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6일 센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마무리 트레버 호프만이 메이져리그 역사상 최초로 500세이브를 달성했다. 온화한 성격으로 인해 팀 동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서도,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불같은 정렬을 불태우는 1994년 이후, 14년째 팀의 주전 마무리로서 파드리스의 뒷문을 지키고 있다.
◎ 위대한 마무리 투수 호프만
‘Hell's Bells(지옥의 종소리)' 라는 호프만의 닉네임이 말해주듯, 그가 나오면 이미 그 시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팀의 주전 마무리를 맡은 이후 리그 구원투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5번이나 올스타에 뽑혔으며, 사이영상 투표에서 두 번의 2위를 기록했다. 마무리로 활약하는 동안 그의 방어율이 3점대로 치솟은 적은 단 두 번에 불과하고, 40세이브 이상을 무려 7번이나 달성한, 살아있는 마무리계의 전설이다.
특히 1.48의 방어율로 53세이브(1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98년에는, 후보들 중 가장 많은 1위 표를 획득(13표)하고서도 11개의 1위 표에 그친 탐 글래빈에게 총점에서 밀리는 바람에 아쉽게 사이영상을 놓쳤다. 나머지 8개의 1위 표는 당시 호프만과 같은 팀이었던 케빈 브라운의 것이었고, 표가 나뉘어버린 둘은 팀 동료인 그렉 매덕스와 존 스몰츠에게 단 하나의 1위 표도 빼앗기지 않은 글래빈에게 사이영상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순위 |
이름 |
세이브 |
1 |
Trevor Hoffman |
501 |
2 |
Lee Smith |
478 |
3 |
John Franco |
424 |
4 |
Mariano Rivera |
421 |
5 |
Dennis Eckersley |
390 |
6 |
Jeff Reardon |
367 |
7 |
Randy Myers |
347 |
8 |
Rollie Fingers |
341 |
9 |
Billy Wagner |
339 |
10 |
John Wetteland |
330 |
위의 표는 통산 세이브 기록 10위권에 올라있는 선수들의 명단이다(굵은 글씨는 현역). 보면 알겠지만 400세이브 이상을 거둔 선수도 단 4명에 불과하고, 현역 선수들 중에 호프만의 기록을 넘볼 선수는 사실상 마리아노 리베라, 단 한 명이다. 그 외에는 8위에 올라있는 빌리 와그너를 제외하고는, 400세이브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조차도 젊은 나이에 마무리로 데뷔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정도 밖에 없다.
4월에 2경기 연속으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이후 또 다시 연속으로 14번의 세이브 찬스를 모두 성공시킨 호프만, 그 2 경기 외의 나머지 26경기에서 그는 자책점이 없다. 이러한 페이스를 이어 나간다면 내년시즌의 옵션은 당연히 행사될 것이고, 그는 파드리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600세이브까지도 목표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베라나 K-로드라 하더라도 호프만의 대기록을 깨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테고, 만약 그들마저 실패한다면 호프만의 기록은 적어도 20년간은 난공불락의 굳건한 성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 기록의 보유자인 트레버 호프만은 명예의 전당 입성이 보장된 것일까?
◎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선?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명예의 전당 입성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하자면, 최고의 영애의 자리인 그 곳에 헌액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야구기자협회(Baseball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의 투표를 통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터랑 위원회에 의해서 선발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에 비해 전자가 훨씬 더 큰 명예로 인정을 받는다.
모든 선수들의 꿈은 바로 이 기자협회의 투표를 통과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다. 기자협회는 매년 1월 은퇴한지 5년이 지난 선수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한다. 협회에 가입한지 10년 이상이 지난 베터랑 기자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이 투표에서 기자들은 한 번에 10명까지 선수의 이름을 적어 낼 수 있고, 이렇게 행해진 투표에서 75%의 이상의 득표를 해야만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다.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서 일부러 은퇴 이후 5년이 지나야 주어지는 피선 자격은 이후 15년 동안 유효하다. 중간에 5%미만의 득표율을 보인다면 영구적으로 탈락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려 15번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62년부터 시작된 이 투표를 통과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불과 104명, 1년에 두 명꼴이 겨우 넘는 수치에 불과하다.
이 15번의 기회를 모두 놓치게 되면 마지막 희망으로 남는 것이 바로 베터랑 위원회의 선출이다. 선수 출신인 원로 야구인, 원로 기자, 야구 관계 원로 행정인 등으로 구성된 이 베터랑 위원회는 기자 투표에서 떨어진 선수들 중에서, 정말 아깝게 떨어진 선수들이나, 특이할 만한 점이 있는 선수들을 추가로 선출한다.
이런 난관들을 뚫고서 명예의 전당이란 고지를 점령한 선수는 지금까지 212명(그 중 기자투표 통과자는 104명)에 불과하다. 매년 200명이 넘는 선수가 빅리그에 데뷔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 중 1%만이 Hall of Famer 라는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과연 이러한 위치에 500세이브 달성자인 트레버 호프만이 오를 수 있는 지가 문제의 초점인 것이다.
◎ 클로져에게 너무나도 짠 기자 투표
결과부터 이야기 하지만 호프만이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깝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20년 후에도 호프만의 기록은 1위를 지키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만의 하나 기자 투표를 통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20년 넘게 한 부분의 통산 1위 기록을 지키고 있는 그를 베터랑 위원회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하지만 호프만이나 팬들이 원하는 방법은 이것이 아니다. 기자 투표를 당당하게 통과해서, 그것도 단 한 번의 투표에서 바로 그 업적을 인정받는 것이다.
한 부문의 신기록을 세운 선수라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 관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나 기자들이 그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입성에 실패한 역대 마무리 선수들, 특히 역대 2위인 리 스미스의 예를 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반대는 호프만에 대한 기억이 시들해질 때쯤 이루어질 투표에서 더욱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빌리 빈의 ‘머니볼 이론’ 이후 클로져라는 보직을 그다지 특별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풍토가 점점 확산되고 있고(빈은 클로져를 볼보이보다 조금 더 중요한 위치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렇잖아도 불리한 마무리 투수들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있어, 앞으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5년 동안 기자 투표를 통과해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투수는 겨우 34명에 불과하며, 그 중 마무리 투수로서, 또는 마무리 투수로서의 업적이 더 크기 때문에 뽑힌 선수는, 데니스 에커슬리(197승 390세이브), 롤리 핑거스(114승 341세이브), 호이트 윌햄(122승 227세이브), 브루스 수터(68승 300세이브), 이렇게 단 4명이다.
선발투수로도 149승을 올린 에이스 출신 에커슬리와 초창기 마무리로서 2~3이닝을 던져야만 겨우 세이브를 올릴 수 있었던 핑거스는 그 업적을 인정받아 첫 번째와 두 번째 투표에서 바로 입성할 수 있었지만, 윌햄은 8번 만에, 수터는 13번의 도전 끝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작년 호프만에게 깨지기 전까지 역대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리 스미스는 올해까지 5번의 투표에서 모두 40% 안팍의 득표율로 떨어졌고, 2위로서 시험대에 오르게 된 올해는 작년보다 6% 감소한 득표율(39.80%)을 보임으로써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했다. 이미 역대 6,7,10위에 올라있는 제프 리어던, 랜디 마이어스, 존 워틀랜드는 첫 번째 투표에서 0점대의 미미한 득표율에 그치며 그 자격을 상실했고, 이러한 추세라면 2년 전에 은퇴한 역대 3위의 존 프랑코도 투표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호프만과 스미스의 차이는 바로 3승
많은 이들이 “리 스미스가 헌액 될 수 없다면 호프만도 마찬가지이다.” 또는 “호프만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스미스에게도 표를 던져라.” 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1982년경부터 시카고 컵스의 주전 마무리로 활약하기 시작해 14년 동안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선수였지만, 40세이브를 기록한 적이 3번 밖에 되지 않으며, 통산 방어율도 3.03에 불과하다.
그가 뛰었던 시절은 지금보다 투수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였고, 당시 리그 방어율인 3.99에 대입하면 스미스의 조정 방어율은 132정도다. 이는 2.70의 방어율로 150의 조정방어율을 보이고 있는 호프만에 비해 떨어지는 기록이고, 무려 195의 조정방어율(방어율 2.35)을 기록하고 있는 리베라에 비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치다.
물론 리 스미스는 1이닝 마무리 체제가 확립되기 전부터 활약하여, 이후 지금과 같은 마무리 시스템이 정착하게 만든 주인공 중의 한명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1이닝 마무리로서 활약하게 된 것은 그의 선수생활이 한창 진행되던 1989년 이후였고, 그의 3년 연속 40세이브 기록도 그 이후로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 3년 중 2번은 방어율이 3점대였고 블론 세이브는 무려 21개였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스미스는 583번의 세이브 찬스에서 478세이브를 올렸지만, 호프만은 559번의 세이브 기회 중 501번을 성공시켰다. 성공률로 보면 스미스는 82.0%, 호프만은 89.6%이다. 이것을 동일한 회수로 가정하여 14년으로 나누어 본다면 평균적으로 호프만은 동일한 세이브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스미스보다 3세이브를 더 성공시킨다는 결과가 나온다. 즉, 쉽게 말해서 호프만은 스미스보다 팀에 3승을 더 가져오는 투수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3승이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 한시즌 3승의 진정한 의미
지난 3년간 메이져리그를 주름잡은 에이스급 투수들인 요한 산타나, 로져 클레멘스, 크리스 카펜터, 로이 할라데이, 카를로스 잠브라노의 3년간 성적을 합하면 226승 93패 방어율 2.93이라는 성적이 나온다. 이들 다섯과 같은 팀에서 활약하며 2,3선발급 성적을 보여줬던 투수들, 즉 나름대로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며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4점대 안팎의 방어율을 보여주었던 브레드 레드키, 앤디 페티트, 제프 수판, 테드 릴리, 그렉 매덕스 등은 지난 3년간 190승 153패 4.00이라는 방어율을 보여주었다.(매덕스가 포함되어 있어 아쉽긴 하지만, 컵스에서의 3년간 그의 성적은 46승 44패 방어율 4.26에 불과하다.)
전자의 성적이라면 승수가 좀 부족해 보이긴 하겠지만 승률과 방어율을 봤을 때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성적은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이 명예의 전당급 투수가 보통의 2,3선발급 투수들에 비해 팀에 가져오는 승은 얼마나 될까? 에이스급 투수들이 등판한 경기에서 그 팀의 승률은 62.8%, 4.00의 종합 방어율을 보인 선수들이 등판한 경기에서의 팀 승률은 53.5%였다. 35게임으로 환산하면 이 역시 3승의 차이다.
즉, 2점대 방어율의 특급 에이스가 4.00의 방어율을 보이는 투수에 비해 팀에 가져다주는 승수 역시 3승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이스의 가치가 낮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한 시즌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3승을 더 가져온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메이져리그 팀들은 이 3승을 위해 위와 같은 에이스급 선수에게 그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리 스미스는 한 시대를 주름잡는 마무리였다. 그러한 선수보다 팀에 매년 3승을 더해주는 선수가 바로 트레버 호프만이라는 특급 마무리 투수다. 스미스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호프만(그리고 리베라)은 올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명예의 전당? 3승이면 충분하다. 호프만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이제 월드시리즈 우승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