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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AL 다승 1위’ 다르빗슈, 타선 도움 덕일까?

by 카이져 김홍석 2012. 5. 29.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26)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르빗슈는 한국시간으로 28일 시즌 10번째 선발 등판에서 5이닝 3실점 승리를 따내며 7승에 성공, 아메리칸리그 다승 부문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다르빗슈는 현재까지 10경기에 등판해 61이닝을 소화하며 3.25의 수준급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은 리그 12, 투구이닝은 20위다. 피안타율(.235)는 낮지만, 볼넷은 35개나 허용해 이닝당 출루허용율(WHIP) 1.46으로 다소 높은 편이다. 에이스급 투수들의 WHIP이 보통 1.20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구내용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서는 현재 다르빗슈의 다승 1위 등극이 소속팀의 막강 타선에 힘 입은 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있다. 평균자책점에 비해 승수가 많다는 것이 일부 팬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다르빗슈가 다승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단순히 타선의 지원 덕분일까?

 

실제로 올 시즌 텍사스 타선은 48경기에서 276득점, 경기당 평균 5.75점을 기록 중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에서도 압도적인 1위의 공격력(2위는 5.27득점의 보스턴)이며, 올 시즌 리그 전체 평균득점(4.24)보다는 무려 1.5점이 많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가 20년 만에 가장 극심한 투고타저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다르빗슈가 타선의 지원을 얻어 많은 승수를 쌓았다는 말이 마냥 허투루 들릴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텍사스 타선의 강세가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텍사스는 지난 십 수년간 항상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타력을 과시해왔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는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무려 16명이나 탄생했다. 그 중에는 작년까지 텍사스에서 뛰었던 C.J. 윌슨( LA 에인절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윌슨은 지난해 2.9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다른 15명의 투수들과는 그 기록의 의미가 남달랐다. 텍사스 소속으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탄생한 것은 1991년의 놀란 라이언(2.91) 이후 무려 20년 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라이언의 투구이닝을 173이닝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에이스라 불리려면 적어도 200이닝은 소화해야 한다. 텍사스 소속의 투수가 20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시즌을 찾으려면 그로부터 13년 전인 1978년의 존 매틀락(270이닝 2.27)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윌슨은 무려 33년 만에 200이닝-2점대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달성한 텍사스 소속의 선발투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텍사스에서 에이스라 불릴 만한 투수를 보기 힘들었던 것은 팀 타선이 항상 리그 정상급인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 이유는 구장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텍사스의 홈구장인 알링턴 레인저스 볼파크는 아메리칸리그에서 가장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기 때문이다.

 

레인저스 볼파크는 그 유명한 쿠어스필드에 버금갈 정도의 타자들의 천국이다. 평범한 타자도 이곳에만 오면 3할 타자가 되고, 3할 타자는 홈런 타자가 되기 일쑤다. 그리고 그러한 이점은 홈팀뿐 아니라 원정팀도 동일하게 누린다. 텍사스 소속의 투수들이 매년 고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동안 텍사스에서는 2점대는 커녕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도 1년에 1~2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6년 켄 힐(250이닝 3.63) 이후 5년 동안 텍사스에서는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없었고, 2002년의 케니 로저스(210이닝 3.84) 이후 다시금 200이닝-3점대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를 보기까진 무려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10년에는 C.J. 윌슨(당시 204이닝 3.35)과 콜비 루이스(201이닝 3.72)가 동시에 200이닝과 3점대 평균자책점을 달성하며 1992년 이후 18년 만에 두 명의 에이스를 보유하게 됐고, 2011년에는 3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무려 4명이나 탄생했다. 윌슨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200이닝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텍사스가 2010년과 2011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투수들이 나타나준 덕분이었다.

 

따라서 다르빗슈가 올 시즌 현재 기록 중인 3.25의 평균자책점은 아주 뛰어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해도, 지난 20년 동안 텍사스에서 그보다 좋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는 지난해의 윌슨이 유일하다. 윌슨의 경우는 홈과 원정의 성적 편차가 매우 심한 편이었다. 작년에도 원정에서는 2.31의 매우 뛰어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홈에서는 3.69로 그 차이가 상당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는다.

 

다르빗슈는 올 시즌 홈에서 등판한 5경기에서 3.3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5승을 챙겼다. 타선의 충분한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홈구장에서 상대 타선을 막고 좋은 피칭을 했기 때문에 다승 선두로 올라설 수 있었던 셈이다. 다르빗슈의 다승 선두 등극을 단순한 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더라도 샌디에고-시애틀 소속의 투수와 텍사스-콜로라도 소속의 투수는 그들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르빗슈의 3점대 초반 평균자책점은 평범한 구장을 홈으로 쓰는 투수의 2점대 평균자책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다르빗슈가 평균자책점이나 투구내용에 비해 다소 높은 승수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투수들이 하지 못했던 좋은 피칭을 홈구장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페이스를 시즌 막판까지 이어간다면, 다르빗슈는 1992년의 케빈 브라운(265이닝 21 3.32) 이후 20-200이닝-3점대 평균자책점을 동시에 달성한 팀 역사상 3번째 투수가 될지도 모른다.

 

// 카이져 김홍석

 

☞ 이 글은 <마니아리포트>에 기고한 글입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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