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털사이트에서 투표를 한 결과,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장면으로 무려 3번의 오심이 나온 6월 13일 KIA와 넥센의 경기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런다운 상황에서 무사히 살아서 진루한 이택근의 플레이도, 끝내기 에러를 범한 양종민의 실수도 팬들을 분노케 한 ‘오심’보다 많은 관심을 얻진 못했다.
700만 관중을 넘어 800만 관중을 바라보고 있는 올 시즌 프로야구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아니, 어쩌면 ‘예견된 암초’였는 지도 모른다. 오심은 팬들을 자극하는 가장 위험한 장애물이며, 반성할 줄 모르는 심판의 태도와 KBO의 안일한 대처는 팬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오심과 관련된 각종 논란 속에 프로야구가 병 들어 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결정적인 순간의 오심이 터져 나오면서 KBO 게시판은 이를 성토하는 팬들의 항의로 가득 차 있다. 하도 오심이 많이 나오다 보니 리플레이를 통해 오심임을 확인한 캐스터와 해설자들 조차도 쉽게 ‘오심’이란 말을 내뱉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사람도 심판인 이상 실수는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빈도가 너무 잦다 보니 이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구차한 변명은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다.
▲ 우리나라 심판이 메이저리그보다 수준 높다고?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오심은 존재한다. 오심이 나오는 확률도 우리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 아니, 엄밀히 따져 보면 훨씬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야구 해설자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보다 우리나라 심판의 수준이 더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심판의 오심과 우리나라 심판의 오심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한 비즈니스 사업이며, 심판 판정에 있어서도 그러한 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전체 판정 중에 오심이 나오는 비중은 한국 프로야구보다 높을지 모르지만, 판정에 대한 반감은 훨씬 덜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난 10년(2002~11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홈팀의 승률은 54.2%였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의 홈경기 승률은 109승 111패로 5할이 채 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평균을 내더라도 50%를 간신히 웃도는 정도다.
왜 이렇게 두 리그의 홈팀 승률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야구는 9회 말이나 연장전에서 ‘끝내기’ 찬스를 가진 홈팀이 심리적으로 조금 더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스포츠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리그당 팀만 해도 우리나라의 2배 가까이 되고, 그런 만큼 선수들이 원정경기에서 느끼는 생소함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다. 홈구장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그 이점을 누릴 수 있는 홈팀 선수들이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다른 이유는 심판 판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심판 판정에 있어 ‘홈 어드벤티지’가 분명히 적용된다. 대놓고 오심을 범해 홈팀을 도와준다는 뜻이 아니다. 태그와 동시에 주자의 발이 베이스에 닿는 등 판정이 매우 애매할 때, 즉 100% 확신할 수 없는 경우라면 심판들은 대부분 홈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곤 한다. 이것은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NBA나 NHL 등 미국의 프로 스포츠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런 판정을 일일이 슬로 비디오로 돌려보면 오심인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굳이 리플레이를 돌려보지 않고서는 육안으로 도저히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라면, 과연 이것을 두고 ‘오심’이라 할 수 있을까? 또한, 그런 실수가 많다고 하여 메이저리그 심판의 수준을 우리나라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팀이든 홈경기에서 더 많이 이겨야 지역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 마련이다. 원정에서는 형편 없는 승률을 기록하더라도, 홈에서는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는 팀이라면 팬들은 야구장을 찾는다.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고, 그것이 메이저리그가 세계 최고의 상업 리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경우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승부에 임하는 자세가 엄격하다. 마치 결벽증을 앓는 환자처럼 ‘공정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공정성 제일주의’가 결과적으로 심각한 오심을 불러오고, 팬들의 반발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메이저리그의 경우 ‘홈 어드벤티지를 반영한 판정’은 하나의 룰이며, 오히려 그것이 일관된 판정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모든 팀이 동일하게 홈경기에서는 얼마간의 이득을 보고, 원정에서는 조금의 손해를 본다. 원정에서는 애매한 판정으로 인해 경기를 놓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홈에서는 같은 이유로 놓칠 뻔한 경기를 잡을 때도 있다. 하나하나의 판정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시즌 전체의 흐름을 놓고 보면 이것이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공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오심은 홈팀과 원정팀을 가리지 않는다.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심판은 그때마다 다른 판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울고 웃는 팀이 매번 달라진다. 확률상으로는 모든 팀들이 오심에 대한 피해(?)를 동일하게 입었다고 봐야겠지만, 팬들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대중 없이 오심이 나오다 보면 8개 구단 팬들 전부가 ‘내가 응원하는 팀은 심판 판정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홈 어드벤티지에 의한 암묵적으로 동의된 오심’이 일관성 있게 나오는 것보다 훨씬 못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홈 어드벤티지에 의한 판정’을 모두의 동의 하에 받아들이는 것이 오심에 관한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비디오 판독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정확한 판정’에 목 매달 이유는 없지 않을까. 좀 더 인간적이면서도 흥행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프로야구 관계자는 물론, 팬들의 대승적인 동의도 필요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홈에서는 조금의 이득을 보는 대신, 원정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승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공정함을 내세우는 우리나라 정서상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한쪽 면만 바라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심판이 정확하고도 공정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불가능한 해결책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심에 멍들어가는 프로야구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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