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유격수라 하면 ‘수비 포지션’이란 인상이 강하다. 실제로 각 팀의 유격수들은 타격 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고 주전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프로야구 전반에 흐르고 있는 ‘투고타저’의 흐름에 몸을 맡긴 ‘공격형 유격수’들이 뜨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주자는 역시 넥센의 ‘홈런 치는 유격수’ 강정호다. 현재까지 8홈런 26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3위, 타점 8위에 올라 있다. 3할 타율은 기본 옵션. 모두가 인정하는 현역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다. 올 시즌 타격 페이스는 30홈런 100타점을 넘볼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
강정호가 올 시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수비다. 2008년 첫 풀타임을 소화한 후 매년 12개 이상의 실책을 기록했던 강정호는 올 시즌 34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단 2개의 에러만 범했다. 이 페이스라면 올 시즌 실책 개수가 10개를 넘지 않을 전망. 수비 범위와 어깨 등은 원래 좋았던 강정호가 실수까지 줄인다면 그건 ‘완전체 유격수’의 탄생을 뜻한다.
그 다음으로 눈에 띄는 선수는 롯데 문규현이다. 수비형 선수라는 인상이 강했고,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이 .223에 불과한 문규현이 올해는 .333의 놀라운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 부문 14위에 올라 있다. 출루율은 .426으로 10위다. 두 기록 모두 유격수 가운데 단연 1위. 이미 ‘공포의 8번 타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19개의 득점도 유격수 중에 강정호(25개) 다음으로 많다.
문규현도 올 시즌 수비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범한 실책은 단 2개. 전문가들로부터 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당 경기 최고의 수비 플레이를 가리는 <ADT캡스플레이>에도 2번이나 선정됐다. 바야흐로 ‘문대호의 전성시대’다.
공-수를 겸비한 강정호, 문규현과는 달리 수비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공격력 하나는 일품인 선수들도 있다. SK 김성현과 한화 송광민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성현은 박진만의 부상 때문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현재까지 .316의 좋은 타율을 기록, 적어도 타격에서는 박진만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박진만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 자리를 위협할 수 있을 듯. 단, 김성현은 27경기에서 6개의 실책을 범했고, 그 결과 SK의 수비 조직력이 무너지는데 적잖은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아직은 박진만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송광민은 올 시즌의 대표적 비운의 사나이 중 한 명이다. 사실 송광민은 유격수에서 3루수로 자리를 옮긴지 오래다. 그런데 올 시즌 김응용 감독이 김회성을 주전 3루수로 쓰기 위해 그를 유격수로 이동시켰고, 그 결과 무더기 실책을 범하며 한때 멘탈이 붕괴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24경기에서 무려 12개의 실책을 범했고, 그 중 10개는 유격수 포지션에서 기록된 것이다.
하지만 타격에서는 3할 타율(.306)을 기록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4개의 홈런과 5할이 넘는 장타율은 모두 유격수 중 강정호 다음으로 좋은 기록이다. 사실 송광민이 남은 시즌을 계속해서 유격수로 뛸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비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좋은 타격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송광민이 그만큼 뛰어난 타자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 외에 NC 손시헌(타율 .289)도 바로 얼마 전까지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직 두각을 나타내고 있진 않지만 삼성의 김상수와 LG 오지환도 유격수 중에는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로 유명하다. 둘 다 주루 능력까지 뛰어나 한 시즌 30도루가 가능한 선수들이다.
두산의 김재호는 타율(.256)이 낮은 편이지만, 대신 11개의 희생타(전체 2위)를 기록하면서 팀 공격에 적잖은 공헌을 하고 있다. 작년에 3할을 쳤던 KIA 김선빈(타율 .286)은 올 시즌 부상으로 다소 고생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9개 구단의 주전 유격수들이 예년과 달리 공격에서도 적잖은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 올 시즌 프로야구의 트렌드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