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입단 계약을 체결한 상원고의 투수 김성민이 대한야구협회(KBA)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인데, 대체적으로는 이 징계를 비난하는 여론이 좀 더 우세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의 징계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으며, 이번만큼은 나중에라도 징계를 철회하여 또 다른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김성민의 볼티모어 입단은 겉으로 비춰지는 것 이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매우 문제성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자, 우선 사건을 정리해보자.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일부 팬들은 단순히 아마추어인 김성민이 국내 프로야구가 아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로 결정했고, 그 때문에 KBA와 KBO(한국야구협회)가 합심하여 ‘괴씸죄’를 적용해서 김성민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다. 이번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김성민의 계약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아직 고교 2학년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KBA의 규정에는 ‘본 협회에 등록된 학생선수 중 졸업학년도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구단과 입단과 관련한 접촉을 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고 프로구단과 입단 협의 또는 가계약을 한 사실이 확인 되면 해당 선수의 자격을 즉시 유보하고 제재한다’고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즉, 김성민이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것은 ‘KBO가 아닌 MLB에 진출했기 때문’이 아니라 ‘2학년 때 프로구단과 계약을 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될 심각한 문제다.
이번 계약이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우리나라의 고교나 대학의 1,2학년 선수들을 데려가려 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KBO의 수준을 크게 낮추게 될 것이다.
지금도 매년 고교 3학년 선수들 중 상당수가 메이저리그행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김성민의 계약이 인정된다면, 앞으로 고교 1,2학년 때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대부분 MLB 구단과의 접촉을 시도할 테고, 그 중 상당수는 계약을 하게 될 것이다.
MLB 구단과 계약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학생 선수 신분으로 경기에 출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전반적인 고교야구의 수준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KBO의 신인 드래프트는 예전에 비해 매우 질 낮은 선수들만 참여하게 될 테고, 그것은 KBO의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된다면, 더 이상 KBO와 국내의 프로야구단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KBA의 규정이 사문화된 상황이라면, KBO의 구단들 역시 적극적으로 고교 1,2년생 유망주들에게 손을 뻗칠 것이고, 그건 곧 고교야구의 파행을 의미한다. 그렇게 몇몇 유망주들을 간신히 붙잡는데 성공하면 뭐하겠는가, 이미 한국 야구의 근간이 뿌리 채 뽑힌 후인데 말이다.
이것이 김성민이 중징계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KBA의 저 규정은 단순히 ‘명목상 만들어져 있는 쓸데 없는 규정’이 아니라 ‘한국 야구의 근간을 보호하고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매우 중요한 규정’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규정, 김성민은 그것을 어긴 것이다.
김성민이 KBA의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이루고픈 꿈이 있다면, 응당 그에 대한 책임까지도 함께 떠안고 가야 할 것이다. 아무런 희생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누리고자 한다면, 그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본인이 ‘규정을 어기는 자유’를 선택했다면, 당연히 ‘규정에 의해 징계받는 책임’도 지는 것이 마땅하다. 언제나 ‘자유와 권리’라는 말에는 ‘의무와 책임’이라는 말도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성공한 것은 한국 야구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순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부작용들도 많았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투수 유망주들의 대량 유출’이었다. 박찬호의 성공을 바라본 수많은 후배들이 그의 뒤를 따라 미국행 비행기를 탔고, 그 결과 한국 프로야구는 매우 황폐해져 갔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 1991년부터 97년까지 평균 431만이었던 총 관중수가, 98년부터 2004년까지는 평균 268만으로 급감했다. IMF 위기의 영향도 컸지만, 야구계 내적으로도 그 못지 않은 원인이 있었다.
먼저 박찬호-김병현의 맹활약으로 인해 국내에서 MLB의 인기가 KBO의 그것을 크게 능가하여 국내 야구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졌다. 그리고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으로 인해 프로야구의 경기 수준이 매우 낮아졌다. 이 타고투저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투수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이었으니, 결국 둘은 같은 맥락에 있는 셈이다.
출범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하던 프로야구는 그렇게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고, 이후 다시 인기몰이를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다행히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점점 그 거품이 걷히기 시작했고, 앞서 진출한 유망주들이 대부분 실패와 좌절을 겪은 바람에 고교 에이스들의 미국진출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기를 극복한 KBO는 지금 역대 최고의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성민의 계약을 인정한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또 다시 십 수년 전의 암울했던 시기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남겨두게 된다. 고교 2년생인 그의 계약이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아마도 김성민과 그의 부모는 장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한야구협회(KBA) 소속의 학생 선수인 만큼, 규정은 지켰어야 했다. 규정을 어긴 선수를 징계조치 한 KBA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잘못된 선택을 한 건 KBA가 아니라 김성민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Osen.co.kr]
P.S. 참고로 메이저리그 역시 자국(미국, 캐나다)의 선수들은 고교 재학 중에 계약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남미 선수들과 계약할 때는 만 15,16세의 선수들도 마구잡이로 영입하는 지극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MLB측은 김성민의 계약을 중남미 선수들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서 한국 야구계의 반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 KBO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단 뜻이다. 중남미의 수많은 독립리그들은 사실상 MLB의 하부리그나 다름 없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야구 블로거로서 정말 짜증나고 화나는 건 바로 그래서다. 젠장... 그나저나 김성민은 자신이 ‘중남미의 배고픈 선수’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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