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유격수로의 인상이 더 강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역대 최고의 3루수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고 싶으신 분도 많을 것이다. 이해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2007년 올해만큼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야구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듯이 야구는 기록경기이다. 한 선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재능이나 잠재력이 아니라 수치로 나타나는 성적인 것이다. 가장 빠른 선수가 아닌 제일 많은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최고의 베이스 러너이고, 제일 무거운 벤치 프레스를 드는 선수가 아니라 많은 홈런을 치는 선수가 더 파워 있는 선수라고 평가받는다. 심지어 세이버매트릭스를 야구에 접목시킨 학자들은 수비능력까지도 정확한 수치로 나타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이 적어도 야구에 있어서 가장 가치중립적이며 절대적이라 할 만한 판단 요소는 바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나타나는 스탯이다. 그리고 이 스탯에 있어서 메이져리그 역대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준비를 하고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이번에는 3루수라는 포지션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 하고 있다.
◎ 역대 최고의 3루수 마이크 슈미트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각 메이져리그 관련 언론과 사이트에서는 포지션별 역대 최고의 선수 뽑기가 유행이었다. 혼전 양상을 보이며 발표 때마다 다른 이름이 최고로 거론된 포지션도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모든 곳에서 만장일치로 1위가 정해진 포지션도 있었다. 베이브 루스가 버티고 있는 우익수, 루 게릭의 차지였던 1루수,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로저스 혼스비의 2루수 부문, 그리고 마이크 슈미트의 3루수 부문이 바로 그랬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팀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며, 누구나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3루수 마이크 슈미트. 선수 생활 대부분을 3루수로 뛰었고, 3루수로서는 처음으로 500홈런과 1400타점을 돌파한 선수다. 2번의 리그 MVP, 12번의 올스타 선발, 8번의 홈런왕, 7번의 실버슬러거 선정에 빛나는 3루수 최고의 별이라 할 수 있다.
3루수로서 두 번째로 많은 회수인 10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공격뿐만 아니라 3루 수비수로서도 역대 2위에 랭크되어 있는 위대한 선수가 바로 슈미트다. 그는 투고타저의 시대였던 70~80년대에 리그를 주름잡는 최고의 타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슈미트의 자리가 점점 위태롭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할 후보 1순위였던 치퍼 존스가 아니라 다른 선수에 의해서 말이다.
◎ 3루수의 딜레마 - 공격? or 수비?
3루수라는 포지션은 타격과 수비가 동시에 강조되는 포지션이다. 수비에 중점을 두기에는 ‘강타자의 포지션’ 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그렇다고 타격에 더 큰 비중을 두기에는 ‘핫코너’ 라 불리는 그 포지션의 수비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 슈미트나 은퇴한 로빈 벤츄라처럼 투타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선수들은 오랫동안 3루수로서 활약할 수 있었지만, 어느 한 쪽에라도 약점을 보이는 선수는 포지션을 옮겨야만 했다.
현역인 게리 셰필드, 짐 토미, 그리고 알버트 푸홀스도 한때 3루수로서 주목 받던 선수들이었지만, 수비와 건강 문제 때문에 포지션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복귀하기는 했지만 현역 최고의 3루수인 치퍼 존스와 미겔 카브레라도 한때 외야수로의 전향을 시도했었다. 심지어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3루수로 기억되고 있는 조지 브렛 조차도 자신의 선수생활 중 3분의 1은 3루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뛰어야만 했다.
이미 언급한 마이크 슈미트(통산 548홈런 1595타점)를 비롯하여, ‘진공청소기’ 라는 별명에 걸맞게 역대 3루수 중 가장 많은 황금 장갑(골드 글러브 16회)의 주인공인 부룩스 로빈슨, ‘미스터 로열스’ 조지 브렛, 3루수 최초의 400홈런 선수인 에디 메튜스(통산 512홈런) 등, 3루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 있는 선수는 9명에 불과하다.
이는 두 번째로 적은 포수(13명)에 비해서도 제법 많이 부족하고, 3루수 이상으로 수비가 강조되는 유격수(21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로서, 공수 양면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3루수로서 꾸준히 캐리어를 이어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잘 말해준다(치퍼 존스도 아직까지 3루수로서 300홈런 1000타점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통산 성적이 아닌 단일 시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년도 |
이름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1953 |
에디 매튜스 |
47 |
135 |
110 |
.302 |
.406 |
.627 |
1953 |
알 로젠 |
43 |
145 |
115 |
.336 |
.422 |
.613 |
1980 |
마이크 슈미트 |
48 |
121 |
104 |
.286 |
.380 |
.624 |
1996 |
짐 토미 |
38 |
116 |
122 |
.311 |
.450 |
.612 |
1999 |
치퍼 존스 |
45 |
110 |
116 |
.319 |
.441 |
.633 |
2004 |
에드리언 벨트레 |
48 |
121 |
104 |
.334 |
.388 |
.629 |
위에 나열된 성적은 3루수의 단일 시즌 성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기록과 그것을 달성한 주인공들이다. 모두다 상당히 빼어난 성적임에 틀림이 없고,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는 성적들이라서 어떤 시즌이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한 포지션의 역대 최고 시즌으로 평가 받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3루수 단일시즌 최다 홈런은 마이크 슈미트의 48개, 최다 타점은 알 로젠의 145타점이다(최다 득점은 할론드 클리프트 라는 선수가 1936년에 기록한 145개). 이 정도는 최근 들어서 매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수치에 불과하며, 올 시즌 현재까지 홈런-타점-득점 1위에 올라 있는 에이로드는 이 모든 것을 능가할만한 엄청난 기록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 두 체급 통합 챔피언
현지 시간으로 6월 17일에 벌어진 시즌 67번째 경기에서 1홈런 3타점을 더하면서 시즌 27홈런 73타점에 도달, 2002년 87게임 만에 이루었던 자신의 전반기 최다 홈런, 타점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무려 20경기나 빠른 페이스다. 부상이 없다고 가정하고 현재의 페이스대로라면, 시즌이 끝난 후 에이로드의 예상 성적표는 65홈런 177타점 157득점. 대충 봐도 앞선 성적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필요하다.
2005년 .321-.421-.610 48홈런 130타점 124득점을 기록하며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적을 보여준 적이 있는 에이로드는 올해에는 ‘비슷한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캐리어 하이 시즌을 노림과 동시에 최고의 3루수로서의 업적까지도 넘보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봐선 그가 3루수 시즌 최다 홈런, 타점, 득점 기록을 경신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미 로드리게스는 3년 동안 150개가 넘는 홈런을 치며 유격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타격을 보여준 선수다. 57홈런 142타점을 기록했던 2002년은 역대 유격수 단일 시즌 최고 성적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이제는 그와 같은 대형 유격수가 또 다시 나타나기는 할 것인지조차도 의문이다.
양키스로의 이적 후 3루수로 위치 이동을 해 1개만 더 치면 되는 유격수 최다 홈런 기록(1위는 칼 립켄 주니어의 345홈런)을 아직도 깨지 못하고 있지만, 대신 그는 두 개의 다른 포지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복싱으로 치면 두 체급에서 통합 타이틀 챔피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위대한 한 시즌
1998년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마크 맥과이어(1998)나 그것을 다시 깬 배리 본즈의 2001년부터 4년 동안의 성적도 매우 인상 깊었고, 전성기의 켄 그리피 주니어나 작년의 라이언 하워드의 성적 또한 역사로 남을만한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10년 동안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개인성적은 바로 2001년의 새미 소사이다.
배리 본즈의 홈런 신기록으로 완전히 묻혀버리기는 했지만, 그 해 소사는 64홈런 160타점 146득점이라는 엄청난 스탯을 보여주었다. 역대 5위에 랭크되는 홈런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타점과 득점의 합이 300개가 넘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1949년 테드 윌리암스가 달성한 이래로 무려 50여년 만에 나온 기록이었으며, 베이브 루스, 루 게릭, 핵 윌슨, 지미 폭스, 조 디마지오 등의 전설적인 타자 10명만이 가지고 있는 성역이었다. 작년 푸홀스가 야심차게 도전하다가 실패한 이 기록에 에이로드가 도전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현재로선 상당히 높아 보인다.
◎ 선택의 기로에 놓인 천재
2001년 계약 때 포함되어 있던 옵션에 따라 에이로드는 이번 시즌의 종료 후 자신이 원한다면 다시 FA가 되어 다른 팀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가 선택한 팀이 리그 최고 수준의 유격수를 보유한 몇몇 팀일 아닐 경우에 그는 다시 유격수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선택은 미래의 팬들과 전문가들이 그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기점이 될 전망이다.
에이로드가 유격수로 뛰게 된다면 당장 유격수 최다 홈런 경신이 가능할테고, 그 이후 몇 년만 더 지금과 같은 성적이 더해진다면 저 위대한 ‘최초의 5인’ 중 한 명인 호너스 와그너를 제치고 역대 최고의 유격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유격수로 선수생활의 마감까지 활약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 것을 미리 감안하고, 3루수로서의 캐리어를 이어가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는 마이크 슈미트의 자리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2007년판『빌 제임스 핸드북』을 보면 32살인 로드리게스의 은퇴까지 최종 성적을 772홈런 2273타점 2234득점으로 예상하고 있다. 간단한 더하기 빼기를 해보면 이는 3루수로서 400개가 넘는 홈런에 1300개 정도의 타점을 더한다는 이야기가 된다.(현재까지는 145홈런 427타점)
빌 제임스는 작년 에이로드의 모습을 보고 그의 통산 성적을 하향세로 잡고 계산한 것이니, 올시즌 같은 몬스터 시즌을 포함한다면 저 수치는 더해지면 더해졌지 결코 부족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3루수로서의 성적만으로도 거의 마이크 슈미트에 근접하게 되고 개인 통산 성적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3루수 단일 시즌 최고 성적까지 보유한 그가 정확성에 있어서 상당한 약점을 보인 슈미트(통산 타율 .267)를 제치고 역대 최고의 3루수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유격수로서 신화를 써나가던 그가 지금에 와서는 최고의 3루수를 운운하는데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다. 필자 역시도 아직까지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보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확실한 것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천재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항상 ‘역대 최고’ 라는 수식어가 붙은 어떠한 평가일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