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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멀어진 8인의 꿈 - 블랙삭스 스캔들

by 카이져 김홍석 2007. 5. 5.

영화 ‘꿈의 구장’을 본 적이 있는가? 평범한 농부였던 케빈 코스트너에게 야구장을 만들라는 내용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는 8명의 유령들. 지금부터 바로 이 8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파란만장한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으며 수많은 스타들이 화려하게 등장하고, 또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팬들을 웃게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인간만상 희노애락을 여실히 보여준 감동의 무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많은 사건들 중 많은 팬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은 최악의 참사 두 가지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지난번에 소개했던 피트 로즈의 영구 제명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이 "
블랙 삭스 스캔들(Black-Sox scandal)" 이다.

보통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돈에 눈이 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하여 한 몫 잡으려고 한,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더러운 스캔들로 치부하곤 한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맞다, 다 맞는 말이다.

허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 선수들이 처음부터 악한 마음을 품고 이러한 일을 꾸민 것이 아니라, 정말 이제는 참다 참다 더는 못 참아서 이제는 좀 살만하게 바꿔보잔 식으로 마치 우리나라 50년대 선거 때와 같은 슬로건을 내걸고 주먹 불끈 쥐고 궐기한 일종의 항의 시위였다는 것이다.

사건의 배경에는
찰스 코미스키라는 당시 화이트삭스 구단주가 있는데(지금 화이트삭스 구장 이름이 바로 ‘코미스키 파크’ 이다), 글쎄 ‘빌리 빈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짠돌이 중에 짠돌이인 악덕 구단주였다.

글쎄 이 분(?)이 돈을 얼마나 안 썼냐 하면 당시의 관행이었던 선수들 유니폼 빨래비도 지급하지 않아서, 화이트 삭스 선수들은 언제나 더러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어야만 했다고 한다. 결국 1918년 참다못한 선수들이 급기야 자신의 팀 이름을 ‘
Black Sox’ 로 바꾸고 몇 주 동안 플레이하기에 이른다.

하여튼 당시 화이트삭스 선수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눈물 나는 투혼을 발휘, 1919년 엄청난 성적으로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였는데, 당시 삭스는 최고의 팀으로 불리며 이미 대전 상대인 신시네티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박사들이 점친 우승확률은 5:1 , 사실상 이미 끝난 시리즈나 다름없었다.

허나, 당시 화이트삭스에는 욕심 많고 돈에 한 맺힌
칙 갠딜이라는 1루수가 있었는데, 그가 흑심을 품고 시리즈 직전 조셉 설리반이라는 도박사를 자신이 묵는 보스턴 호텔에 부르면서 참사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는 팀메이트들을 상대로 교섭에 들어갔는데...

우선 시즌 52승을 합작해낸 에이스
에디 시카티(29승 방어율 1.82)와 좌완 2선발 클라우드 윌리암스(23승 방어율 2.63) 에게 꼬리치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 불만많던 윌리암스는 당장 동의했고, 불만을 넘어 앙심을 품고 있던 시카티도 역시 흔쾌히 거기에 응했다.

참고로 1917년 시즌 시작 전 구단주 코미스키는 시카티에게 만약 30승 이상을 기록하면 1만 불의 보너스를 주기로 약속했는데, 그가 시즌 종료를 한 달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28승을 기록하자 남은 전 경기를 벤취에 앉아 있게 했다. 물론 돈을 지급 하지 않기 위해서... 사건이 있었던 1919년 29승을 기록한 시카티지만 그의 연봉은 6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앙심을 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1919년 9월 21일 갠딜은 나머지 7명의 동조자를 모아서 브로드웨이의 앤소니아 호텔에 모였고 그 중엔
조 잭슨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타격왕 타이 캅과 함께 4할대의 불꽃 튀는 타격으로 타이틀을 놓고 경쟁 했으며(1911년 .408이라는 시즌타율을 기록하지만 .420을 기록한 캅에게 결국 타격왕을 내어줌), 저 위대한 베이브 루스조차도 존경과 찬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맨발의 조(Shoeless Joe)' 가 바로 그다.


(여기서 잠깐 조 잭슨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그의 별명 ‘맨발의 조’ 는 마이너 시절 새로 구입한 스파이크가 너무 꽉 끼어서 당일 경기에 양말만 신고 뛴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이런 촌스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는데, 한번은 시합 중 술 취한 관중이 "헤이~ 조! 당신 ‘Cat’ 은 쓸 줄 아나?" 하고 자꾸만 야유를 보내자 참다못해 화가 난 조 잭슨이 그에게 달려가 "이봐 형씨! 당신 ‘Shit’ 은 쓸 줄 알아??"라고 맞받아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후 사건이 터지고 죽는 그 순간까지 승부 조작보단 돈에 혹해서 가담했으며 시합 중엔 어떤 계획된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언제나 결백을 주장했던 선수, 잭슨이 실제로 월드 시리즈에서 남긴 성적은 정말 화려했다. 3할7푼5리의 타율과 6득점, 시리즈 최고기록인 12안타, 그리고 노 에러... )

하여튼 계획된 시리즈는 시작되었는데, 선발 투수가 이길 마음을 버린 경기에서 어찌 승리할 수 있었으랴, 시카티가 나온 1차전 9-1패배, 윌리암스가 나온 2차전 4-2패배. 결국 시리즈는 그들이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도박사들이 선수들에게 약속된 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분노한 선수들은 3차전 경기에서 발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었고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던 신인 선발투수
디키 커가 완봉 역투하는 가운데 화이트삭스가 3-0으로 이겨버렸다.

당황한 도박사들은 선수들에게 다시 돈을 지급했고, 이어서 계속된 4차전에선 선발투수 시카티의 눈에 보일정도의 고의적 실책으로 2-0으로 패배, 5차전도 윌리암스의 고의적 피칭으로 5-0 패배, 1승 4패로 단 1패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 5선승 제)

도박사들은 이미 많은 돈을 벌었고, 그 이익을 당연히 선수들에게 나눠주어야 했다. 하지만 탐욕스런 도박사들은 또다시 약속을 어겼고, 이 무렵부터 이러한 더러운 음모의 실체는 점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의욕을 잃은 선수들, 사실 지금까지 고의적으로 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팬들도 구단주도 아닌 바로 선수들 자신이었다. 이전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다시 열심히 뛰기 시작했고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며 6차전, 7차전을 5-4, 4-1로 승리, 이로 인해 화이트삭스 팬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허나 열 받은 도박사들은 다음날 선발투수인 윌리암스를 협박했고 (‘다음날 잘 던지면 자식과 부인을 죽여 버리겠다’ 는 식으로...), 심리적 평정을 잃은 윌리암스의 난조는 갠딜과 잭슨의 타격지원에도 불구하고 10-5 패배, 시리즈를 신시네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시리즈 후 그들의 음모는 모두 밝혀졌고, 수많은 재판(재밌게도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과 논쟁 끝에 대법원 판사 출신이었던 당시 커미셔너
케네소 랜디스는 이들 8명의 영구 제명을 명하였으니. 이렇게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한 블랙삭스 스캔들은 막을 내린다.

주모자격이었던 권투선수 출신의 1루수 Chick Gandil, 에이스 Eddie Cicotte, 좌완 2선발 Claude "Lefty" Williams, 유격수 Charles 'Swede' Risberg, 3루수 Buck Weaver, 백업 내야수 Fred McMullin, 중견수 Happy Felsch, 그리고 전설적인 타격왕 'Shoeless' Joe Jackson, 바로 이들이 8명의 비운의 주인공들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또 다른 영화 “Eight Men Out(그라운드의 이단아들)”을 보시라. 마지막 장면에서 조 잭슨이 야구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동네 야구장에서 아저씨들과 야구를 하는 모습은, 앞으로도 수많은 야구팬들의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게 만들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블랙삭스 스캔들은 이처럼 슬픈 사건이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이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용만 당하다가 추방당해야 했던 불쌍한 선수들. 난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PS 다음 주에는 피트 로즈와 조 잭슨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억세게 재수 없었던 선수들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소개할 생각이다. 재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유명한 이들은 아니다. 단지 재수만 더~럽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