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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 불문율이란? - 어기면 홈팬들에게도 야유 받는 것!!

by 카이져 김홍석 2007. 5. 16.


최근에 국내 야구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야구 시합에 있어서의 불문율 10계명’ 이라는 제목으로 암암리에 선수들과 팬들이 지켜줘야 할 열 가지 조건을 언급하고 있는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인용해 보면

① 상대팀에게 모욕적인 행동은 삼가라.
② 점수 차가 많이 났을 때 이기고 있는 팀에서는 도루나 번트를 삼가라
③ 홈런 친 뒤 과하게 기쁨을 표현하거나, 베이스를 천천히 돌지 마라
④ 타석에서 포수의 사인을 훔쳐보지 마라
⑤ 삼진을 잡은 투수는 과한 제스쳐나 기쁨의 표현은 삼가라
⑥ 상대 투수가 노히트 노런과 같은 대기록 도전 시에는 기습번트를 대지 마라
⑦ 도루시 슬라이딩 하며 스파이크를 높이 쳐들지 마라
⑧ 타자의 머리 뒤로 공을 던지지 마라
⑨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다고 다음 타자를 일부러 맞히지 마라
⑩ 상대팀 슈퍼스타를 보호하라

읽어 보면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쉽게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또한 국내 프로 야구에서 이러한 불문율들이 잘 지켜지는 지도 의문이다. 물론 잘 지켜지는 몇 가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항목들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최근 몇몇 감독들(특히 K감독)의 언론플레이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고, 포수의 사인을 훔쳐보는 것은 일종의 기술이고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특히 여섯 번째 항목 같은 경우, 막상 대기록의 희생양이 될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대범하게 정면승부만 할 감독들이 몇이나 될까? 괜시리 국내 감독들 흉보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 부분은 이쯤에서 접자.

위의 항목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불문율이라기 보다는 메이져리그에서 떠도는 많은 불문율 중 몇 가지를 추려서 ‘10계명’ 이라는 이름을 붙인 듯하다. 그렇다면 메이져리그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잘 지켜지느냐?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아예 무시하는 선수들도 허다하다.

잘 지켜지는 것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항목을 비롯해 몇 개 되지 않는다. 모두가 홈런 친 뒤의 새미 소사의 펄쩍 펄쩍 뛰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경우는 홈런을 맞으면, 특히 두 개 이상의 홈런을 맞은 경기에서는 어김없이 상대 타자의 머리로 공을 뿌렸다. 예전 로져 클레멘스는 매번 피아자에게 홈런을 얻어맞자, 한번은 아예 경기 시작과 함께 피아자에게 빈볼을 던져, 그가 부상으로 빠진 경기에서 손쉽게 승리한 적도 있다.(물론 고의성 여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과 뿐. 하지만...)


잘 지켜지는 편인 여섯 번째 항목의 경우도 예전에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2001년 5월 커트 쉴링이 7회까지 퍼펙트를 이어가던 경기에서 상대편인 샌디에고의 브루스 보치 감독이, 8회에 이르자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포수 벤 데이비스에게 기습 번트를 지시한 것이다. 결국 이것이 성공하면서 기록은 날아갔고, 밥 브랜리 애리조나 감독과 쉴링이 샌디에고 측을 맹렬히 비난했었다. 보치 감독은 2:0이었던 당시 상황을 들어 정당성을 어필했으나, 결과적으로 팬들에게까지 집중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메이져리그에서도 불문율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문율’ 이라는 것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선수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스포츠맨쉽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명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간단하게 정의해 보자면 ‘지키지 않았을 때는 홈 팬들에게 조차 욕먹는 몇 가지 행동’ 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국내에서는 홈팬이 홈팀에게 야유를 퍼붓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팀이 너무 어이없이 큰 점수차로 진다거나, 심한 본 헤드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 한 홈팬은 홈팀에게 야유를 퍼붓지 않는다. 야유의 대상은 오직 상대팀일 뿐.

하지만 메이져리그는 다르다. 중계를 보다보면 관중들이 ‘우~~’ 하는 야유를 내보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다. 흔히들 상대팀에게 보내는 야유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즉 홈팬이 홈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경우도 상당히 자주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신들의 편인 홈팬들에게 야유를 들을까? 위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몇 가지를 더 살펴보자.


상대편 투수에게 안타를 허용하지 마라

경기를 하다보면 투수가 안타를 때리거나 심지어 홈런을 때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원정팀 투수가 안타를 치게 되면 수많은 야유가 쏟아진다. 착각하기 쉽지만, 이 때의 야유는 안타를 친 상대 투수에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투수에게 안타를 맞을 만큼 안일한 승부를 한 홈팀 투수에게 보내지는 것이다.

배리 본즈에게라도 고의 사구를 던지면 야유를 퍼붓는 메이져리그 팬들이지만, 1루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투수 앞의 8번 타자를 고의사구로 거르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을뿐더러, 승리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런 그들이기에 투수에게 안타를 허용하는 홈팀 투수를 용납지 못하는 것이리라.



4번 타자(거포)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하지 말라

메이져리그의 팬들은 ‘작전’도 분명 정정당당한 승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런 &히트나, 고의 사구 등도 분명 하나의 작전으로 사용될 때는 전혀 비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심을 꺾어가면서까지 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듯하다.

‘1점을 내기 위한 야구는 결국 1점 밖에 못 얻는다.’ 라는 것이 그네들의 생각이다. 팀의 자존심인 중심타자에게 (아무리 최근에 부진하다 하더라도) 단 1점을 따기 위해 희생번트를 지시한다면 그 감독에게 쏟아지는 야유는 상상을 초월한다. 메이져리그는 경기수가 많은 만큼 팬들조차도 시즌 전체를 바라보며 긴 호흡으로 승부를 관망할 줄 안다. 오늘 당장 이기기 위해 내일의 희망이 될 중심 타자의 자존심을 굽히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중심타자들이 아무리 부진하더라도 끝까지 타순을 지켜주고 믿어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 아무리 하워드, 매니, 푸홀스 등의 선수들이 부진하다 해도 그들의 타순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작년 포스트 시즌에서 에이로드의 타순 이동이 그렇게도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점수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면)
주전 선수를 쉬게 하기 위해 교체하지 말라.
상대의 폭투나 패스트볼이 나와도 Two-base 이상을 노리지 말라.
No-strike 3-ball 상황에서는 배트를 휘두르지 말라.
기습 번트를 시도하지 말라.

어쩌면 이 부분이야 말로 메이져리그만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처음 언급한 불문율 10계명에서도 첫 번째가 ‘상대팀에게 모욕이 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 는 것이었다. 이미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면 굳이 더 많은 점수를 뽑으려고 무리한 플레이를 하거나, 상대방이 수치를 느끼게끔 주전 타자들을 죄다 뺀다거나 하는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점수로 이기고 있어도 에이로드나 푸홀스가 아무 이유 없이 교체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몇몇 노장 선수들이나 유격수, 포수 등의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을 제외한다면, 하위 타선의 선수들은 신인급으로 교체해서 경험을 쌓게 하더라도, 중심타선 만큼은 함부로 교체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하게 상대팀과 맞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다.

팬들은 이미 큰 점수를 뽑고 있는데 더 많은 점수를 뽑으려고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공이 빠지면 한 베이스만 진루하고 거기에 머문다. 또한 예전에 콜로라도와 애틀란타에서 활약했던 거포 ‘안드레스 갈라라가’가 3볼 상황에서 가운데 직구를 때려서 홈런을 친 적이 있는데, 당시 팬들과 언론에게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 경기가 올스타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대팀도 이러한 배려를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라 느끼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는 이런 면이 기본적인 에티켓인 것이다. 상대에게 관용을 베풀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자극하지 않고, 전체적인 경기 시간도 단축시키자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사실 우리 정서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상대팀의 대기록 달성 도전에는 정면승부로 대응하라.

10계명에 있는 투수의 노히트 노런 같은 경우만이 아니라, 모든 대 기록에는 정면승부를 하기를 원한다. 당당하게 힘과 힘으로 맞서서 기록을 깨야만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연속 경기 안타를 기록 중인 타자에게 고의 사구로 거르지 않는다든지, 투수가 연속타자 삼진을 잡고 있을 때에도 번트를 대지 않는다. 이번 피비의 9타자 연속 삼진 때에도 번트를 대는 타자는 없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은 시즌 중에 간판선수를 트레이드 하지 않는다.

예전에 악동으로 유명했던 칼 에버렛이 그 난리를 치며 말썽을 부렸어도 보스턴은 그를 트레이드 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보스턴이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고 있었고, 에버렛이 중심타선의 한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사에서 장타를 때렸다고 무리하게 3루까지 달리지 마라.
2아웃에서 3루 도루를 시도하지 말라.

무사 2루도 충분히 좋은 찬스인데 무리한 주루 플레이로 3루까지 내달리다 아웃되면 그 원성은 감당하기 힘들다. 2아웃 상황이라면 주자 역시 타자가 공을 때리는 순간 무조건 스타트 한다. 즉 단타가 나온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득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괜히 3루까지 갔다가 비명횡사함으로 이런 기회를 날려버리면 야유받기 딱 좋다.(물론 아웃만 안당하면 파인 플레이로 환호성이 터진다.)


원정팀이 친 홈런은 그라운드로 다시 던져라

이것은 예외적으로 팬들에게 해당되는 불문율이다. 그것도 특히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에서 반드시 지켜지는 룰이다. 컵스 경기를 보다 보면 원정팀의 홈런공은 잡아서 다시 그라운드로 던져준다. 원정팀의 홈런 볼은 기념으로라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자존심의 표현이다. 심지어 장외 홈런이 나오면 일부 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을 그라운드 안으로 던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른 구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과연 100만 달러가 책정되어 있는 본즈의 756호 홈런도 다시 던져 줄지는 의문이다.


클럽하우스 안에서의 일을 밖에서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

바로 이점을 자주 무시하기 때문에 커트 쉴링은 ‘떠벌이’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