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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의 ‘명품 커브 & 투심’ 드디어 되살아나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8. 3. 16.

박찬호가 시범경기 방어율 ‘0(제로)’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MLB의 중국 투어로 인해 어제 중국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시범경기에 선발로 등판한 박찬호는 5이닝 동안 단 하나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1실점(비자책)의 훌륭한 피칭을 선보였다. 볼넷은 하나를 허용했고, 삼진은 3개를 잡았다.


이로써 박찬호는 시범경기에 4번 등판해 12이닝(로아이자와 함께 팀 내 1위)을 던지면서 단 하나의 자책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방어율 0.00을 기록하고 있다. 12이닝 동안 허용한 피안타는 고작 3개, 7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3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시범경기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도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방송을 지켜보지는 못하고 재방송으로 경기를 봤다. 미리 소식을 듣고 있었던 터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호들갑을 떨며 박찬호의 호투 소식을 전해주던 지인들이 왜 그렇게들 흥분했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박찬호가 부진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구위의 상실’이 컸다. 좋은 활약을 펼쳤던 WBC에서조차도 전성기 시절의 빼어난 구위를 선보이지는 못했었다. 투심은 날카롭지 못했고, 커브는 제구가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아무리 로케이션을 좋게 가져가려고 해도 구위 자체가 떨어진다면 승부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제의 박찬호가 보여준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변화의 핵심은 박찬호 최대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볼 끝이 살아있는 위력적인 투심과 날카롭게 떨어지는 명품 커브의 부활이었다. 과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엘리트급 투수로 활약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투심과 커브의 위력이 되살아났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8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13번이나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초구의 대부분은 투심이었으며 예리하게 꽂히는 투심은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다. 좋은 볼 카운트를 만들고 난 후의 승부구는 커브. 상대타자들을 박찬호의 투심과 커브의 조합에 쩔쩔 매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커브를 치기 어렵겠다고 느낀 상대타자들은 박찬호의 패스트볼을 노려서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3개의 탈삼진을 제외한 나머지 12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무려 9번이 땅볼, 외야로 날아간 공은 단 3개에 불과했다. 두말 할 것 없이 투심 패스트볼의 위력이다.


물론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0마일 대 중후반에 이르던 전성기시절에 비하면 직구의 스피드가 약간 하락했지만(90~92마일 사이) 구위만 되살아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박찬호에게는 지난 15년의 경험이 있고 기본적인 스피드만 갖춰진다면 각 구질의 조합으로 상대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다.


90마일 초반 대에 형성되는 투심 패스트볼과 낙차와 각이 뛰어난 커브, 그리고 간간히 적절한 상황에서 섞어주는 체인지업이 박찬호의 손가락 끝에서 제구가 되기만 한다면 그는 분명히 올 시즌 위력적인 투수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박찬호는 현재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전체 방어율 1위다. 방어율 제로를 기록하고 있는 몇몇 투수들 중 찬호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한 명도 없다. 마이너리거들이 대거 포함된 시범경기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선보이는 선수가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5선발 경쟁자인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첫 경기의 부진 이후 3경기 연속 좋은 피칭을 이어오고 있고, 대만 출신의 궈홍즈 또한 걸림돌이 된다.


보통 5선발 경쟁을 한다고 하면 거기에서 밀리는 선수는 롱 릴리프 겸 대체 선발 요원으로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진입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옵션이 모두 소진된 궈홍즈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다저스가 궈홍즈를 메이저리그의 25인 로스터에서 탈락시킨다면 다른 팀에서 그를 데려갈 수 있기 때문.


다저스 입장에서는 찬호와 로아이자 두 명을 모두 기용하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명을 탈락 시켜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비슷한 입장이라면 로아이자(700만불)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연봉을 받는 박찬호가 불리한 터라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순 없다.


하지만 기회는 분명히 있다. 비록 시범경기라고는 하지만, 다저스의 팬들은 돌아온 박찬호의 좋은 성적을 주목하고 있다. 로아이자와 박찬호의 5선발 경쟁은 요즘 다저스 팬 포럼의 최대 화두다.


결정은 조 토레 감독의 손에 달려 있지만, 예전과는 달리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구위가 되살아났고 시범경기에서 충분한 실적을 보여준 만큼 어떤 형태로든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지만, 지금의 박찬호는 기회가 오기만 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만한 능력이 엿보인다.


이미 ‘과연 가능할까?’의 수준이었던 ‘꿈’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