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서른 일곱, 운동선수에게는 적지 않은 나이다. 현대스포츠가 발전하며 운동선수의 현역 수명도 길어지고 있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돌아온 국민타자’ 이승엽의 전성기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일본무대를 정리하고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한 이승엽이 과연 어느 수준의 활약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은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이승엽은 프로데뷔 이후 국내무대에서 활약하던 9년 동안 명실상부한 국내 최강의 타자였다. 특히 통산 324홈런을 쏘아 올리며 홈런왕만 다섯 차례나 차지했던 장타력은 그야말로 역대 최고라도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진출 이후 8시즌 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노쇠화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2006년 요미우리에서 41홈런을 터뜨리며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매년 기록이 하락세였다. 그나마 지난해 오릭스에서 극심한 타격부진을 겪으면서도 15홈런을 기록하며 장타력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한 게 작은 위안이었다.
이승엽은 올 시즌 친정팀 삼성에서 명예회복을 꿈꾸고 있다. 일본에서는 잦은 부상과 2군행 등으로 고전했다면, 삼성에서는 전경기 출장과 함께 30홈런과 100타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태균과 함께 프로야구 연봉 10억 시대를 개막한 고액연봉자라는 책임감도 이승엽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이승엽에게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세월의 무게다. 젊은 시절 30홈런(국내 7회, 일본 3회)을 우습게 넘기던 이승엽이지만, 지금은 2012년이고 76년생인 이승엽의 나이도 37세가 됐다. 타고투저가 절정을 달리던 그의 전성기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국내 프로야구 환경과 이제껏 상대해보지 못한 새로운 투수들의 구위에도 적응을 해야 한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령 홈런왕은 외국인선수인 래리 서튼(현대)이다. 70년생인 서튼은 2005년 당시 우리 나이 36세로 35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홈런왕에 올랐다. 국내 선수로는 1993년의 김성래(삼성, 28개)와 2004년의 박경완(SK, 34개)이 각각 33세의 나이로 최고령 홈런왕에 오른바 있다.
그간 국내 홈런타자들에게 있어 전성기의 마지노선은 대략 34~35세 정도였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라고 해도 30대 중반은 근력이나 유연성이 급격히 하락하기 쉬운 시기다. 국내 선수가 35세 이상의 나이에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는 아직 없으며, 30홈런을 남긴 선수도 양준혁(2003년 33개)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역대 홈런왕 레전드들이 지금의 ‘이승엽 나이’때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렸을까. 역대 통산홈런 1위이자 최고령 30홈런 기록의 주인공인 양준혁은 37세였던 2005년 13홈런에 그치며 직전 시즌(28개)의 홈런수가 반토막 났고, 타율도 .261에 그쳐 노쇠화 조짐을 보였다. 장종훈도 2003시즌 6홈런에 그쳤다. 2008년의 박경완은 7개에 머물렀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송지만(넥센)은 지난 2009년 2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양준혁도 잠시 부진했던 2005년을 거쳐 2007년에는 39세의 나이로 22개의 홈런을 터뜨렸고, 도루까지 더해 최고령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우며 ‘회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이의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결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다.
37세의 이승엽이 만일 올 시즌 30홈런 이상-홈런왕을 동시에 차지하게 된다면 한국 프로야구사에 또 다른 ‘최고령 기록’의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또한 이승엽은 올 시즌 28개의 홈런만 추가하면 양준혁(351개)을 제치고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이쯤 되면 이승엽의 도전은 그 동안 국내 거포들이 넘지 못한 세월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 할만하다.
참고로 메이저리그나 일본에서는 30대 중반을 넘겨서도 여전히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자랑하는 거포들의 사례가 많다. 메이저리그 역대 홈런왕 중 최고령 기록은 1985년 대럴 에번스(디트로이트)가 보유하고 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무려 38세였다. 약물파문으로 가치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배리 본즈도 2001년 37세의 나이로 홈런왕에 올랐을 뿐 아니라, 당시 최다홈런 신기록까지 작성했다.
일본은 카도타 히로미쓰가 난카이 호크스 시절인 1988년에 41세의 나이로 44개의 홈런을 때려 최고령 홈런왕에 등록돼 있다. 그 뒤를 이어 야마사키 타케시(라쿠텐)는 2007년 39세의 나이로 43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홈런왕에 올랐다.
올해로 31년째를 맞이하게 되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30대 후반의 홈런왕이 나올 때가 됐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그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이승엽이다. 한국에서 30대 중반을 넘겨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도 홈런왕에 도전할만한 선수가 있다면, 그 첫 테이프를 끊을만한 선수는 역시 이승엽밖에 없지 않을까?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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