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금요일) 사직 구장에서 펼쳐진 롯데와 삼성의 경기는 오래도록 회자될 멋진 경기임에 틀림없다. 허구연 해설위원 조차도 자신이 그동안 지켜봤던 페넌트레이스에서의 경기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최고의 명승부였음을 강조했다. 4:3의 피 말리는 연장승부. 역전의 역전을 거드한 끝에 승리의 여신은 롯데의 손을 들어주었다.
선발 투수가 무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이어갔다. 그것도 다름 아닌 팀이 에이스가. 하지만 9회 말 투아웃 2,3루의 위기상황이 닥쳤고, 2:0의 스코어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수준.
이 상황에서 감독의 선택은 무엇일까? 교체? 에이스를 향한 신뢰?
국내 감독들의 선택은 대부분 교체일 것이다. 그 에이스가 선수 시절의 선동렬 감독이 아닌 이상 말이다. 하지만 롯데 로이스터 감독의 선택은 에이스 손민한을 믿는 것이었다.
물론 그 선택은 실패했다. 결국 손민한은 오랜 친구인 진갑용에게 2타점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완봉은 커녕 승리투수도 되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과연 로이스터의 선택은 잘못된 것일까?
갑론을박이 난무하겠지만, 어차피 이 상황에서의 평가는 모두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교체를 했건 말았건 막아냈다면 에이스를 신뢰한(또는 과감하게 끌어내린) 감독의 뛰어난 결단이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지금처럼 막아내지 못했다면 잘못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며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로이스터 감독은 그 순간부터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야구 철학대로 경기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마침내 승리했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라면 아무리 9회 말이라도, 설사 1점 차이이고 안타 하나면 역전패가 되더라도 팀의 에이스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리지 않는다. 투수의 투구수가 120개를 넘겼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완봉을 앞둔 에이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시즌 전체를 내다보며 눈 앞의 1승 보다도 에이스의 기가 살아나길 원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에이스가 극한 상황에서도 신뢰할만한 선수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길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로이스터가 손민한을 그대로 던지게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결과가 어찌되었건 그는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관철시켰다.
아쉽게 동점이 된 후, 9회 말 다시 찬스가 찾아왔다. 3번 조성환이 안타를 치고 1루로 나갔고, 그 뒤를 이어 롯데의 실질적인 클린업 트리오 이대호-가르시아-강민호가 버티고 있었다. 국내 감독이나 해설자라면 팀 배팅이니 뭐니 하면서 밀어치는 타격 또는 진루타를 쳐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만한 상황. 하지만 로이스터는 역시 달랐다.
조성환이 두 번의 도루를 시도한 것 외에 타자들은 특별한 작전 없이 끝까지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당연히 로이스터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고, 이 또한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식이나 다름없다. 타자가 자신의 선택으로 기습번트를 대거나 짧게 끊어 치는 타격을 하지 않는 한, 동점인 상황에서 중심타자에게 ‘쓸데없는 팀 배팅’ 따위를 요구하는 감독은 없다. 클린업 트리오라면 당연히 팬들이 가장 원하는 형태인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종료시킬 수 있게끔 타자들을 믿어야 한다. 로이스터는 타자들을 믿었다. 그 결과는 또다시 실패였다.
박현승의 타석에서는 대타를 기용할 수도 있었다. 특히나 박현승이 최근 최악의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터라, 국내 감독들이라면 99%의 확률로 대타를 기용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정보명은 원래 3루수라 그를 대타로 내보낸 뒤 실패하더라도 이대호와 포지션 체이지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동점인 상황에서 팀의 수비를 비롯한 균형을 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아마 지고 있었더라면 대타를 내보냈을 지도 모른다) 박현승은 안타를 치지 못했고, 로이스터의 선택은 다시 한 번 실패로 드러났다.
10회 초 손민한을 구원해서 등판한 임경완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며 무너질 뻔했다. 안타 두 개와 볼넷으로 1사 만루가 된 상황. 이쯤 되면 덕아웃에서 투수코치가 올라올 법도 하다. 하지만 로이스터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1사 만루 상황에서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역전까지 허용했다. 그래도 로이스터는 움직이지 않는다. 적어도 팀의 마무리라면 그 이닝은 끝내야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깨달은 임경완은 다음의 1구로 병살을 잡아내며 겨우겨우 이닝을 마무리했다. 3:2로 역전을 허용했기에 결국 이 또한 실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의 10회 말. 로이스터는 27타수 3안타의 마해영을 그대로 타석에 내보낸다. 마해영은 안타로 신뢰에 보답하며 1루로 진출. 중심타선일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로이스터는 9번 박기혁의 타석이 되어서야 겨우 움직인다. 희생번트 성공. 1번 타자 정수근은 2루 땅볼 아웃으로 물러나며 2사 3루. 로이스터가 또 한 번 움직인다. 컨디션이 나쁜 이승화를 대신해서 손광민을 내보낸 것. 그 손광민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3번 조성환의 끝내기 2루타로 롯데는 4:3으로 승리했다.
결국 경기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한판이었으며, 팬들은 이런 야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로이스터의 모든 선택이 실패로 돌아가고 끝내 패배했다 하더라도, 단지 1패를 더했을 뿐이다. 패배와 더불어 중심 선수들의 자존심까지 상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만 한다. 그것이 ‘메이저리그식’ 야구다.
다소 부진하다고 해서 팀의 최고 타자인 심정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내는 팀의 감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자존심이 상한 후 악에 받쳐서 잘하는 선수와, 감독이 기를 살려주는 선수. 누가 더 즐겁게 야구를 하고 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을까?
오늘 경기를 패했더라도 나는 로이스터 감독을 신뢰했을 것이다. 그가 눈앞의 결과에 급급해 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태도를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결국 경기는 롯데가 승리했다. 로이스터의 승리가 아니라, 그가 믿어준 ‘선수들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기기 위해 스스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 그리고 그러한 선수를 믿고 자신의 야구 철학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 지도자. ‘메이저리그식 야구’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