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도대체 스포츠맨십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6.


  보스턴이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온 숙원을 풀었던 2004년. 그 일등 공신은
‘핏빛 투혼’ 을 보여준 커트 쉴링이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6차전과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발목 근육을 수술한 뒤 마운드에 올랐던 쉴링의 발목에서는 피가 배어나왔고, 이닝이 바뀔 때마다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멋진 투구를 보여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쉴링 혼자만 멋있었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쉴링이 ‘승리를 향한 투혼’ 을 보여주었다면 상대팀인 뉴욕 양키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스포츠맨쉽’ 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며 아름다운 패배를 감수했다. 쉴링의 다리가 불편한 것을 알았던 두 팀은 그 경기에서 결코 번트를 대지 않았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승부에서 철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을 참아가며 투혼을 보이는 상대에 대한 예우를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참으로 인상 깊고 감동이 되는 승부였다. 팀의 100년 한을 풀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불태운 쉴링과, 그에게 당당하게 맞서준 상대팀. 야구라는 스포츠의 감동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쉴링이 등판했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6차전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더 있었다. 쉴링의 뒤를 이어 등판한 선수는 브론슨 아로요. 그 유명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손치기 사건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 경기였다.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려가다가 자신을 태그하려고 다가오는 아로요의 팔을 손으로 쳐냈던 것이다. 많은 팬들이 실망을 했고, 에이로드를 질타하는 여론이 들끓었었다. 과한 연봉으로 인해 그를 비난하는 이들 외에는 그렇다할 안티 세력이 없던 에이로드는 이 사건으로 수많은 적들을 만들고 말았다. 그 자신 스스로가.


  에이로드는 이번 시즌에도 두 번이나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2일 경기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뒤 이어진 포사다의 땅볼 때 더블 플레이를 막기 위해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의 복부를 향해 팔꿈치를 들이밀었던 것이다. 에이로드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1루에서는 세이프였을 거라는 심판의 판정 때문에 더블 플레이는 면했지만 차라리 더블 플레이가 나았을 거라는 생각까지 드는 아쉬운 플레이였다.


  메이져리그 공식 사이트에서도 대문을 차지했던 그 장면은, 에이로드를 향해 많은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페드로이아가 큰 충격 없이 잘 피했기에 망정이지, 부상을 당했다면 그 여파는 훨씬 더 컸으리라. 에이로드 자신도 지난 00시즌 올스타 선발 출장을 앞두고 벌어진 다져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알렉스 코라의 비신사적인 슬라이딩(태클에 가까운)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아쉬움은 더욱 짙었다.


  이 사건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사건이 더 일어난다. 스트립바 출입 사건은 경기장 외의 일이니 일단 논외로 하자. 하지만 그 사진이 대서특필 되며 비난의 여론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 날인 5월 3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에이로드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당시 양키스는 5연패 중, 에인절스에 스윕을 당한데 이어서 또다시 토론토에게 스윕을 당할 위기에 쳐해 있었다.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 양키스의 불펜, 특히 마리아노 리베라까지 불안한 상황이었기에 9회 6:5 한 점차의 리드는 안심할 수 없는 점수였을 것이다. 이미 7연패의 수렁에까지 빠진 적이 있던 그들이었기에 또 한 번의 6연패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만 했던 중요한 경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쉽게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6:5의 불안한 리드를 보이던 9회 초 2사 주자 2,3루의 상황에서 그는 천금같은 1타점 중전안타를 때린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아마 이대로 이닝이 끝났더라면 승리의 수훈까지는 아니더라도 숨은 공로자 정도는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 포사다의 내야 뜬 공을 상대 3루수 존 맥도날드가 공을 잡으려는 찰나, 3루로 달려가던 에이로드는 알 수 없는 고함을 내지른다. 다른 동료가 자신이 잡겠다고 소리친 것으로 알았던 맥도날드는 다 잡았던 공을 그냥 포기했고, 공이 허무하게 땅을 구르는 사이 마쓰이가 홈으로 들어온다.


  그 고함의 내용이 ‘mine’ 이었든 에이로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hah’ 라는 고함이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현재 올스타 투표 1위를 달리고 있을 만큼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메이져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할 행동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계획된 행동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타난 우발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 상대팀의 플레이를 방해했고, 승부를 떠나서 양키스의 팬들까지도 잊고 싶은 경기가 되고 말았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팀의 리더인 지터는 “에이로드에게 물어보라” 며 대답을 회피했고, 조 토레 감독조차도 에이로드의 입장을 변호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라며 그의 실수를 인정했다. 시즌 초 에이로드의 9회 말 역전 만루 홈런 등으로 오프시즌 동안의 불안한 팀 분위기를 극복하고 하나 되는 듯 보였던 양키스는 그 이후 계속 이어진 패배와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사분오열 되고 만 것이다.


  비단 에이로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6월 1일 시카고 컵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간의 경기에서는 컵스의 배터리가 덕아웃에서 치고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1-4로 뒤지고 있던 4회 초 주자 1,2루의 위기상황에서 바깥쪽으로 빠져있었다고는 하지만 거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투수 카를로스 잠브라노의 공을 포수 마이클 바렛이 블로킹 하지 못하고 뒤로 빠뜨린다. 거기다가 3루를 향해 달려가는 2루 주자를 잡기 위해 던진 공까지 악송구가 되어 피터 오르가 홈까지 들어온다.


  이닝이 끝나고 덕아웃에서 말다툼을 벌이던 이 두 명의 배터리는 언쟁 끝에 잠브라노가 먼저 주먹을 날리며 몸싸움을 벌이고 만다. 바렛의 수비와 투수리드가 계속해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 경기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뭔가가 잘 풀리지 않던터라 잠브라노의 기분이 그다지 좋을 리는 없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료들끼리의 몸싸움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작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배터리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와 존 벅이 싸운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다시금 이런 행태를 보게 된 팬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컵스는 레드삭스와 함께 가장 열광적이기로 유명한 팬들을 보유한 팀이 아닌가.


  이틑날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간의 경기에서 또다시 실망스러운 장면이 나왔다. 페드로이아에게 팔꿈치를 들이댔던 에이로드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보스턴 3루수 마이크 로웰이 한 술 더 뜬 장면을 연출한다. 만루 상황에서의 2루수 앞 땅볼, 2루를 향해 달리던 로웰은 자신을 태그하러 오는 로빈슨 카노를 보고는, 더블 플레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강한 몸통치기를 시도한다. 그 와중에도 공을 떨어뜨리지 않으며 1루 송구까지 감행하여 더블 플레이를 성공시킨 카노의 플레이는 칭찬 받을만 했지만, 로웰의 플레이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과거에도 종종 이러한 사건들이 있어왔고, 그로 인해 비난의 여론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처럼 큼직한 사건이 연이어서 터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4번의 경우 중 3번은 홈팀이 보여준 추태다. 자신들을 응원하러 온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여 주기는 커녕, 이러한 팀의 팬임을 부끄럽게 느끼게 만들 만한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시즌이 끝난 뒤 전 세계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그럴 자격이 있었던 두 명의 선수가 은퇴를 발표했다. 한명은 루 게릭의 연속 경기 출장기록을 60여년 만에 갱신한 ‘미스터 오리올스’ 칼 립켄 주니어, 다른 한명은 홈런 퍼레이드와 신사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국 어린이들의 꿈’ 마크 맥과이어였다.


  훗날 약물로 인해 두 명의 위상은 완전히 뒤바뀌긴 하지만, 선수생활 시절만 하더라도 둘은 팬들 뿐만이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최고의 플레이어였고 롤 모델 역할을 하는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비록 맥과이어가 약물에 관해서는 전혀 스포츠맨답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그 점은 논외로 하자)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도 컸으며, 가끔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따끔한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포츠맨십’ 을 중요하게 여겼고, 팬들과의 호흡이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않았던 이들, 립켄과 빅맥이 현역이었다면 요즘의 후배들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현 메이져리그 최고 고참 투수인 로져 클레멘스는 아르바이트 하듯 시즌 중간에 계약하는 취미가 생겼고, 게다가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경기에서는 쉬게끔 해달라는 사상 유래가 없는 계약을 체결했다. 마찬가지로 최고참 타자인(훌리오 프랑코를 제외하고) 배리 본즈는 약물 파동 외에도 언행과 팀 캐미스트리 문제에서 항상 약점을 지적 받는 입장이다.


  윗물도 그다지 맑지 못하고, 아랫물도 그다지 맑지 못한 요즘의 메이져리그. 이렇게 계속해서 최고의 스타들이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거침없이 한다면 팬들역시도 그들에게서 멀어질 지도 모른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지만 프로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팬들을 위해 존재한다. 팬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고, 보는 이의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선수는 프로로서 자격이 없다. 더 이상 지금과 같이 팬들의 외면을 부추기는 비신사적인 행태는 보여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