로 올 시즌 최고 기록은 LG 주키치가 5월 15일 넥센을 상대로 9이닝 1피안타 9탈삼진 완봉승을 거둘 때 기록한 91점이었다.
경기당 평균 GS는 윤석민(59.67)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뒤를 로페즈(59.17)가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올라 있다. 글로버(58.36)가 3위, 류현진(56.77)이 4위이며, 평균자책점 1위인 카도쿠라(54.73)는 5위다. 다승 1위인 장원준(52.29-9위)과 박현준(51.86-11위)의 순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경기당 평균 GS가 55점 이상이면 ‘에이스’란 호칭이 어색하지 않으며, 60점 이상이면 ‘특급 에이스’라 평가할 수 있다. 최근 기록으로는 2008년의 윤석민(60.48)과 지난해의 류현진이 60점 이상의 경기당 평균 GS를 기록했는데, 작년의 류현진은 무려 67.76이라는 믿기 어려운 점수를 기록해 자신이 보여준 피칭이 ‘역대급’임을 증명했다.
3. 카스포인트(Cass Point)
위의 두 기록은 ‘다승’이라는 측면을 아예 무시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선발투수의 승리가 온전히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까? 경기를 보다 보면 점수를 허용하더라도 어떻게든 팀의 리드를 지키는 투수가 있는 반면, 투구내용 자체는 좋더라도 득점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실점으로 인해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투수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다승이라는 척도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부터 MBC Sports+에서는 ‘카스포인트(Cass Point)’라는 점수별 통합 랭킹 제도를 도입했다. 아직 투-타간의 밸런스가 완벽하다곤 할 수 없어 서로간의 비교는 힘들지만, 투수들끼리의 비교에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카스포인트의 투수 배점표를 살펴보면 불펜투수보다는 선발투수의 평가에 좀 더 적합한 듯 보이며, 그 신뢰도 역시 꽤 높은 편이다.
17일 현재, 올 시즌 선발 투수들 중 카스포인트 1위는 1,655점을 얻은 윤석민이다. 등판 경기수는 다른 투수들보다 적은 편이지만, 뛰어난 투구내용과 7승이라는 승수를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2위는 16일 경기의 승리로 다승 1위에 오른 장원준(1,538점)이고, 3위는 로페즈(1,525점)다.
<17일 현재 카스포인트 상위 선발투수 10걸>
1위. 윤석민(1,655점) – 7승 2패 78이닝 80탈삼진 2.88
2위. 장원준(1,538점) – 8승 1패 84.2이닝 62탈삼진 2.99
3위. 로페즈(1,525점) – 7승 2패 89이닝 63탈삼진 2.83
4위. 글로버(1,494점) – 6승 2패 80이닝 80탈삼진 2.81
5위. 박현준(1,403점) – 8승 4패 84.2이닝 77탈삼진 4.06
6위. 류현진(1,392점) – 6승 6패 87.1이닝 95탈삼진 4.13
7위. 차우찬(1,246점) – 5승 2패 84.1이닝 74탈삼진 3.00
8위. 주키치(1,124점) – 5승 3패 74.2이닝 65탈삼진 3.64
9위. 니퍼트(1,105점) – 5승 4패 72.1이닝 61탈삼진 3.00
10위. 카도쿠라(1,032점) – 5승 3패 67이닝 47탈삼진 2.28
결론 :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올 시즌 최고의 선발 투수는 윤석민(QS 2위, GS-카스포인트 1위)과 로페즈(QS 1위, GS 2위, 카스포인트 3위), 둘 중 하나다!(^^)
// 카이져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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