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장할 야구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가 발표됐다. 하지만 이 명단을 본 팬들은 이것이 ‘대표팀 엔트리’인지 군 미필자를 우대한 ‘엔트으리’인지 헷갈려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탈락한 13명 중 (처음부터 선발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윤명준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모두 ‘군필자’다. 그리고 아마추어 1인(동의대 홍성무)을 제외한 23명의 프로 선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명이 ‘군 미필’이다.
포수 이재원(2,227점, 10위), 1루수 박병호(2,665점, 4위), 2루수 서건창(2,530점, 6위), 3루수 박석민(2,311점, 9위), 유격수 강정호(2,871점, 1위), 좌익수 최형우(2,544점, 5위), 중견수 나성범(2,762점, 2위), 우익수 손아섭(2,110점, 13위), 지명타자 나지완(2,191점, 11위)
올 시즌 성적을 토대로 야수진의 ‘베스트 나인’을 구성해보면 위와 같다. 괄호 안의 숫자는 각 선수의 카스포인트와 타자(혹은 투수) 부문 순위이며, 이미 오래 전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2,528점, 7위)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음을 알려둔다.
하지만 저들 가운데 서건창과 박석민, 그리고 최형우는 최종 엔트리에서 빠졌다. 특히 팬들 사이에서 대표팀 부동의 주전 2루수 겸 1번 타자로 거론되던 서건창의 탈락은 가히 충격적이다. 박석민과 최형우 역시 군필이란 이유를 제외하면 대표팀에서 제외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내야의 경우 박병호와 강정호 외에 오재원, 김민성, 황재균, 김상수가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군 미필 선수들이다. 유격수 포지션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김상수의 대표팀 발탁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일부 팬들은 그의 발탁을 두고 ‘감독 낙하산’이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리그 도루 1위이기도 한 김상수는 대주자 요원으로도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재원, 김민성, 황재균이 서건창, 박석민, 안치홍, 김태균 등을 대신해 대표로 선발된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류중일 감독은 ‘멀티 포지션 소화 여부’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 강정호와 김상수가 있는 마당에 황재균과 김민성이 유격수로 출장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서건창과 박석민처럼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멀티 포지션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나지완을 포함한 외야는 손아섭과 나성범, 외에 김현수와 민병헌이 선발됐다. 경험이란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김현수(1,886점, 19위)의 발탁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민병헌(2,034점, 16위)도 마찬가지. 경쟁자였던 이진영이나 김주찬에 비해 수비 활용도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의문 가득한 내야에 비하면 외야는 상식적인 선에서 선발이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어차피 김현수가 주전 좌익수를 맡을 것이라면, 나지완 대신 최형우가 들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을 뿐이다. 그랬다면 지명타자 자리를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포수는 이재원과 강민호가 선발됐다. 양의지의 탈락은 아쉽지만, 강민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그리고 2009, 2013년 WBC 등 국제 무대 경험이 풍부한 선수다. 이재원의 공격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면, 그 파트너로는 강민호가 적격이다. 대표팀 포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경험’이 최우선시 되었던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투수 부문에 있어서도 팬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발탁이 있다. 투수는 총 10명(아마 제외)이 선발됐는데, 그 중 선발요원이 4명, 구원투수가 6명이다.
올 시즌 최고의 토종 선발투수는 양현종(2,412점, 2위)과 김광현(1,794점, 4위), 윤성환(1,679점, 5위), 셋 중 하나다. 다승은 양현종이, 평균자책점은 김광현이 가장 뛰어나지만, 실질적인 투구내용은 윤성환이 최고다. 이재학(1,545점, 6위)은 4번째다.(투수 부문 카스포인트 1위와 3위는 밴헤켄과 밴덴헐크)
그런데 4명이 뽑힌 선발투수 명단에는 윤성환 대신 이태양이 포함되어 있다. ‘넘사벽’ 급의 실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태양이 선발된 것은 ‘군 미필’이라는 이유가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다.
봉중근은 올 시즌 최고의 왼손 구원투수고, 한현희와 안지만은 홀드 부문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리그 투톱 셋업맨들이다. 임창용의 경험은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이며, 좌완 셋업맨의 부재를 감안하면 홀드 3위 차우찬의 발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2012년 반짝한 후 2년 연속 부진한 유원상의 대표팀 합류 소식에 팬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유원상 대신 대표팀에서 탈락한 선수는 리그 세이브 1위 손승락과 각 팀의 주전 마무리 가운데 유일하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김승회다. 이래저래 박희수의 부상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 그만 건강했더라면, 유원상은 물론 울며 겨자 먹기로 차우찬을 선발할 필요도 없었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금메달’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물론 감독과 기술위원회조차도 거기에 뒤따르는 ‘떡고물’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보더라도 군 미필 선수들의 동기부여 효과가 컸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2006년의 도하 참사가 벌어졌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류중일 감독과 대표선수들이 금메달이라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8년 전의 실수를 답습한다면, 그 땐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간 대표팀을 이끌어 왔던 ‘강철 멘탈의 에이스(류현진)’와 ‘철벽 마무리(오승환)’, 그리고 ‘조선의 4번 타자(이대호)’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카이져 김홍석[사진제공=iSportsKorea, 제공된 사진은 스포츠코리아와 정식계약을 통해 사용 중이며, 무단 전재시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