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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어린 투수들의 혹사, 그것이 승리의 대가가 될수 있는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4. 27.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 오며서 스포츠 신문을 하나 사서 읽었다. 선동렬 감독의 간단한 인터뷰와 멘트가 실려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250구 이상을 던졌던 기억을 회상하며, 요즘 투수들은 자기 때에 비해 많이 편해졌다는 경험담을 먼저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뒤에 덧붙였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물론 그때와 지금은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러나 정신력의 차이도 있다. 요즘 선수들은 팀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5~6회 승리요건이 되고 투구수가 조금 되면 그만 던지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이 된 측면도 있다. 요즘은 중·고학생들도 투구수가 많아지면 학부형이 난리를 피우는 세상이다. 또 인스턴트 음식 같이 먹는 것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


  요약해 보자면 선동렬 감독의 생각에는, '정신력' 이 여전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선수는 팀을 위해 (어느 정도는) 희생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고, 최근의 젊은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받아오는 보호적인 교육에 대해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스턴트 음식에 관한 언급을 제외한다면) 단 하나도, 단 1%도, 정말 눈꼽만큼도 선 감독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정신력의 발휘는 순간의 고통은 잊게 하지만, 이미 망가진 몸은 그것을 기억하며 그의 캐리어를 마감해 버릴 수도 있다.


  팀을 위해 희생한 선수에게 도대체 구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 사실상 해주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벌써 7년째 누워있는 롯데의 임수혁을 보라! 그의 이름 앞 에 '롯데' 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다.


  어릴 때부터 선수 보호에 대해 교육을 받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감독에게 무작정 항의하는 학부형들의 치맛바람을 탓하기 이전에, 그런 선진 교육이 선수들을 관리하고 키워줘야 할 감독이 아닌 학부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감독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무지함을 먼저 되짚어 보며 우리 프로야구계가 깊이 반성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한 때 한국을 대표하는, 아니 아시아를 대표했던 최고 투수 출신인 선동렬 감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실망스러울 뿐이다.


  하긴 이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투수들의 분업화가 십 수 년 전부터 체계를 잡아가며 잘 이루어졌고, 어린 투수들에 대한 철저한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는 메이져리그에서도 일부 감독들의 성향이나, 정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젊은 투수들이 한창의 나이에 그들의 날개를 다 펴보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결국 마크 프라이어(27, 시카고 컵스)는 어깨 수술을 받았다. 올시즌은 더 이상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팔꿈치 수술보다도 투수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하는 어깨 수술이기에 더욱 염려가 된다. 수술 후 오히려 구위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는 팔꿈치 수술과는 달리, 어깨 수술의 영향은 투수 생명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재활을 하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구위를 100% 회복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롱런에 대한 꿈도 마찬가지이다. 관계자들이 언론을 통해서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발견된 것은 아니어서 투수생명에 영향을 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식상하기까지 한 뻔한 립 서비스용 멘트를 믿어줄 팬들은 없다.


  내년에 무사히 복귀해서 풀타임을 던져야만 FA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프라이어지만, 일부에선 컵스가 프라이어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그를 조건 없이 풀어 줘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프라이어가 건강하게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의 소속팀은 더 이상 컵스가 아닐 것이라는 예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 같지도 않고, 저런 예측이 나오는 현실 자체에 대해 실망감을 느낄 뿐이다.


  혹자들은 야구가 축구나 농구에 비해 참 편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투수들이 감당해야 하는 운동량은 그다지 만만하지 않다. 100개의 투구,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축구나, 공을 소유하든 그렇지 않든 40분 내내 코트를 미친 듯이 왕복해야 하는 농구에 비해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축구와 농구가 하루나 이틀만 쉬면 다음의 경기에서 무리 없이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왜 선발투수는 100개를 던지고 나면 4일을 쉬어야 다음 경기 때 정상적인 투구가 가능할까?


  정지된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가 가진 모든 탄력을 뿜어내는 것, 그것이 투구라는 동작이다. 140~160킬로의 공을 던질 때 소모되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적으로 소모되는 운동량은 축구나 농구의 그것이 훨씬 클 테지만 투구라는 한 동작에서 소모되는 단위시간당 운동량은 그 어떤 스포츠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절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마크 프라이어가 메이져리그를 호령했던 2003시즌 그의 게임당 투구수는 무려 114개, 당연히 메이져리그 전체 1위였다. 일반적으로 긴 이닝을 소화하며 공을 많이 던지는 걸로 알려진 커트 쉴링(102개)과 랜디 존슨(100개)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수치로 치더라도 10%이상이나 많은. 당시 266이닝을 던지며 투구이닝에서 1위를 기록했던 로이 할라데이도 게임당 투구수는 102개에 불과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한 투구동작은 그 자체로 피곤한 것이다. 게임당 12~14개가 뭐가 많으냐고 할지도 모르지만그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의 결과를 가져온다.

  03시즌은 프라이어 뿐만 아니라 캐리 우드도 캐리어 하이를 기록한 시즌이었다. 그의 평균 투구수는 111개, 말 할 것도 없이 프라이어에 이어 전체 2위다. 프라이어보다 한살 적은 카를로스 잠브라노도 그 시즌에 풀타임 선발로 화려한 첫 시즌을 맞이했다. 평균 투구수는 108개, 이젠 설명하기도 귀찮을 지경이다. 전체 3위다.


  다행히도 잠브라노는 무쇠체력을 자랑하며, 바로 다음 시즌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작년까지도 여전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매년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데드암 시즌이 올지도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듯 올시즌은 현재까진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잠브라노는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닌 듯 해 그나마 다행이다.

  이미 신인시절 심각한 혹사로 인해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날린 전력이 있던 우드는 다시 부상을 달고 다니더니 급기야는 불펜으로 강등, 올시즌은 아직까지 얼굴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프라이어 역시 비슷한 처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프라이어는 그냥 유망한 투수 유망주가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NBA에서 괜찮은 스윙맨이 나타나면 항상 '포스트 조던' 논쟁을 불러 일으켰듯이, MLB에서도 좋은 투수가 나타나면 그에 대항 평가는 마찬가지로 '제 2의 누구' 라는 식이었다. 당당한 체구에 빠른 볼을 던지면 제 2의 클레멘스, 키 큰 좌완이면 제 2의 랜디, 공은 그다지 빠르지 않은데 컨트롤이 좋다면 제 2의 매덕스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프라이어의 평가는 그 자체가 달랐다.


"역대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선수"


  라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과 언론의 평가였다.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있는 투수들이 활약을 하고 있는 시대에서 그러한 평가를 받는 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러한 프라이어가 이제는 복귀를 장담 할 수 없으며, 건강하게 복귀한다고 해도 예전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현실은 메이져리그 야구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한국 야구에서도 작년 신인으로서 투수 3관왕을 달성하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던 류현진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완투승을 거두었던 경기에서의 투구수는 132개. 평균 투구수는 120개가 넘는다. 이제 갓 만 20세가 된 투수에게 이것은 상당한 무리로 보인다.

  92년 고졸 신인으로 200이닝 이상을 던졌던 염종석은 그 뒤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류현진이 그와 같이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염종석의 부활 소식이 들리고 있어 참으로 반가운 요즘, 한국 야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류현진의 미래가 '혹사'로 인해 불투명해지는 것은 그 가능성이라도 미연에 방지했으면 싶을 뿐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이라는 어이없는 증세로 메이져리그를 떠나고 말았지만, 00시즌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이 릭 엔키엘을 키워가는 방법은 참으로 인상 깊었다. 최대 투구수를 100개로 정해놓고, 이닝이 진행되는 중에라도 한계 투구수에 다다르면 무조건 다음 투수로 교체시켜주었다.


  라루사 감독이 그의 정신적인 면을 과대평가하여 포스트 시즌 1선발로 등판시키는 바람에, 산타나와 동갑이지만 산타나보다 3년이나 먼저 메이져리그 최고의 좌완투수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엔키엘을 지금은 메이져리그에서 볼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메이져리그 역사상 최초로 선발-셋업맨-마무리 로 이어지는 투수 분업을 정착시킨 라루사의 선수기용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루사의 투수 분업이 그 후 메이져리그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프로야구로 번져나갔던 것처럼,  그의 젊은 투수 조련 방법도 배울 수는 없을까? 00시즌은 카디널스 최고 투수 유망주였던 맷 모리스가 부상에서 복귀한 시즌이기도 했다. 우승에 목말라 하던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스급 선발투수 유망주였던 모리스를 단 한번도 선발 등판 시키지 않으며 불펜으로만 50여 이닝만을 소화하게 했다. 그렇게 모리스를 바로 무리하게 기용하지 않았기에, 다음시즌 모리스는 에이스로 부활하여 22승을 거두며 라루사 감독의 배려에 멋지게 보답 할 수 있었다.

  라루사 감독의 투수 분업 시스템을 본받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감독들이, 왜 라루사 감독의 신인 투수 관리 시스템은 배우려 하지 않을까? 작년까지 컵스의 감독이었던 더스티 베이커, 삼성의 선동렬 감독, 그리고 류현진으로 하여금 저렇게 던지게 하고 있는 한화의 김인식 감독, 모두 나름대로 명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감독들이다. 이기는 경기를 할 줄 아는 감독들이고, 승부에 있어 철저한 감독들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승리가 과연 값지다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눈앞에서 한 두 경기를 잃는다 하더라도 어린 선수들에 대한 보호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을 위한 것이다.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한 팬들을 즐겁게 하는 방법은 당장 눈앞의 승리만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와 장기적인 계획 또한 훌륭한 팬 서비스에 속한다 할 수 있다.


   한국에서건 미국에서건 더 이상 젊은 투수들이 의미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들은 미래에도 우리 팬들의 즐거움이 될 선수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