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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 최고의 스터프, 로이 할라데이

by 카이져 김홍석 2007. 11. 7.

“현존하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구는 무엇인가?”

위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요한 산타나의 체인지업, 제이크 피비의 투심, 자쉬 베켓의 포심, 브랜든 웹과 왕첸밍의 싱커, 존 스몰츠의 슬라이더 등이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중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어차피 흔히 표현하듯이 ‘공이 손끝에 걸리는 날’이면 상대 타자들은 치지 못한다.

질문의 형태를 조금 바꿔보자.

“메이저리그 투수들 중 누가 최고의 스터프를 지녔는가?”

이 질문의 핵심인 ‘최고의 스터프’에서 그 평가 기준이 지니고 있는 스터프의 질과 양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대답은 명확하다.(적어도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그 주인공은 2003년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로이 할라데이다. 그는 마이크 무시나의 너클 커브, 로져 클레멘스의 SF볼(스플릿 핑거 패스트볼), 케빈 브라운의 싱킹 패스트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투구에 임하는 자세는 그렉 매덕스의 그것과 같다.


▷ 제 2의 마이크 무시나

1998년 9월 27일 토론토 홈에서 벌어진 디트로이트와의 시즌 막바지 대결. 8회까지 토론토가 2: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9회 초 디트로이트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광판에 보이는 숫자, <타이거스 R:0, H:0> 디트로이트는 8회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뽑아내지 못했다. 그 보기 힘들다는 노히트 노런 경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8번 타자 게이브 케플러와 폴 바코도 안타를 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대기록에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마침 그날 경기가 'Day off(휴식일)'였던 간판타자 바비 히긴슨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다. 결과는 노히트와 노런을 모두 깨는 솔로 홈런. 대기록을 놓친 선발투수는 후속 타자를 유격수 직선타로 잡아 2:1의 완투승을 거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 경기는 토론토의 신인 선발 투수가 빅리그에서 맞이하는 2번째 등판 경기였고, 그 경기는 그의 커리어 첫 승으로 기록되었다. 올해 보스턴의 ‘경이의 신인’ 클레이 벅홀츠가 2번째 등판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 9년 전, 그와 동일한 기록을 달성할 뻔했던 이 선수의 이름은 다름 아닌 로이 할라데이다.

요즘이야 드물지 않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타자가 아닌 고졸 투수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라운드에 지명 받는 일은 흔치 않았다. 로이 할라데이는 1995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선수로서는 드물게 1라운드(17위)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고교시절부터 주목받던 유망주다.

190cm가 넘는 당당한 체구에 완벽한 오버스로의 투구폼, 거기에 98마일(158km/h)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포심을 던질 수 있는 투수를 뽑지 않고 지나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젊은 에이스 마이크 무시나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에이스 중 한명으로 군림하던 시기, 로이 할라데이의 고교시절 주무기가 바로 그와 같은 너클 커브였다.

착실하게만 성장한다면 장차 리그를 지배할 것으로 평가되었던 10대 시기의 할라데이는 로져 클레멘스의 하드웨어(체구)와 마이크 무시나의 소프트웨어(너클커브)를 동시에 지닌 무지막지한 파워피처였다.


▷ 좌절 그리고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차근차근 마이너리그의 단계를 밟아온 할라데이는 드래프트 후 딱 3년 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첫 승을 아쉬운(?) 완투승으로 장식한 것이다. 3년 동안 기대하며 바라봤던 루키의 성공적인 데뷔, 토론토 팬들이 꿈과 희망에 부풀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의 앞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좌절이었다. 대부분의 고졸 파워피처가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제구력 불안의 문제에서 할라데이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도 너클 커브라는 까다로운 구질을 제어하기란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이다.

5선발로 맞이한 99시즌, 그는 149이닝을 던지는 동안 156개의 피안타를 내주고 79개나 되는 볼넷을 허용했다. 이닝당 평균 출루회수(Whip)는 1.57이 넘었다.(Whip이 1.20이하면 에이스급이란 평가를 받지만 1.40을 넘어가면 신뢰할 수 없는 투수로 여겨진다) 하지만 3점대를 유지한 방어율(3.92)은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팬들 역시도 여전히 그를 지지했다.

이듬해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욱 깊은 늪이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19경기에 등판한 할라데이는 67이닝 동안 무려 107개의 피안타를 허용하며 10점대 방어율(10.64)로 무너져 내렸다. 42개의 볼넷은 9이닝으로 환산하면 6개에 육박한다. 당시의 할라데이(2.20) 이후로 지금까지도 5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의 Whip이 2.00을 넘어간 경우는 없었다.

“메이저리그의 투수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아냈던 할라데이는 이듬해 치욕스럽게도 마이너리그 싱글 A로 강등되고 만다. 천재 좌완투수였던 릭 엔키엘을 타자로 전향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증세,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었다.


▷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최고의 유망주에서 팀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할라데이, 하지만 그는 엔키엘과는 달랐다. 2001시즌을 트리플 A도 아니고 싱글 A에서 시작하게 된 할라데이는 당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변신을 꾀한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그 재능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새로이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그는 폼을 바꿨다. 위력 있는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잇게 해주지만, 반대로 제구력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오버스로를 버리고 스리쿼터의 투구 폼을 익히기 시작했다. 98마일의 강속구를 버리고 94마일(152km/h)의 안정된 포심을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결정구였지만 너클 커브조차도 기복과 컨트롤 불안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과감하게 포기한다. 그리고 포심이 아닌 투심 위주의 싱커성 공을 익힌다. 88~90마일의 싱킹 패스트볼과 SF볼, 그리고 70마일 후반대의 예리한 커브를 연마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까지 자신을 지탱해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시도한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장 그 해 후반기에 무시무시하게 강력해진 모습으로 팬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 싱글-더블-트리플 A에서 각각 한달 정도 머물면서 2.12-2.21-3.21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마이너리그를 평정한 할라데이는 변신을 시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빅리그의 부름을 받았던 것이다.

다시 밟은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17경기에 등판해 105이닝 가량을 던지는 동안 허용한 볼넷은 겨우 25개, 피홈런은 3개에 불과했다. 그 전 2년 동안 217이닝에서 33개개의 홈런을 허용하는 등 볼넷(121)과 삼진(126)의 비율이 거의 1:1이었던 선수가 3.16의 방어율에 1.16이라는 리그 최상급의 Whip, 그리고 1:4에 달하는 볼넷(25):삼진(96) 비율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싱커볼러로 변신한 것이다. 시즌 최종전에서는 막강 화력을 자랑하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완봉승까지 거둔다.

“그는 이미 끝났다”라고 진단했던 전문가들을 한 순간에 조용하게 만들어버린 24살 젊은 투수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당시의 할라데이는 그해 내셔널 리그 다승왕에 오른 맷 모리스와 함께 케빈 브라운의 후계자로서 90마일의 싱킹 패스트 볼을 완벽하게 제구 할 수 있는 단 3명의 투수 중 한명이었다.


▷ 환골탈태(換骨奪胎)

2002년 이후 할라데이의 행보는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02년에 19승과 2.93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리그 엘리트 투수로 올라선 그는, 2003년 22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며 3.25의 방어율과 204탈삼진을 기록, 28개의 1위표 중 26개를 쓸어 담으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로 우뚝 선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었던 투수가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등극한 순간이었다.

다만, 이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할라데이에게서 케빈 브라운의 모습을 비춰볼 수 없었다. 할라데이는 2003년 266이닝에서 32개의 볼넷만을 허용할 정도로 컨트롤에 있어서 경지에 이른 모습을 선보였다. 이제 더 이상 그가 제구하지 못할 구질은 없었다.

그는 다시금 너클 커브를 던지기 시작한다. 이미 너클 커브는 그가 다룰 수 없는 구질이 아니었다. 너클 커브 외에도 싱킹 패스트 볼, SF볼 그리고 2가지의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된 할라데이는 그야말로 ‘팔색조’가 된 것이다. 그것도 느린 구속과 위력 없는 결정구를 극복하기 위한 팔색조가 아니라 하나 같이 메이저리그를 호령할만한 수준의 위력을 지닌 다양한 스터프를 구사하는 팔색조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180도 달라졌다. 많은 것을 바꾸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파워피처’로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에 신경을 쓰던 모습에서 큰 것 한 방을 허용하더라도 이닝을 길게 끌고 가며 최소한의 투구로 경기를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마치 그렉 매덕스처럼.

실제로 2002년 이후 올해까지 173번의 선발 등판에서 할라데이가 소화한 이닝은 1225이닝, 이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할라데이(평균 7.08이닝)를 제외하고 경기 당 7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28번의 완투승도 최다며, 10이닝 완투승도 두 번이나 있었다. 그 중 한번은 공 99개로 이루어낸 완봉승이었다.

올시즌은 16승 7패 7완투 1완봉 225.1이닝을 소화했고 3.71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다소 부진한 시즌이었지만, 그가 5월에 맹장 수술로 인해 3주를 쉬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두 경기가 연장으로 넘어가 기록으로 인정되진 않지만, 8월 중순부터 9월초까지는 사실상의 6경기 연속 완투를 기록하기도 했다.

자쉬 베켓과 CC 사바시아, 존 랙키 등이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며 특급 에이스 반열에 올라설 채비를 마쳤지만, 여전히 아메리칸 리그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여전히 요한 산타나와 로이 할라데이다. 할라데이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두자리수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투수다.

현재 할라데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부상이다. 고질적인 큰 부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의 맹장 수술 같은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한 부상이 잦은 편이다. ‘만약’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부상이 없었다면 2005년(19경기 12승 5패 2.41)의 사이영상은 그의 것이었을 테고, 그랬다면 사이영상 수상 회수에서도 라이벌 산타나와 똑같았을 것이다.

내년이면 31살이 되는 할라데이, 지금까지 통산 111승(55패)을 거둔 그가 부상이라는 악재를 넘어서서 역사에 남는 위대한 투수로 기억될 수 있을까. 하나만 장착해도 리그를 호령할 수 있는 스터프를 여럿 가지고 있는 할라데이이기에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다양한 스터프로 무장한 할라데이, 그의 투구는 여타의 투수들과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