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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부르스 보치와 배리 지토, 그리고 박찬호

by 카이져 김홍석 2008. 4. 3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 배리 지토의 불펜 강등이 결정됐다.


전략상의 이유도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각한 부진’이라는 이유로의 불펜 행, 이것은 명백한 강등이자 신분하락이 틀림없다.


7년 간 1억 2600만 달러, 연평균 18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투수로서는 견디기 힘든 굴욕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시즌 개막전부터 6경기에 등판해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7.53의 치욕적인 방어율을 기록하며 6연패, 상황이 이래서야 지토 자신도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불펜 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자이언츠의 사령탑인 브루스 보치 감독이다. 보치 감독의 과감한 결단으로 인해 지토는 ‘역사상 가장 비싼 불펜 투수’라는 오명을 쓰게 될 예정이다.


한국과 달리 감독보다는 선수들의 파워가 강한 메이저리그에서, 고작 2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감독이 1800만 달러의 에이스를 불펜으로 강등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접 지토를 영입한 브라이언 세이빈 단장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고, 지켜보는 팬들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선발로 쓰기 위해 데리고 온 팀 내 최고 연봉 투수를 불펜으로 기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약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 보치 감독이 용단을 내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보치 감독의 이러한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치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7개월 전인 2005년 9월, 또 한명의 투수를 ‘역사상 가장 비싼 불펜 투수’로 만든 전례가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코리안 특급’ 박찬호다.


2005년까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사령탑으로 재직하던 당시, 시즌 중반 트레이드 해온 박찬호의 부진이 끝없이 이어지자 보치 감독은 그해 1500만 달러의 연봉(2005년 기준)을 받던 박찬호를 불펜으로 돌렸다. 이듬해에도 WBC의 후유증으로 시범경기에서 제몫을 하지 못하자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박찬호를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시켰다. 2006년 박찬호의 연봉은 1550만 달러였다.


선발진에 계속해서 빈자리가 생기는 바람에 실제로 박찬호가 불펜투수로 등판한 것은 3차례(2005년 1회, 2006년 2회)에 불과했지만, 당시 박찬호 자신과 한국의 팬들이 느꼈던 상실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보치 감독은 지난해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지휘봉을 잡았고, 공교롭게도 그와 더불어 함께 팀에 합류한 배리 지토가 큰 부진을 겪으며 박찬호의 전례를 걷고 있는 것이다.


보치는 메이저리그에서 14년째 감독직을 수행하며 1034승(역대 51위)을 거둔 베테랑이다. 샌디에이고에서 12년 동안 트레버 호프만을 마무리로 기용하는 행운을 누렸으며, 1998년에는 케빈 브라운을 앞세워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어지는 최고 연봉 투수와의 악연은 그와 팀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올 시즌 자이언츠는 지토가 던지지 않은 경기에서는 12승 9패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롱릴리프로 보직이 변경된 지토가 빠른 시간 내에 구위를 회복함과 동시에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토가 어깨에 짊어져야만 하는 연봉과 그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