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인 유먼(33)이 롯데 팬들의 오랜 갈증을 제대로 풀어주고 있다. 9일 LG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해 8이닝 1실점 11탈삼진의 멋들어진 피칭으로 시즌 10승째를 달성한 유먼은 롯데의 역대 외국인 투수 가운데 3번째로 10승 고지를 점령했다. 좌완투수 중에는 처음이다.
현재까지 21경기에 선발등판한 유먼은 140⅔이닝을 던지며 118안타 38볼넷 113탈삼진 10승 5패 평균자책 2.50의 아주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과 탈삼진은 2위, 다승과 투구이닝은 3위에 올라 있다. 뿐만 아니라 피안타율(.231)과 WHIP(1.11), 퀄리티스타트 횟수(15회) 등의 주요지표에서도 모두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말 그대로 ‘리그 최정상급의 특급 에이스’다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의 기록을 통일된 수치로 환산해 그 우열을 가리는 카스포인트(Cass Point)에서도 총 2,242점을 얻은 유먼은 전체 투수들 가운데 당당히 1위에 올라 있다. 그 뒤를 특급 마무리 오승환(2,200)과 최강 셋업맨 박희수(2,065)가 따르고 있고, 다승 1위인 장원삼(1,998)이 선발 투수들 중 유먼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 중이다.
<선발투수 카스포인트 랭킹>
1위. 유먼(롯데) 2,242점
2위. 장원삼(삼성) 1,998점
3위. 니퍼트(두산) 1,813점
4위. 나이트(넥센) 1,783점
5위. 주키치(LG) 1,630점
6위. 류현진(한화) 1,595점
7위. 이용찬(두산) 1,572점
8위. 탈보트(삼성) 1,455점
9위. 윤석민(KIA) 1,415점
10위. 노경은(두산) 1,343점
▲ 롯데의 기나긴 외국인 투수 잔혹사
한국 프로야구에 ‘용병’이라 불린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트라이아웃을 통해 외국인 선수를 선발했는데,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롯데는 ‘빅터 콜’을 뽑았다. 그러나 연봉상한선이 12만 달러였던 당시에 빅터 콜은 무려 45만 달러를 요구했고, 롯데는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롯데의 외국인 투수 잔혹사는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이듬해 롯데는 ‘마이클 길포일’이란 백인 좌완투수를 뽑았지만, 구원으로 등판한 6경기에서 9실점하며 일찌감치 퇴출당하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가 도입된 후 기량 미달로 인해 퇴출이 결정된 첫 번째 선수가 바로 길포일이다.
그 길포일의 대체선수로 영입한 선수가 지금도 롯데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에밀리아노 기론’이다. 처음에는 ‘호세의 말동무를 위한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을 정도로 별 기대 없이 데려왔던 선수지만, 기론은 이후 롯데의 스윙맨으로 맹활약하며 1999년 팀의 준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선발로 변신한 2000시즌에는 10승(8패)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의 평균자책점은 5.01이었고, 아무리 극심한 ‘타고투저’의 시대였다고 해도 좋은 성적이라 보긴 어려웠다. 당시 기론의 평균자책점은 규정이닝을 채운 19명의 투수들 중 16위에 불과했다. 이후 롯데에서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를 다시 보기까진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 사이 롯데는 2001년 기론의 대체 선수로 영입한 레이 데이비스(9경기 등판 후 재계약 실패)를 비롯해, 다니엘 매기(2002년, 시즌 중 SK로 트레이드), 페르난도 에르난데스(2002년, 매기와 트레이드 직후 퇴출), 모리 가즈마(2003년, 시범경기 4번 등판 후 퇴출) 등을 영입했지만 하나같이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이후 롯데는 한동안 외국인 투수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다가 4년만인 2007년에야 호세 카브레라를 영입했다. 카브레라는 마무리 투수로 나름 쏠쏠한 활약(3승 4패 22세이브 3.65)을 펼쳤지만, 블론세이브도 6번이나 되는 등 안정감 면에서는 합격점을 받지 못해 구단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 2008년에는 마티 매클레리(5승 5패 4.60)와 데이빗 코르테스(2승 1패 8세이브 2.84), 2009년에는 존 애킨스(3승 5패 26세이브 3.83) 등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그들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던 2010년, 마침내 롯데에 제대로 된 외국인 투수가 등장했다. 28살의 백인투수 라이언 사도스키가 그 주인공이다. 전년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던 비교적 젊은 투수의 영입에 팬들은 환호했고, 사도스키는 기대대로 2010년 10승 8패 평균자책 3.87, 2011년 11승 8패 평균자책 3.91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롯데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롯데는 사도스키 외에도 브라이언 코리(4승 3패 4.23)와 크리스 부첵(4승 2패 5.06)을 사도스키의 파트너로 연달아 영입했지만, 이들 역시 실망감만 안겨준 채 한국을 떠났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후 14년 동안 롯데에서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는 기론과 사도스키 단 두 명이었고, 재계약에 성공한 선수 역시 이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롯데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라 평가할 수 있는 사도스키의 성적도 ‘특급용병’ 혹은 ‘에이스’라는 수식어를 달기엔 조금 부족했다. 그 동안 롯데가 영입한 외국인 투수들의 수준이 워낙 형편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것이었을 뿐, 사도스키의 2% 부족한 피칭은 항상 팬들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껍질을 깨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항상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는 기대에 못 미치는 피칭으로 일관하면서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암울한 역사가 있기에 롯데 팬들은 올 시즌의 유먼을 바라보며 더욱 환호할 수밖에 없다. 유먼이 사도스키가 가진 팀 내 외국인 투수 최다승(11승)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뿐이 아니다. 롯데 팬들은 실로 오랜만에 유먼에게서 ‘특급 에이스’의 향수를 느끼고 있다.
아직 시즌은 40경기를 남겨두고 있고, 9월 들어 우천 순연으로 인한 파행일정이 나온다면 각 팀의 1~2선발급 투수들은 최대 10경기 이상도 등판이 가능하다. 유먼이 앞으로 충분히 15승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먼이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15승을 거둔다면, 롯데에선 2005년의 손민한(18승 7패 2.46) 이후 무려 7년만에 ‘특급 에이스’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롯데의 팀 역사를 통틀어봐도 2점대 평균자책점과 15승을 동시에 달성해 리그 최정상급 에이스의 위용을 뽐낸 선수는 최동원(1984~86년), 윤학길(89년), 염종석(92년), 그리고 손민한(05년)까지 4명뿐이었다. 그리고 롯데는 이런 투수들과 함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우승을 일궈냈다. 84년 첫 우승의 주역은 최동원이었고, 92년에는 염종석이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유먼이 있다.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롯데 팬들이 내심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iSport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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