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에 ‘조범현 시대’가 막을 내렸다. 2007시즌 도중 배터리 코치로 합류하여 KIA와 첫 인연을 맺은 조범현 감독은 2008년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여 지난 4시즌간 타이거즈를 이끌어왔다. 2009년에는 타이거즈에 12년만의 ‘V10’을 이끌며 황금시대를 재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범현 감독은 이번 2011시즌을 4위로 마감하고, 준PO에서 SK의 벽에 막혀 1승 3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계약기간을 1년 남겨놓은 상태에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자진사퇴의 모양새지만, 사실상 경질이나 다름 없다.
KIA는 조범현 감독의 후임으로 타이거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스타 출신인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를 내정하여 순혈주의 강화에 나섰다.
조범현 감독이 타이거즈에서 보낸 지난 4년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일단 성적만으로 보면 그는 성공한 감독이다. 부임 첫해 6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우승을 차지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올해도 전반기까지는 1위를 달리다가 부상병동으로 주춤한 끝에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선수를 발굴하는 안목과 육성능력은 조범현 감독의 최대 강점이다. 윤석민, 양현종, 이용규, 나지완 등을 팀의 주축이자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로 키워냈고, 2009년 우승 당시 평범한 선수였던 김상현을 LG에서 영입해오며 MVP급 선수로 발돋움시킨 것은 프로야구 사상 역대 최고의 트레이드로 꼽힌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를 보내던 KIA를 성공적으로 재건하여 강호의 위상을 회복시킨 업적이 분명한 인물이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은 이룬 성과에 비해 팬들의 평가가 유난히 박한 감독이기도 하다. 사실 조범현 감독이 계약기간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물러난 것도 지난 준PO 탈락 이후 감독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악화된 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 양승호 롯데 감독, 이만수 감독대행 등이 안티팬들의 반발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지만, 알고 보면 조범현 감독이야말로 사실상 부임 초기부터 물러나는 순간까지 내내 부정적인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불운한 감독이었다.
조범현 감독은 왜 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타이거즈 출신이 아닌 ‘외부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KIA의 전신인 해태 왕조의 황금기를 이끈 김응용 감독 이후 KIA는 주로 해태 출신의 순혈주의 감독들이 팀을 이끌어왔다. 김성한•서정환 감독은 해태 때부터 타이거즈 선수와 코치를 두루 거쳤고, 유남호 감독은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김응용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와 수석코치를 거친 인물이었다.
반면 조범현 감독은 유독 해태-KIA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인물이었다. 영남 출신이었던 조범현 감독은 프로 선수생활도 모두 OB(현 두산)와 삼성에서 보냈을 만큼, 타이거즈와는 별 인연이 없었고, 자연히 시작부터 구단 내 입지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팀의 인기가 지역정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프로야구에서 조범현 감독과 소위 ‘타이거즈 정서’와의 지속적인 마찰은, 조감독이 내내 팀을 장악하고 팬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장애물로 작용했다.
조범현 감독이 취임할 당시, 전 시즌 최하위에 그친 KIA는 세대교체 실패로 노쇠한 팀이었고 경쟁 없이 과거의 이름값만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다. 여기에 비 타이거즈 출신으로 입지가 미약했던 조범현 감독은 첫 부임 때만해도 코치진 선임 등에서 확실한 전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조범현 감독은 기존의 ‘해태 색깔’에서 벗어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타이거즈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작 그로 인해 안티팬들로부터 타이거즈다운 끈끈함과 호쾌함을 잃었다는 반발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장성호, 이대진, 이종범 등 타이거즈의 대표적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이적 및 은퇴 파동 때마다 조범현 감독이 관여했다는 의혹은, 팬들이 조범현 감독에게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심지어 조범현 감독이 처음으로 구단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에도, 타이거즈 출신인 김종모 수석코치를 내치고 자신의 친정체제를 강화한 결정이 ‘토사구팽’이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아야 했다. 팬들이나 언론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조범현 감독의 과묵한 성격도 여론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 이유였다.
호남 출생에 타이거즈 출신인 선동열 감독이 영남 연고의 삼성에서는 내내 꾸준한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의 전통적인 야구스타일이나 프랜차이즈스타에 대한 처우에서 불만을 자아내며 홈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선동열 감독이 삼성 팬들의 민심을 잃은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스타인 양준혁을 은퇴로 내몰았다는 반발에서 비롯됐듯이, 조범현 감독 역시 지난 준PO에서 타이거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범을 승패가 결정된 4차전 9회 2사에 대타로 내보낸 악수가 가뜩이나 폭발직전이던 여론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간 선동열 감독이나 김성근 전 SK 감독이 야구스타일에 대한 엇갈린 평가로 만만찮은 안티 여론에 시달려왔음에도 탁월한 ‘실적’으로 반대 여론을 잠재워왔던 것과 달리, 조범현 감독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결국 팬들의 신뢰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조범현 감독은 대체적으로 거시적 안목에서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추진력 있게 조직을 끌고 나가는 점에선 앞선 두 감독들 못지 않다느 평가를 받았지만, 미시적으로 팀을 아우르고 조율하는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수운용 능력에 대한 비판이다.
감독의 경기장악력이 중시되는 한국식 스몰볼에서 경기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투수운용이다. 그러나 KIA는 리그 최강의 선발왕국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불펜 때문에 늘 곤욕을 치러야 했다. 잦은 블론세이브와 역전패로 대표되는 KIA의 패배공식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는 점에서 홈팬들의 잦은 불만을 자아냈다.
특히 한국시리즈 우승 후 다음시즌이었던 지난 2010년 충격적인 16연패의 부진과 4강 탈락. 올해도 전반기 1위를 지키지 못하고 4위까지 추락한 끝에 준PO에서 SK에 홈 2경기 연속 영봉패 수모를 당한 것은 조범현 감독의 한계를 드러낸 장면으로 인식되었다.
2009년 우승은 조범현 감독에게도 KIA에게도 영광스러운 추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으로도 작용했다. 알고 보면 조범현 호는 아직 완성된 팀이 아니었다. 2009년 우승은 여러 가지 상황과 운이 따라준 결과였지만, 사실 KIA는 선수층이나 여러 가지 요인을 감안할 때 아직 리빌딩이 진행중인 팀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우승 직후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는 조범현 감독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른 강팀에 비하여 1진과 2진의 격차가 현저했던 KIA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도 팀 전력과 별개로 ‘부상대란’이라는 외부 요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KIA 구단은 당초 올 시즌 우승 실패에도 불구하고 조범현 감독의 유임에 무게를 뒀지만, 정작 모기업에서는 이미 올 시즌 후반기부터 후임자 선임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범현 감독의 사퇴에 이어 너무나도 신속하게 이루어진 선동열-이순철 후임 코칭스태프의 인선이 이를 증명한다.
타이거즈 팬들은 대체로 조범현 감독의 사퇴와 선동열 감독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팀의 전성기를 함께한 역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 고향팀의 감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타이거즈 왕조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에 대한 환영과는 별개로, 조범현 감독 역시 타이거즈 역사의 화려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인물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떠날 때는 떠나 보내더라도, 우승 감독에 대하여 구단이나 팬들이나 좀더 예우를 갖춰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구사일생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