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투수가 등장하자마자 류현진(27, LA 다저스)의 승리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한국시간으로 3월 31일 열린 LA 다저스와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2014 메이저리그 본토 개막전은 샌디에고의 3-1 막판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류현진 본인은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고, 비록 1점 차 상황이긴 해도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믿었던 불펜은 그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류현진은 7회까지 3안타 3볼넷을 내줬지만, 7개의 삼진과 2번의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무실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피칭을 펼쳐 보였다. 상대 선발 앤드류 캐시너도 6이닝 1실점으로 팽팽하게 맞섰지만, 류현진은 끝내 틈을 보이지 않으며 1-0으로 리드한 가운데 마운드를 넘겼다.
사실 호주 개막시리즈에서 발톱 부상을 당했던 류현진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가운데 마운드에 올랐다. 실제로도 시작은 매우 불안했다. 1회 말 상대 1,2번 타자에게 볼넷과 안타를 내주면서 무사 2,3루의 위기를 맞았고, 2회에도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의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한화 시절부터 단련된 류현진의 ‘위기관리능력’은 이번 경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1회 말에는 3번 채이스 헤들리를 삼진으로 잡아낸 후 이어진 1사 만루 위기에서 욘더 알폰소의 투수 앞 땅볼 타구를 직접 병살로 연결해 위기를 넘겼다. 2회 말에는 뜬공과 희생번트 후 이어진 2사 만루 상황에서 어스 카브레라를 삼진으로 잡아내 이닝을 마무리했다.
두 번의 위기를 실점 없이 넘긴 류현진의 피칭은 3회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3~6회는 4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모두 3자 범퇴로 막아내는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7회에는 1사 후 석연찮은 볼 판정으로 주자를 걸려 보냈지만, 또 다시 병살을 유도하며 특유의 안정감을 뽐냈다.
7회를 마쳤을 당시 류현진의 투구수는 겨우 88개. 부상에서 이제 막 회복한 상황이 아니라면 완봉승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돈 매팅리 감독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류현진을 교체했고, 결국은 이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8회 말 류현진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브라이언 윌슨이 대타 세스 스미스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한 것. 7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지켜낸 류현진의 승리가 날아가는 데는 공 2개 던지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윌슨은 이후로도 연타를 맞으며 2점을 더 내줬고, 다저스는 그대로 패했다.
올 시즌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의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이유는 지난해의 전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황에서 불펜이 한층 강해졌기 때문이다.
올 시즌 다저스에는 지난 2년 동안 마무리 역할을 잘 해냈던 켄리 젠슨을 중심으로 브라이언 윌슨, 브랜든 리그, 크리스 페레즈까지 한 팀의 풀타임 마무리를 경험해본 투수만 무려 4명이나 된다. 정상급 셋업맨인 파코 로드리게스와 J.P. 하웰도 있다. 이들 중 누가 나서도 ‘필승조’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위용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번 류현진의 승리를 날린 윌슨은 8회를 책임질 셋업맨 역할은 물론, 여차하면 젠슨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선수로 여겨졌다. 윌슨은 샌프란시스코의 마무리로 활약하던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4년 동안 163세이브를 기록, 이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던 특급 마무리 출신이다.
토미존 수술을 받고 2012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렸지만, 오랜 재활을 거친 후 지난해 후반기 부활하며 다저스 불펜에 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지난해 100만 달러였던 연봉이 올해는 1천만 달러로 대폭 상승했다. 그런데 그 윌슨이 자신답지 않은 피칭으로 팀을 패배로 밀어 넣고 말았다.
이러한 조짐은 호주 개막 시리즈에서도 있었다. 개막 2차전에서 류현진은 5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피칭을 펼친 후 발톱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6점 차로 크게 앞서 있었기에 남은 4이닝이 불펜에 그리 부담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저스 불펜은 8~9회에만 5점을 내주며 지켜보는 이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남은 4이닝 동안 무려 7명의 구원투수가 총출동했고, 끝내는 마무리 젠슨까지 내보내고서야 간신히 승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경기 후 매팅리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불만 가득한 어조로 강하게 질책했을 정도.
그런데 3번째 경기에서도 또 다시 불펜이 무너지면서 시즌 첫 번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류현진의 2승과 더불어 팀의 3연승도 함께 무산된 것. 지금까지의 3경기에서 다저스 투수들이 내준 9점 가운데 8점이 불펜 투수들의 실점이다.
과연 다저스의 불펜은 시즌 전 기대했던 것처럼 ‘철벽방패’가 맞는 것일까? 선수 개개인의 명성만 놓고 보면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힐만한 진용임에 틀림없지만, 그 실력이 실전에서 발휘되지 않는다면 그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 : ML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