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기 MVP가 하루 아침에 ‘국제 미아’로...
지난해 8월 11일, 제66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가 한창인 서울 목동구장에서는 대구 상원고등학교와 천안 북일고등학교가 우승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7회까지 2-1로 살얼음판 리드를 지키고 있던 상원고는 8회 수비를 앞두고 에이스 카드를 꺼내 들었고,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9회까지 실점 없이 팀 승리를 지켜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모교를 우승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 ‘싸움닭 투수’는 2학년의 몸으로 MVP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올 시즌 국내에서 열리게 될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았던 좌완 김성민(18)이 그 주인공이다.
최고 구속 144km에 이르는 빠른 볼이 장기인 김성민은 중학 시절부터 전국 랭킹을 다투었던 투수 자원이었다. 상원고 입학 이후 1학년 시절에는 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투수 조련사 박영진 감독의 지도를 받고 나서 야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후반기 주말리그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선보이며 프로 스카우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지난해 12월 열린 ‘아시아 3개국 고교야구 친선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올해 1월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던 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대한야구협회(KBA)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아직 3학년 진학을 하기 전, 2학년 신분으로 프로 구단과 사전 접촉을 했다는 사실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 ‘무적 선수’ 김성민의 안타까운 사연...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대한야구협회 지도자 및 선수등록규정 제10조 4항이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학생 선수 중 졸업년도에 재학 중인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구단과 접촉할 수 있고, 이를 위반하면 해당 선수의 자격을 즉시 유보하여 제재토록 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1997년 신일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봉중근(LG)이 애틀랜타에 입단하면서 강화됐다. 이후 김병현, 최희섭 등이 대학을 중퇴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본 규정에 따라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바 있다. 그리고 김성민 역시 선례를 따라 동일한 중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소식을 접한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역시 메이저리그에 정식 항의 공문을 보냈고, 대한야구협회는 아예 볼티모어 스카우트 팀의 구장 출입 자체를 불허했다. 이러한 방침이 결정되자 볼티모어 지역 일간지에서도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유망주를 빼 오려다가 국제 망신을 당한 꼴’이라며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은 볼티모어 구단에 대한 싸늘한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역시 김성민의 계약을 곧바로 승인하지 않고 ‘30일간 잠정 유보’ 결정을 내렸고,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남은 것은 사전 접촉 금지 기간인 30일 이후 양자가 다시 계약하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성민과 볼티모어 구단 사이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탄 김성민이 볼티모어 구단 관계자들 앞에서 한두 차례 테스트를 받았을뿐, 계약과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김성민 측에서는 볼티모어에 계약 여부에 대해 지속적인 문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라는 원론적인 대답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2일, 볼티모어 지역 일간지를 통하여 본 계약이 ‘없던 일’이 되어 버리면서 김성민은 하루 아침에 ‘무적 선수’ 신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때 국내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에 지명될 확률이 매우 높았던 고교 정상급 유망주가 이제는 자신을 받아 줄 곳을 찾아 다녀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상원고 박영진 감독은 전화 통화를 통해 “지금은 학교를 다니게 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보는 나도 안타깝고 참 안쓰러운데 본인은 오죽하겠는가.”라며 제자이자 후배인 김성민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많은 이들이 간과한 사실을 어필하기도 했다.
“차라리 계약금을 받은 상태에서 무기한 자격 정지를 받았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금전적인 부분이 일체 오가지 않은 상황에서 협회는 징계를 내렸고, (김)성민이는 그 사이에서 야구 미아가 됐다. 이도 저도 안 된 상황이니, 참 답답하다. 그리고 잘 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데, 사실 (김)성민이는 자퇴서를 낸 적이 없다. 자퇴를 했다면 지금 어떻게 학교를 다니겠는가.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김)성민이를 돕고 싶다.”
물론 김성민 측이 규정까지 어겨가며 ‘다소 서두르듯’ 미국 진출을 선언한 것은 분명 잘못이다. 대한야구협회가 그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도 한국 야구의 발전과 존속을 위한 당연한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약 일변도’의 정책이 어린 선수들에게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잊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금번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비롯하여 해외 진출을 선언한 선수들에 대해 2년간 국내무대에서 뛸 수 없게 한 KBO의 조항도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 조항과 관련해 서울 지방 법원은 지난 2006년 8월 당시 시카고 컵스에서 돌아온 권윤민(현 KIA 타이거스 스카우트)의 ‘신인 2차 지명을 받을 권리보전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다. 이는 해외진출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부여하는 규정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판례이기도 하다.
KBO나 대한야구협회 모두 기존에 내려진 처벌을 다시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징계가 철회된다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의 경우 징계가 풀린 이후로도 1년간은 프로구단 입단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야구밖에 모르며 자라왔던 한 유망주의 ‘장래’를 이렇게 가로막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직하다.
// 유진 김현희 [사진출처=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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