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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잠실 전광판 사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

by 카이져 김홍석 2014. 4. 19.

이런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20년이 넘도록 야구를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라운드에 있던 모든 이들은 당혹감에 휩싸였고, 지켜보던 팬들 역시 멘붕 상태가 됐다. 특히 두산 선수단과 팬들이 느낀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서 기록원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은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희한한 사건으로 회자될 전망이다. 잘못 표기된 전광판의 아웃카운트 하나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1차적인 잘못은 구심의 세이프 판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기록원에게 있다. 그 외 선수들과 심판들에게 잘못을 찾아보긴 어렵다. 누구도 제대로 된 진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 굳이 따지자면 전광판의 아웃카운트를 정정하도록 지시하지 않은 구심에게 잘못을 물을 수 있겠지만, 구심 역시 매 플레이마다 전광판을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결국 두산은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발단은 양의지의 실책이었다. 더블 플레이 상황에서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은 건 명백한 실수다. 양의지의 송구를 받은 1루수 칸투도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며 타자 주자까지 살아나갔다. 오히려 그 1루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바람에 당시 그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구심과 양의지, 그리고 홈을 밟은 문규현뿐이었다.

 

(문제의 바로 그 장면) http://tvpot.daum.net/v/ve7afvvcieMiL00iMJsMQMv

 

구심은 정확한 판정을 했고, 세이프라는 제스쳐까지 취했다. 그러니 전광판의 아웃카운트가 늘어나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양의지 역시 이후의 투수리드만 신경 쓰고 있었을 테니 전광판을 확인할 여유 같은 건 있을 리 없다. 가장 여유가 있었던 문규현은 덕아웃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가버렸고, 결국 그것이 사태를 더 크게 만들고 말았다. 그 상황을 알고 있었고, 나중에 롯데 측 어필의 주역이 된 강민호 역시 굳이 미리 전광판을 확인할 이유는 없었다.

 

전광판은 기본적으로 관중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전광판이 틀리게 기록되는 일은 꽤 자주 벌어진다. 따라서 선수들과 심판진은 우선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따라 플레이 해야 한다.

 

전광판만 믿고 홈에서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다는 걸 몰랐다면, 그건 두산 선수들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다. 물론 상황 자체가 그랬기 때문에 명백한 실수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전광판을 확인하지 않은 구심의 책임을 묻는다면, 마찬가지로 경기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두산 선수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야구는 심판의 플레이볼선언으로 시작해서, 심판의 판정으로 모든 플레이의 결과가 결정된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전광판이 아닌 심판의 콜에 집중해 경기에 임해야 한다. 세밀한 확인 없이 전광판에 의지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를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전광판을 보고 플레이한 건 롯데 선수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결국 그 덕에 경기의 흐름은 롯데 쪽으로 크게 기울고 말았다. 2-1로 종료된 줄 알았던 이닝이 4-1 상황에서 재개되었고, 최준석의 3점 홈런까지 터지면서 경기는 롯데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찜찜한 승리라고 해야 할지, 운 좋은 승리라고 해야 할지 참 애매한 노릇이다.

 

두산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건 손아섭의 투수 앞 땅볼 상황이다. 1사라는 걸 명확하게 알았다면 투수--1루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1사임을 알고 있던 양의지만 홀로 홈 송구를 기다렸을 뿐, 2사인 줄 알았던 볼스테드는 망설임 없이 1루로 공을 뿌렸다. 두산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때문에 두산에서는 4점째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4점째가 되는 3루 주자 전준우는 홈에서 아웃된 걸로 하고, 손아섭은 1루에서 세이프 된 걸로 하자는 타엽안을 제시했다. 한 마디로 롯데가 3-1로 앞선 2사 만루 상황에서 경기를 재개하자고 한 것. 하지만 이미 진행된 플레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다. 두산 입장에서는 아웃카운트만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병살이 가능했다는 입장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건 롯데 역시 마찬가지다. 2사가 아닌 1사였다면 손아섭도 타격에 임하는 의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1사였다면 손아섭의 1차적인 의도는 최소 병살은 면하고 보자가 되기 때문이다. 희생플라이, 혹은 진루타 우선의 타격 자세였다면 굳이 그런 땅볼 타구를 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양의지의 실책을 모두가 몰랐다는 것 역시 경기에 영향을 끼쳤다. 포수의 실수로 점수가 3-1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면 롯데 측 분위기는 더 살고, 두산 야수들의 분위기는 쳐질 수밖에 없다. 특히 투수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리라. 2사인 줄 알았기 때문에 큰 타격 없이 평소대로의 피칭이 가능했지만, 만약 실책으로 점수를 줬다는 걸 알고도 그토록 침착하게 땅볼 타구를 유도할 수 있었을까?

 

겉으로 드러난 상황은 기록원의 실수 때문에 두산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롯데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경기가 재개된 후 터진 최준석의 홈런포가 그 모든 것을 덮었을 뿐. 그 홈런포가 없었다면 롯데는 결국 1사 만루에서 손아섭의 땅볼로 1점만 더한 꼴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기록원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두산의 상황은 투수가 병살타성 타구를 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수와 1루수의 연이은 실책으로 인해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한 점을 더 내준 것이 된다. 투수를 포함한 모든 두산 선수들이 그걸 인지하고 3-1 상황에서의 맞이하는 1사 만루 위기, 상대 타자는 손아섭. 과연 이 상황을 1실점만으로 막아낼 수 있었을까? 전광판 해프닝이 없었어도 롯데의 대량득점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사건의 주범은 기록원, 그리고 아주 약간의 책임만 있는 공법은 방심하고 있었던 그라운드 위의 모든 선수와 심판들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두산 투수 볼스테드, 그리고 그 경기를 응원하고 있던 두산의 팬들이 아닐까. , 볼스테드가 피해자인 이유는 최준석에게 홈런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양의지와 칸투의 실수로 인해 2-1 상황에서 마칠 수 있었던 이닝을 더 길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은 좋은 수비가 이뤄졌다면, 애당초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손아섭 ADT캡스플레이) http://tvpot.daum.net/v/v592bqXq9W9qBee0RFF0F4B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