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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메이저리그의 디비전 제도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일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9. 28.
뉴욕 양키스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자, 양키스의 구단주 행크 스타인브레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행 디비전 제도를 증오한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잘못된 현행 디비전 제도 때문에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원망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올해부터 아버지 조지 스타인브레너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은 신임 구단주의 볼멘소리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많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며 조 토레 감독까지 해고해버렸는데, 그와 동시에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이 중단되어버렸으니 저런 변명이라도 하고팠을 것이다. 더군다나 양키스를 떠나 다저스 감독으로 취임한 토레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타인브래너가 위의 말과 더불어 던진 “다저스가 양키스보다 좋은 팀인가?”라는 질문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4위 양키스는 떨어지고 8위 다저스는 올라가고

앞서 언급한 대로 양키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다저스는 진출을 확정지었다. 문제는 두 팀의 승률과 순위다.


양키스는 한국시간으로 27일 현재 88승 72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양키스의 이러한 성적은 중부지구의 선두인 미네소타 트윈스(87승 73패)를 한 경기차로 앞서는 것이며 아메리칸리그 전체 4위의 성적이다.


반면 다저스는 지구의 다른 허약한 팀들 덕에 83승 77패의 성적으로도 지구 1위를 확정지었다. 이는 중부지구 4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84승 76패)에도 한 경기차로 뒤진 내셔널리그 전체 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각각의 리그에서 4팀씩 진출하는 포스트시즌에 리그 전체 순위 4위인 양키스는 떨어졌고, 8위인 다저스는 올라간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봤을 때도 양키스의 성적은 7위, 다저스는 딱 절반인 15위에 불과하다. 전체 7위를 했음에도 8팀이 진출하는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양키스 입장에서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 현행 디비즌 시리즈 제도

1876년 내셔널리그가 태동하고 1901년 아메리칸리그가 생겨나면서 양대 리그는 1903년부터 각각의 리그 우승자끼리 겨뤄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월드시리즈 제도를 도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지구(Division)’라는 개념은 없었다. 각각의 리그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었으며 페넌트레이스 1위가 리그를 대표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야구의 인기가 늘어남에 따라 팀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1969년 리그별 10개 팀에서 12개 팀으로 확대됨에 따라 각각의 리그는 ‘동부’와 ‘서부’ 두 개의 지구로 나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각 지구의 1위가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생겨났고, 그 승자가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중부지구’가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디비전 제도가 형성되었다. 각 지구에서 1위에 오른 3팀과, 2위 팀들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팀에게 ‘와일드카드’ 자격을 부여해 리그별로 4명씩의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가려지게 된 것이다.


▶ 정말로 현행 디비전 제도는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사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다.


리그별로 4팀이 진출하는 포스트시즌에 4위 팀이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된다. 더군다나 8위 팀이 진출한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더군다나 다저스의 메이저리그 전체 순위는 겨우 15위. 이것은 지난 2006년 13위로 진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에까지 오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경우보다 더 나쁘다.(솔직한 심정으로 필자는 이 해의 카디널스를 도저히 챔피언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긴 하지만, 만약 올해 다저스가 월드시리즈를 차지한다면 일각에서는 그들의 우승을 평가 절하할 것이 분명하다. 현행 디비즌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와일드카드 2위 팀보다 낮은 승률을 기록한 팀이 지구 1위를 차지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적은 모두 9번이다.


그렇다면 행크 스타인브레너의 말이 옳은 것일까? 지구의 구별 없이 리그 전체 성적으로 4위까지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게다가 양키스 역시도 이러한 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본 팀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그는 잊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00년에 양키스는 와일드카드 획득에 실패한 중부지구 2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보다 3승이나 적은 87승을 거두고도 지구 1위였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이 있다. 리그 5위로 진출한 양키스는 포스트시즌에서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했다. 현행 디비전 제도가 아니었다면 양키스의 3연패는 없었을 것이다.


지구가 나뉘고 세분화 되면서 메이저리그는 같은 지구 소속 팀들과 더욱 많은 경기를 하게 되었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같은 지구 소속 팀과는 대략 18경기씩(6팀인 NL 중부는 좀 더 적고, 4팀인 AL 서부는 19경기)을 치르게 되고, 나머지 팀들과는 적게는 3번에서 많게는 10번 정도까지 만난다.


행크 스타인브레너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국 프로야구처럼 모든 팀들이 같은 회수만큼의 시합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리그도 상대 리그에 속한 모든 팀들과 치르거나 아예 없어져야만 할 것이다. 상대하는 팀이 다르고 그 수준과 상황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승률을 기준으로 하여 ‘양키스가 다저스보다 좋은 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리그 전체의 성적을 통합해서 순위를 산정한다면 굳이 4강을 가릴 필요도 없다. 디비전 제도를 부인한다는 것은 현재의 포스트시즌 제도를 부인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굳이 8강전(디비전 시리즈)과 4강전(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을 벌일 필요 없이 양 리그의 페넌트레이스 1위가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하면 된다. 이래저래 양키스는 명분이 없다.


▶ 디비즌 제도는 현재 메이저리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비결이다

현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은 ‘직무대행’기간을 포함해 1992년부터 재임하면서, 최악의 ‘파업사태(1994~95)’에 이어 지난해의 ‘약물 파동’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올 초에 2012년까지 메이저리그와의 계약을 연장했다. 이것은 그가 재직 기간 중에 현재 야구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두 가지 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1997년부터 시작된 ‘인터리그’이며, 다른 하나가 바로 이 현행 디비전 제도의 시행이다.


월드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붙을 일이 없었던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팀들이 시즌 중 벌이는 인터리그 경기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와일드카드’라는 흥미진진한 제도와 좀 더 많은 팀이 벌이는 포스트시즌은 늘어난 진출 팀의 개수만큼이나 더 큰 흥미를 자아냈다.


가장 많은 대결을 벌이는 같은 지구 소속 팀들 가운데 1위를 가리고, 그 외의 팀들 가운데 가장 승률이 높은 한 팀까지 포함해 도합 4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 시키는 것. 이것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장 ‘최선’에 가까운 방법이 아닐까.


현재 실시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현실화하지 못하는 데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책’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실시되고 있는 현행 디비전 제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불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불만 때문에 매번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예전에 10개 팀으로 단일 지구 형식의 리그를 운영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디비전 제도는 넓은 땅덩이를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경제적인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더군다나 그로 인해 형성된 많은 라이벌 구도는 야구를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 한 때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양대 리그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한 때 1999년부터 2년 동안 양대 리그 제도가 실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사라지고 말았다.


시행 첫 해였던 99년에 롯데가 전체 2위의 승률임에도 불구하고 드림리그 2위라는 이유로 매직리그 1위인 삼성에 홈필드 어드벤티지를 넘겨줘야 하자 롯데 팬들은 “말도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삼성 팬들은 “그러면 너희가 매직리그로 오지 그랬냐?”라며 비꼬았다.


이듬해에는 상황이 완전 역전, 정말 리그를 바꿔 매직리그 2위가 된 롯데가 드림리그 3위 삼성보다 낮은 승률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삼성 팬들이 “이 따위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롯데가 삼성보다 잘하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롯데 팬들은 “그럼 너희가 매직리그로 오지 그랬냐?”는 전년도 삼성 팬들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며 비꼬았다.


결국 바뀐 룰로 인해 두 팀은 준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양대 리그 자체가 무의미했던 어이 없는 진행이었다. 2년에 걸친 산통 끝에 한국에서의 양대 리그 제도는 폐지되고 말았다. 팬들의 원성 어린 목소리 앞에서 KBO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매년 행크 스타인브레너처럼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잡음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무국의 강한 의지와 대다수 팬들의 성숙한 야구 관전 문화 덕분이다.


지금은 시기가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 프로야구도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팀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양대 리그의 시행이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8년 전과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을 텐데, 그 때도 계속해서 제도를 비난할 것인가? 다시금 찾아온 500만 관중 시대에 발맞춰서, 이러한 점들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