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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1951년에 있었던 기적과 눈물, 감동과 반전의 명승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1.
얼마전 폐막한 베이징 올림픽에서 온 국민의 염통을 쪼그라들 만큼 재미와 감동과 긴장감을 안겨준 종목은 뭐니뭐니해도 야구였습니다. 예선 일곱 경기도 네덜란드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점차의 승부로 승리하였을 뿐 아니라 준결승 일본전에서 나온 이승엽의 말도 안되는 8회 홈런과 결승전 9회말 병살타로 인한 전승 우승...


이건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 쓰려고 해도 유치해서 쓸 수 없는 극적 스토리로 말도 안되는 명승부 중에 명승부였죠. 아마 한국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으로 수십년 동안 꾸준히 인구에 회자 될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 120년, 지금까지 수십만번의 경기가 있었죠. 지금도 하루에 15개의 경기가 펼쳐지며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 한국의 전승 우승에 비견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손에 땀을 쥐게한 메이저리그의 명승부는 과연 것들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취향의 차이가 있고 한경기만을 두고 보느냐 시리즈 전체를 두고 보느냐에 따라 객관화된 선정 기준은 없기에 어떤 정답은 없겠지만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승부(직접 보지는 못했지만...)라 믿어 의심치 않는 1951년,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리그 우승 결정 플레이오프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발단 (말도 안되는 막판 뒷심 뉴욕 자이언츠)

작년 정말 엄청난 막판 뒷심을 보이며 월드시리즈까지 22경기 동안 21경기에서 승리하며 기적을 일으켰던 콜로라도 록키스...사실 막판 뒷심의 원조는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1951년 뉴욕 자이언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전신)는 명장 레오 듀로셔의 지휘아래 야심만만한 시즌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리그 라이벌은 재키 로빈슨을 필두로 로이 캄파넬라, 피 위 리즈, 듀크 스나이더, 길 허지스등 4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이끄는 무적함대 브루클린 다저스였죠. 


실제 시즌 마지막 한 달전까지 다저스에 15경기차이로 뒤지며 비관적인 시즌 막판을 맞이한 자이언츠는 하지만 바비 톰슨, 몬테 어빈, 윌리 메이스를 중심으로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16연승을 포함 시즌 마지막 44경기에서 36승을 거두는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발휘 결국 시즌 마지막 날, 반게임 차이로 다저스를 앞지르게 됩니다. 바야흐로 드라마의 시작이라고나 할까요.


어처구니 없게 리그 우승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다저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대8 동점을 이루고 있던 연장 12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필리스 1루수 에디 웨잇커스의 2루 방면 안타성 라인 드라이브 타구가 나오며 시즌을 마무리할 위기에 몰렸으나 재키 로빈슨이 말도 안되는 다이빙 캐치로 위기를 모면한 후 바로 다음 공격에 결승 홈런까지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극적 승리 97승 59패로 뉴욕 자이언츠와 동률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죠. 이제 자이언츠와 다저스는 내셔널 리그 역사상 한번 밖에 없었던 리그 우승 결정 3전 2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전개 (기적의 이면에는 더러운 방법이?)

첫 경기는 자이언츠의 올스타 3루수 바비 톰슨이 다저스의 랄프 브랑카에게 결승 투런을 뽑는 활약을 보이며 자이언츠의 승, 2차전은 다저스의 클렘 레바인이 자이언츠를 완봉으로 제압하며 10 :0 다저스의 승, 이제 폴로 그라운드에서 벌어질 3차전에 리그 우승팀이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뉴욕은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완전 마비 상태에 이르렀죠. 야구 경기로 인해 다우 존스 지수도 엉망이 되었고 길거리는 시합을 보려고 거리를 가득 채우며 모인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으며 심지어 리커스 아일랜드에 수용되어 있는 악질 죄수들 조차 경기를 듣는 것이 허용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폴로 그라운드, 하지만 먹구름 이외에 아무도 생각 하지 못했던 괴소문이 돌기 시작하며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만들었으니...그건 바로 자이언츠가 시즌 말 부터 포수와 투수의 사인을 훔치며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야구에서 포수와 투수의 사인을 훔친 다는 것은 예전부터 비일비재하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었는데요,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이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법은 널리 보편화 된 것이라 경기에 영향을 줄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분위기였으나 레오 듀로셔의 방법은 정말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것으로 아무도 모르는 방법을 이용하여 귀신같이 정확하게 사인을 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 모든 것은 "소문"에 불과했죠.


절정 (기적적인 9회말 역전승)

자이언츠의 선발은 시즌 23승을 거둔 에이스 살 매글리...다저스는 1회 재키 로빈슨의 적시타로 피 위 리즈가 홈을 밟으며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다저스의 선발 역시 시즌 20승을 거둔 에이스 돈 뉴컴이었는데요, 자이언츠는 뉴컴의 공에 압도 당하며 7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갑니다.


하지만 1차전의 영웅 바비 톰슨이 7회말 희생 플라이를 기록하며 1 대 1 동점을 기록하죠. 승부의 8회 초, 다저스는 앤디 파프코와 빌리 칵스의 안타와 폭투를 묶어 대거 3점을 뽑아내며 4 대 1로 앞서 나가게 됩니다. 3점차로 뒤친 채 9회말 마지막 공격에 들어선 뉴욕 자이언츠는 누가 봐도 가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돈 뉴컴에 완전 압도 당하며 힘을 못쓰는 타선부터 선수들 분위기 자체도 경기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것 처럼 보였기에 3점의 차이는 누가 봐도 엄청난 것이었죠.


브루클린 이글지는 벌써 다음날 메인 페이지에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진출 기사를 송고하였고 기자들은 모두 다저스 클럽하우스에 모여 경기가 끝나면 벌어질 우승 세러머니 취재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말도 안되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규 시즌 272이닝을 소화한 뉴컴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황이었죠. 재키 로빈슨은 "너의 그 빌어먹을 팔이 떨어져 나갈때 까지 절대 공을 놓지 말란 말이야!"라고 외치며 뉴컴을 격려하였으나 선두 타자로 나온 알빈 다크가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타석에 나선 돈 뮬러가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무사 주자 1,3루의 찬스를 기록합니다.


다저스의 불펜은 바빠지기 시작했죠. 칼 어스카인과 랄프 브랑카가 몸을 풀기 시작했지만 이미 이 두명은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다음 나온 몬테 어빈이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며 한숨 돌리는 가 싶었던 뉴컴은 다음 나온 화이티 락맨에서 2루타를 허용하며 1실점, 4 대 2로 쫓기며 1사 2,3루의 위기를 계속 맞이하게 됩니다. 다급해진 다저스는 불펜에서 몸을 풀던 어스카인에게 등판을 지시 하였으나 그는 브레이킹 볼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며 경기에 나갈 것을 고사하게 되죠, 구원의 몫은 1차전 패전 투수 랄프 브랑카에게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마운드에 오른 그를 맞이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1차전에서 자신에게 결승 투런을 뽑은 바비 톰슨...이미 시즌 중에도 4개의 홈런을 허용한 기억이 있는 브랑카의 얼굴에 자신감이란 전혀 없어 보였죠. "빌어먹을 놈아...정신차려...정신차리라고 이 빌어먹을 놈아..." 마운드에 올라가는 와중에 브랑카는 수십번이나 자신에게 중얼 거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으며 마운드에 서서 주위 선수들에게 "Anyone here have Butterflies?"라고 말하며 애써 웃어보이기도 합니다. (*주 :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나비는 일종의 부적의 의미를 갖고 있었죠...존 맥그로는 거의 맹신자였다는...하지만 여기서 쓰인 Butterflies는 공포라는 다른 사전적 뜻이 있기에 "다들 쫄고 있는거야?"라는 중의적 의도가 있는거 같습니다..정확한 의도는 브랑카 자신만 알겠죠)

"이 빌어먹을 놈아...너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란 말이야..기회를.." 혼자서 같은 말을 되내이며 초구를 던진 브랑카의 공은 직구 스트라이크...하지만 똑같이 들어온 그의 몸쪽 높은 직구를 바비 톰슨은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바람을 가르는 스윙과 함께 날아간 공은 좌측 관중선 하단에 꽂히며 홈런으로 기록되죠. 


9회말 결승 쓰리런 홈런...5 대 4로 승리한 뉴욕 자이언츠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순간 폴로 그라운드는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로 바뀌었습니다. 다저스의 모든 선수들은 자리에 주저 앉아 정신을 놓고 있었고(재키 로빈슨만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죠...홈런을 친 바비 톰슨이 2루 베이스를 밟는지 안 밟고 지나가는지를 확인 하기 위해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대역전 드라마를 쓴 자이언츠의 선수들과 관중들은 모두 경기장에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기뻐했죠. 

                     
당시 라디오 방송을 하던 러스 허지스씨는 평소 그답지 않게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로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합니다!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합니다!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합니다! 바비 톰슨이 좌측 펜스를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날렸습니다!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거 정말 미치겠는데요! 정말 믿을수 없습니다! 믿을수 없습니다! 믿!을!수!없!습!니!다!" 라고 광분하였고 유명 스포츠 기자 레드 스미스씨는 "Art of Fiction is DEAD!(소설의 미학은 오늘 죽었다!"라며 믿어 지지 않는 극적 승부에 대한 찬사를 대신하였습니다. 실의에 찬 다저스 팬들은 유명한 슬로건인 "Wait Till Next Year"를 만들며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구요...


반전 및 결말 (사실로 드러난 불법 행위)

지난 2006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조슈아 프레이저는 "Echoing Green" 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당시 1951년 자이언츠가 페넌트레이스를 "승리"한 것이 아니라 "훔쳤다"라고 표현하며 레오 듀로셔가 상대 포수와 투수의 사인을 훔쳤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와 증거를 폭로하였는데요. 클럽 하우스 - 불펜 - 타자로 이어지는 버저 시스템으로 사인을 훔쳤으며 정확히 1951년 7월 20일부터 이 불법 행위를 시작하여 그들의 거짓말 같은 막판 연승 행진에 정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다저스와의 페넌트레이스 우승 결정전에서 나온 바비 톰슨의 홈런 역시 사인 훔치기로 인한 홈런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는데요. 

                  
당시 두 경기에서 모두 결승 홈런을 맞으며 뭐 다저스 팬들에게 한기주 이상급 대접을 받은 랄프 브랑카는 이미 당시에 자신의 공이 모두 상대의 부정 행위에 대해 "도둑질" 당해서 생긴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자신이 그렇게 말해 봤자 "어린 아이가 징징 대는 꼴"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의 발간으로 인해 그는 그동안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얘기하며 웃음 지었는데요, 과연 당시의 승부를 희대의 명승부라고 평해야 할지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평해야 할지 참 모호하기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희대의 드라마라고 이름 짓기에는 아깝지 않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