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가 51일 만에 리그 1위에 복귀했다. 롯데가 6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1위에 오른 건 단일리그 제도 하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시즌 초반 반짝 1위를 달린 적은 많았지만, 본격적인 순위 레이스가 시작된 여름 이후로 선두에 올라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 그만큼 롯데가 저력 있는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1위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뒤로 추락을 거듭하다 5할 승률이 깨지고 6위로 추락했을 때만 해도 그대로 롯데의 올 시즌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조금씩 올라오더니 마침내 선두 탈환에까지 성공했다. 올해의 롯데가 예년과 확실히 다르다는 뜻이며, 그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투수력에 있다.
현재 롯데의 팀 평균자책점은 3.63으로 삼성(3.65)을 제치고 리그 1위. 반면 경기당 평균득점은 4위다. 지난 몇 년 간 롯데라는 팀의 이미지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실책이 워낙 많아 경기당 평균 실점은 삼성-SK에 이은 3위권이지만, 그 정도만 되도 롯데 팬들은 감지덕지다. 90년대만 해도 롯데는 ‘투수왕국’이라 불릴 만큼 투수력이 강한 팀이었지만, 롯데가 정규시즌 최고 승률(.591)을 기록했던 1999년에 마지막으로 팀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매번 빈약한 투수력에 시달렸었다.
▲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 유먼-이용훈
2001년 김병현이 뛰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랜디 존슨과 커트 쉴링이라는 두 특급 에이스의 맹활약을 통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원투펀치’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명의 강력한 선발진을 보유한 팀은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서 특히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롯데가 지난 4년 동안 매번 포스트시즌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도 팀에 리그 정상급의 강력한 에이스가 없었고, 그 뒤를 받칠 2선발의 수준도 다른 경쟁팀에 비해 밀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롯데는 손민한 이후 실로 오랜만에 리그 정상급 에이스를 보유하게 됐고, 그 숫자는 무려 2명이다. ‘롯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국인 투수’인 유먼과 ‘퍼펙트맨’ 이용훈이 그 주인공이다.
롯데는 5연승을 포함해 최근 7경기에서 6승을 거뒀는데, 그 중 4승을 유먼과 이용훈이 책임졌다. 이들 두 명이 1위 탈환의 1등 공신인 셈이다. 이용훈은 원래 팀의 5선발이었으나, 최근 들어 실질적인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유먼과 이용훈의 원투펀치 조합은 올 시즌 8개 구단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먼은 지금까지 13경기에 등판해 6승 2패 평균자책 2.25를 기록 중이다. 승주는 조금 모자라지만 평균자책점 부문 2위에 올라 있으며, 탈삼진(77개) 역시 류현진에 이어 2위다. 투구내용은 더 훌륭하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피안타율(.210)을 기록 중이며, WHIP(1.06)도 윤석민(0.99) 다음으로 좋다. WHIP가 1.10 이하면 ‘특급 에이스’라 불려도 무방하다. 이미 카스포인트(CassPoint) 순위에서도 1,505점을 획득, 다승 선두인 주키치(1,400)와 니퍼트(1,328) 등을 제치고 선발투수 중 1위로 올라섰다. 한 경기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최고의 에이스가 마침내 롯데에 나타난 셈이다.
이용훈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 16경기에서 7승 2패 평균자책 2.41의 아주 훌륭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점과 다승에서 리그 4위에 올라 있으며, 피안타율(.242)은 다소 높은 편이지만 WHIP는 1.10으로 이 역시 4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선발 등판 경기만 놓고 보면 이용훈의 기록은 더욱 놀랍다. 10경기에서 1.9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현재 카스포인트 1,265점으로 투수부문 9위(선발 6위)에 올라 있지만, 앞으로 더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는 매년 3명의 10승대 투수를 배출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선발진을 꾸려왔다. 하지만 그 중 리그 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투수는 2008년의 손민한(12승 4패 2.97) 정도 뿐, 이후로는 누구도 그만한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유먼과 이용훈이 동시에 리그 정상급 기량을 뽐내며 팀의 원투펀치로 자리잡았다.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1992년에도 윤학길과 염종석이라는 걸출한 원투펀치가 위력을 발휘하던 때였다.
▲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불펜!
원투펀치의 등장도 반갑지만, 더 놀라운 건 불펜진의 활약이다. 정상급 에이스가 없었다 뿐, 지난 4년 동안 롯데의 선발진은 양적으로 풍부한 상황이었다. 항상 발목을 잡았던 것이 불펜과 수비였는데, 올해는 불펜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며 팀 승리를 지켜내고 있다.
현재 롯데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3.34로 삼성(3.33)에 이은 2위를 기록 중이다. 롯데가 SK보다 뛰어난 불펜을 보유했다는 점, 이것이 롯데가 1위를 탈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팬들은 이젠 동점인 상황에서 9회를 맞이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4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필승 불펜조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롯데에는 박희수나 유원상, 오승환 같은 특급 셋업맨이나 마무리는 없다. 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주어진 역할 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이명우(40경기 2.54)와 김성배(39경기 2.18)는 불펜진의 두 기둥이 되었으며, 시즌 초반에는 최대성(35경기 4.26)이 좋은 피칭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최근에는 최대성이 다소 부진한 편이지만, 그래도 그가 올 시즌 롯데의 상승 분위기에 주춧돌을 놓았다는 점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무리 김사율은 현재 26경기에서 1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 중이다. 세이브 부문 단독 2위에 올라 있으며, 현재까지 3번의 블론 세이브를 범해 86%의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특급 마무리, 혹은 정상급 마무리라 부를 수 있는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롯데에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85% 이상의 성공률을 보여주는 마무리 투수를 본 적이 있었던가? 김사율은 롯데 팀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로 거듭나는 중이며, 카스포인트 순위에서도 1,090점을 얻어 투수 부문 전체 10위, 구원투수 중 4위에 올라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 투수진의 혹사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명우와 김성배 등이 많은 경기에 등판하고 있지만, 투구이닝은 각각 28⅓이닝, 33이닝으로 경기당 1이닝도 채 되지 않는다. 투구수도 449개와 521개로 다른 구원투수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가장 좋은 건 등판 횟수를 조금 줄이면서 1이닝씩을 책임지는 것인데, 롯데가 5월 중순에 추락했던 것도 그게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양승호 감독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롯데의 불펜 자원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큰 기대 속에 거액을 주고 영입한 정대현과 이승호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양승호 감독의 능력으로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iSport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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