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6억엔의 연봉을 받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7억 5000만원을 받는 삼성의 심정수다.
하지만 이들 두 선수는 모두 나란히 2군에 내려가 있다. 시즌 초반 이들의 부진이 이어지자 내려진 결정이다. 삼성의 선동렬 감독과 요미우리의 하라 감독은 팀내 최고 타자인 이들의 부진을 두고 보지 않고 ‘2군행’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프로야구가 가진 수많은 공통점 가운데 하나다.
일차적으로는 부진한 선수들에 대한 징계의 성격이 강하겠지만, 각 감독들이 그들의 2군행을 통해 노리는 효과는 단지 당사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팀 내 최고 선수가 2군으로 강등되면 해당 선수들만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에 자극이 된다. 감독들은 최고 스타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너희들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날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효과는 꽤나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심정수는 22경기에서 0.235의 타율로 3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장타율도 0.368에 불과해 그 명성이나 몸값에 걸맞지 않게 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개의 볼넷을 얻어낸 그의 출루율은 무려 0.409나 되고 이것은 전체 9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군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삼성은 심정수가 없던 첫 경기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드라마 같은 4:3의 역전패를 당했지만, 오히려 이것이 선수들의 집중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어 이후 3경기는 모두 승리를 거두며 3연승을 달리고 있다. 두 경기는 경기 막판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타선 덕에 거둔 1점 차의 짜릿한 역전승이었고, 나머지 한 경기는 롯데를 상대로 무려 17점을 뽑아내며 거둔 대승이다. 이 정도면 심정수를 재물로 한 선 감독의 작전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엽은 심정수보다 열흘 앞서 2군 행을 통보받았다. 14경기에서 52타수 7안타(타율 0.135)에 홈런 하나 없이 2타점에 그친 이승엽으로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5승 8패(1무)였던 요미우리는 그 후 7승 6패를 기록하며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평균 득점(3.29->3.31)이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님에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도 이승엽을 통한 충격 요법이 선수단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굳이 득점 자체가 상승하지 않더라도 타자들의 집중력이 상승한다면 승리는 따라오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 요법은 메이저리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굳이 선수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성적에 목매달지 않는 편이다. 선수들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팀 내 최고 선수의 활약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지토는 올 시즌 6연패를 당한 후 선발 투수에서 불펜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메이저리거로서 부활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이너리그 행 의사를 타진해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메이저리그는 베테랑 선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기 위해서는 선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승엽-심정수의 2군행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승엽이 2군으로 강등되던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타자인 데이빗 오티즈의 상황도 이승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했다. 1할의 빈타에 허덕이던 이승엽이 2군으로 내려간 14일까지 오티즈는 12경기에서 43타수 3안타 3타점 타율 7푼의 한층 더 심각한 부진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취한 행동은 그날 한 경기에서 오티즈의 이름을 주전 라인업에서 지운 것뿐이었다.
현재까지도 오티즈는 1할대의 타율(0.172)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새 20개나 되는 타점을 기록하며 매니 라미레즈와 더불어 팀 내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팀이 6연승을 질주하던 기간 동안 오티즈는 12타점을 몰아치며 팀의 연승을 주도했다.
4번 타자였던 이승엽은 5번, 6번으로 차례대로 타순이 이동되는 수모를 겪은 뒤 2군으로 내려갔다. 심정수도 6번으로의 타순 하락을 겪은 뒤 2군행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오티즈는 지금까지의 전 경기를 3번 타자로 출장하고 있다.
이것이 한-일 양국의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차이 가운데 하나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는 감독들이 이끌어가는 야구다. 선수들의 자존심 보다는 당장의 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때로는 승리를 위해 선수들의 자존심을 꺾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의 2군행은 언론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그로 인한 해당 선수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 마저도 이용해서 선수들을 휘어잡는 것이 한일 양국 프로야구의 감독들이다.
메이저리는 이와는 정반대다. 빅리그 감독들은 선수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야구를 추구한다. 결국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논리가 모든 상황에서 전체 선수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승리를 위해 선수들이 자존심을 굽혀야할 때가 있고, 페넌트레이스 중에도 순위가 결정될 만큼의 특별히 중요한 시합에서는 예외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그 대상도 베테랑이나 스타급 선수들로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메이저리그 야구의 특성은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30일 경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로이 할라데이는 보스턴 레드삭스 전에서 1:0의 완투패를 당했다. 양 팀의 선발투수가 각각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상황, 거기다 보스턴 마무리 투수 조나단 파펠본이 9회 초에 등장해 토론토는 단 1점도 뽑지 못하고 정규이닝을 마쳤다. 9회에도 여전히 마운드를 지킨 할라데이는 투아웃까지는 무난히 잡았지만, 이후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며 2사 1,2루의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 게다가 그 다음 타자는 이미 앞선 타석에서 안타를 쳤으며, 할라데이를 상대로 35타수 12안타(0.343)로 강세를 보이던 케빈 유킬리스였다.
아마도 국내 감독들의 선택은 십중팔구 투수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토론토의 리치아디 감독은 경기를 끝까지 할라데이에게 맡겼다. 비록 할라데이는 유킬리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내주고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그것이 에이스에게 거는 감독의 신뢰이자 배려다. 자신의 경기를 끝까지 마무리 하고자 하는 것은 할라데이 자신의 프라이드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지난 주 금요일 국내 야구에서도 펼쳐졌다. 롯데의 에이스 손민한이 삼성을 상대로 완봉승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겨놓은 9회초 2사 2,3루의 상황.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날 수도 있는 2:0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로이스터 감독은 팀의 에이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손민한 역시도 진갑용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승리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리치아디와 로이스터, 두 감독의 선택은 결국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물론 롯데는 연장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하지만 그것이 ‘메이저리그 방식’이다. ‘팀내 기둥 선수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기를 살려주는 것’만이 승리와 팬들의 호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자존심을 자극해서라도 승리하고자 하는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는 눈앞의 경기를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메이저리그. 굳이 어떠한 것이 더 좋다고 꼬집어서 이야기 하긴 힘들다. 분명히 서로 간의 장단점이 있고, 문화와 팬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메이저리그의 방식이 ‘선진 야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쪽은 그네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해 위해 작은 것(선수의 자존심)을 희생해서 큰 것(승리)을 얻고자 하고, 다른 한쪽은 마찬가지로 그들의 논리인 선수 개개인의 자율에 의한 야구를 추구하는 것뿐이다. 동양의 야구가 좀 더 철저하게 매 경기의 승리를 추구 한다면, 메이저리그는 시즌 전체의 흐름을 우선시한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팬들의 시선이 아닐까? 한국 프로야구도 팬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진화해나가길 바란다. 다만, 필자의 경우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상 메이저리그의 방식에 좀 더 끌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