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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MLB의 롯데 자이언츠 - 뉴욕 메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9.

 ‘구도’ 부산이 타오르고 있다. 열일 스포츠신문에서는 부산의 야구 열기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고, Daum 에서도 야구 카테고리에 ‘핫이슈 - 부산의 야구열기’ 라는 코너까지 선보이고 있을 정도다. 1000경기를 넘게 롯데 경기를 관람한 75세 할아버지 팬부터, 롯데를 위해 좋은 기사를 써주는 기자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나선 아줌마 팬, 사직구장의 “아주라~(파울 등의 공을 어른이 받았을 경우, 근처 어린이에게 주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 외침의 주인공이 되는 어린이 팬들까지, 신문기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사직구장의 열기는 정말 뜨겁다. 그렇다면 롯데의 성적은 어떤가? 시즌 초반 잠깐 반짝하긴 했지만, 현재 롯데는 5할 승률에 겨우 턱걸이 하거나 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5,6위를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직구장은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있고, 역대 최다관중 몰이의 1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부산의 야구팬들은 성적을 보고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롯데와 함께 호흡하고, 같이 수많은 드라마를 써냈던 주인공들이었다. 단순한 관중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역 야구팀을 사랑하고, 야구를 즐길 줄 아는 팬들을 보유한 행복한 팀이 바로 롯데다. 수년간 꼴찌에서 허덕이던 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원을 보내주는 그런 팬들과 함께 하는 야구장. 바로 모든 팀이 바라는 꿈같은 환경이 아닐까.


  메이져리그에도 이와 비슷한 뜨거운 팬을 보유한 팀들이 있다. 100년 한을 풀지 못하고 아직까지 우승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상대팀의 홈런공은 가져가지 않겠다며 그라운드로 다시 던지는 시카고 컵스의 팬, 극성스럽기도 하지만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내셔널리그 최고 명문 구단으로 우뚝 설수 있게 만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열광적인 팬들까지. 하지만 팀이 어려운 시기에 쳐했을 때도 일관되고 멋진 응원을 보여주었던 팬은 바로 ‘어메이징’ 이라는 별명을 가진 뉴욕 메츠의 팬들일 것이다.


  1958년 뉴욕 시민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동시에 두 가지나 접하게 된다. 뉴욕을 연고지로 하던 3개의 팀 중 브루클린 다져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한꺼번에 캘리포니아로 연고지를 옮겨버린 것이다. 워낙에 압도적이었던 뉴욕 양키스의 아성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매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두 팀, 결국 돈에 눈이 먼 두 명의 구단주는 팬들의 간절한 애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 3000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LA 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겨 버린다.


  구단 이전은 대성공이었다.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크고 많은 인구가 모여 있던 캘리포니아에 야구를 가져다 준 두 팀은 흥행에 성공했고, 뉴욕시절처럼 라이벌 구도를 이어가며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당시 뉴욕은 완전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뉴욕의 교양 있는 메트로폴리탄들을 위한 구단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뉴욕에 그들을 위한 야구팀은 없었다.


  흔히들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양키스는 ‘브롱스 범버스(Bronx Bombers)' 라는 별칭에서 볼 수 있듯이, 뉴욕의 5개 자치구 가운데 브롱스 지역에 구장을 가지고 있고 실질적인 연고지도 바로 그 지역으로 한정된다고 볼 수 있다. 브롱스는 자치구 가운데서도 가장 빈민이 많고 공장이 많은, 19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농촌에 가까운 도시였다. 많은 사람들이 양키스를 돈만 뿌리는 부자구단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의 팬층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었고, 양키스는 그런 빈민들에게 꿈과 환상을 보여준 구단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자치구인 브루클린이나 맨하탄의 중상층 이상의 주민들은 브롱스 지역에 출입하기도 어려웠고, 그들에게 양키스는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도시민의 입장을 대변했던 두 개의 구단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이듬해 바로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새로운 구단의 탄생이 발표되었고, 3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뉴욕 시민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신생구단이 등장한다. 'Metropolitans' 라는 별칭을 가진 뉴욕 메츠(Mets - Metropolitans의 줄임말)의 탄생이었다.


  1962년 메츠는 양키스를 7번이나 월드시리즈 챔프로 이끈 당대 최고의 명장 캐이시 스텡겔(Casey Stengel-1966년 명예의 전당에 오름)을 감독으로 영입하고, 선수들을 끌어 모아 힘차게 시즌을 맞이한다. 하지만 신생팀의 진면모를 선보이며 끝없는 추락을 거듭, 40승 120패라는 역대 메이져리그 최다패 신기록(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음)을 세우는 참담한 전적을 남기고 시즌을 마감한다. 당시 메츠의 팀 상황은 메이저리그 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낯간지러울 정도의 수준 낮은 플레이를 선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던 왕년 다저스의 강타자 길 허지스(Gil Hodges-통산 370홈런)는 무릎 부상으로 벤치만 지키고 앉아 있었고, 돈 짐머(Don Zimmer-당시 메이져리그 9년차)는 34타석 연속 무안타에 빛나는 한심한 타격감을 선보였다. 34홈런 94타점을 올린 프랭크 토마스(Frank Thomas-현역인 토론토의 프랭크 토마스와 아무런 관계없다. 이 선수는 백인이다)를 제외하고는, 제몫을 해준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메츠는 수많은 화제를 뿌리곤 했다. ‘멋진 플레이’가 아닌 ‘어이없는 플레이’ 로 말이다. 당시 메츠의 플레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한번 되새겨보자. 당시 메츠의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던 선수는 1루수 마브 스론베리(Marv Throneberry) 였는데, ‘놀라운 마브(Marvelous Marv)’ 라는 칭송까지 듣는 메츠의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사실은 툭하면 공을 떨어뜨리고, 그라운드를 돌며 베이스를 밟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 할 정도로 산만해서, 그 실력 자체는 전혀 놀랍지 않은 선수였다.


  1962년 6월 17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공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1루 주자를 손으로 막아서는 기행을 연출, 시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더니, 곧이어 타석에 나와 3루타를 쳐놓고 1루를 밟지 않아서 아웃되는 어이없는 일까지 저지른다. 감독인 캐이시가 의례적으로 항의하러 나왔지만, 1루심 왈 "이런 말까진 하기 싫은데요, 사실 저 친구 2루도 안 밟았어요." 낙심한 케이시는 "그래도 지금 베이스에 서있으니까 3루는 밟은 거 맞지?" 라고 말한 뒤 쓸쓸히 덕아웃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엘리오 샤콘(Elio Chacon)이라는 유격수가 있었는데, 부족한 수비 능력을 노력으로 커버하기위해 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몸을 날리는 팀의 귀염둥이였다. 다만 샤콘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중견수가 외치는 "마이볼"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워낙 열심히 뛰는 샤콘인지라 플라이 볼을 잡기위해 중견수와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중견수 리치 애쉬번(Richie Ashburn)은 가까스로 통역에 성공, 샤콘과의 진지한 대화 끝에 앞으로 마이볼을 선언할 때 "Yo la Tengo! Yo la Tengo!" 라고 외치기로 합의하였다. 다음날 어김없이 플라이볼은 중견수와 유격수 사이로 날아갔고, 전날 한 약속을 되새기며 아주 큰소리로 "Yo la Tengo!"를 외치던 에쉬번, 하지만 이번엔 그만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좌익수 프랭크 토마스와 충돌하여 넘어지는 촌극을 연출했다. 이런 웃짐 못할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었던 것이다.


  기본기와 팀웍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메츠,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 가능성이나 희망이라곤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너무나도 야구를 사랑하는 열광적인 팬들이었다. 창단 첫해인 62년, 17연패 - 1승 - 11연패 - 1승 - 13연패,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수모를 당했던 메츠였지만, 폴로 그라운드에는 언제나 "Let`s go METS!!"를 외치는 열광적 홈팬들로 가득했다.


M is for mighty!(메츠는 강해)
E is for exciting!(메츠 경기는 흥미진진해)
T is for terrific!(메츠는 무시무시해)
S is for Lovable!(메츠는 사랑스러워)


  팬들 모두가 하나 되어 위와 같은 피켓을 들고 목이 터져라 이 동네야구 수준의 팀을 응원했으며, "우리는 세상이 불구덩이에 휩싸이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9회까지 끝마치길 원할 뿐" 이라는 처절한 문구까지 등장,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도 하였다. 당시 미국에 유행하던 우스갯소리 중에는 "실수는 사람이 하고 용서는 메츠팬이 한다." 라는 말까지 있었다고 하니 메츠 팬들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는가.


  뉴욕 메츠는 1962년 창단 이후 1967년까지 6년 연속 꼴지를 하다가 68년 탈꼴찌에 성공하고, 이듬해인 69년 전설적인 투수 탐 시버(Tom Seaver)가 이끈 메츠는 마침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월드시리즈 챔프가 된다. 최고의 명감독 얼 위버가 이끄는 막강 볼티모어를 꺾고 일궈낸 우승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빛났다 할 수 있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The Amazin' Mets(기적의 메츠)" 라 불렀다.(공교롭게도 이때는 스텡겔 감독이 물러서고 위에서 언급했던 길 허지스가 팀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선수들이 이끌어낸 기적이라고 하기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것이 있었으니, 바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기 고장의 동네 야구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해준 팬들의 사랑이다. 이러한 팬의 사랑이 없었다면 메츠의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가져야할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OOO팀의 팬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정상에 서 있을 때, 경기장을 가득 메워 축제 분위기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에도, 매일같이 경기장을 찾아 변함없는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팬의 자세가 아닐까?


  86년 2번째 우승 이후 21년만의 월드시리즈 챔프 자리를 노리는 메츠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92년 이후 15년만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롯데. 너무나도 멋진 팬들을 가지고 있는 메츠와 롯데는 타 구단의 부러움을 사는 진정으로 행복한 구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