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의 4대 제전 가운데 하나인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나머지는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가 한창이다. 6~70년대만큼의 인기는 없지만, 팬들에게는 미래 한국 프로야구(또는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될 선수들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하지만 매번 고교야구대회가 진행될 때면 어린 선수들의 ‘혹사’ 논란이 일곤 한다. 이번에도 일요일 경기에서 전주고 투수 장우람이 전날부터 18이닝을 이어 던지며 무려 214구를 던진 일 때문에 말들이 많다. 상대 투수인 상원고의 김민석도 7회부터 등판해 11.1이닝을 던지며 164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이제 와서 이런 일은 새삼 놀랍지도 않다. 작년에도 지금은 각각 LA 에인절스와 SK 와이번스에 입단한 정영일(진흥고)과 김광현(안산공고)이 대통령배와 청룡기 대회에서 연장까지 던지며 2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적이 있다. 올 봄에도 눈물의 역투로 야구팬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선사한 서울고의 이형종은 그 경기를 포함해 4일 동안 20이닝을 던지며 330여개의 공을 던졌다.
매번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프로출신의 감독들이 현장에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어린 선수들을 이토록 가혹하게 몰아가는 것인가.
▷ ‘혹사’가 아니라 ‘학대’다
예전 칼럼에서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투구라는 동작이 가진 일련의 매커니즘은 선수의 몸에 엄청난 무리를 가져온다. 정지된 상태에서 투수의 신체가 가진 모든 탄력을 뿜어내는 것, 이것이 투구라는 동작이다. 140킬로 이상의 공을 던질 때 소모되는 단위시간당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왜 투수들이 경기 후 아이싱(얼음찜질)을 할까. 100구 이상을 던지고 내려온 투수의 어깨는 마치 불이 난 것 같이 뜨겁다. 단지 어깨만이 아니라 팔꿈치와 등 근육, 거기에 하체까지 상당한 무리를 해야만 위력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다. 야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평소의 단련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교 야구선수라면 아직 청소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키와 장대한 체구를 자랑하기에, 충분히 성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력의 경우 단기간의 운동으로 보충할 수 있지만, 지구력은 그렇지 않다.
육상을 보더라도 세계적인 장거리 선수들은 최소한 20대 후반이거나 30대인 경우가 많다. 10대의 어린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는 것에 있어서는 20대 후반의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겠지만, 지구력은 따라가지 못한다.
때문에 근력과 지구력이 동시에 완성이 되는 20대 후반에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해 기량을 만개하는 것이다.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고교 투수들이 200개나 되는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은 ‘혹사’ 가 아니라 ‘학대’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 야구 감독의 책임감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으로 인해 투수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렸다가, 최근 타자로서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메이저리그의 릭 엔키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최근 화제다.
그가 다시금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첫 경기에서 홈런을 뿜어낸 그 순간, 3만여 관중과 함께 가장 기뻐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토니 라루사 감독이었다. 라루사 감독은 7년 전 디비전 시리즈에서 20살에 불과한 엔키엘을 1차전 선발로 등판시킨 장본인이다.
그 경기에서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이 20살의 투수는 폭투를 남발하며 다시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모든 상황이 절묘하게 어긋나며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을 뿐, 그 누구도 라루사 감독에게만 책임이 있다며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루사 감독의 마음 한 켠에는 그 사건이 크나큰 아픔으로 기억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픔을 떨치고 재기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크게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63세의 노인의 모습은 엔키엘의 재기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야구란 운동은 감독의 영향력이 그야말로 절대적인 스포츠다. 타순을 짜고 작전을 지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보다도 투수 교체 타이밍을 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감독의 역량을 파악할 때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덕목이다)
쉽게 말해, 감독이 바꾸어 주지 않는 다면 투수는 200구든 300구든 계속해서 던져야만 한다는 말이다. 투수가 그만 던지겠다고 할 수도 없다. 혹시라도 그렇게 했다가는 ‘감독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야구계에서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야구 감독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책임도 못질 혹사를 시킨 결과, 캐리 우드와 마크 프라이어라는 두 명의 천재 투수의 앞날을 부상과 재활의 고통스런 과정으로 만든 더스티 베이커(전 시카고 컵스 감독) 같은 이는 맹렬한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고교 스포츠는 또 하나의 교육
“고교 야구는 교육의 일환이야!”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리고 야구 만화까지 좋아하는 팬이라면 위의 문장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은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인 ‘H2’ 라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한 고교 감독의 대사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며 기억에 남았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 감독이라면 결코 가지지 못할, 아니 가지지 않을 신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야구의 생리’는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며 프로와 고교 야구를 혼동하곤 한다. 하지만 프로야구를 바라보듯 고교야구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정말 큰 오산이다.
고등학교는 교육기관이다. 고교에서 야구부가 존재하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체력을 단련하고 정정당당히 맞서 겨루는 시합을 통해 스포츠가 보여줄 수 있는 교육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현재 고교 야구에서, 아니 모든 고교 스포츠계를 통틀어서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임하는 관계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과연 감독들은 자신이 ‘교육자’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8강안에 들어야만 대학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팀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몇몇 재능 있는 선수들은 필요 이상의 혹사를 당하고 있다. 결코 옳지 못한 현실이다.
이러한 생각을 두고 “단지 이상론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라고 일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왜곡되어 있는 것일 뿐, 이상을 추구하고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교육자라는 자각이 없는 감독, 불합리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먹구구식 행정에 그치고 있는 협회, 체육 특기생은 마치 별천지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책임 구역(?)이 아니라는 듯 관심도 없이 지나치는 현 교육 관계자들.
의도적인 무관심 속에서 혹사당하며, 끝끝내 선수 생명까지 잃어버린 후 자신의 꿈을 허탈하게 날려버린 일부의 어린 선수들에게 그들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 진정한 프로의식
요즘 들어 갈수록 프로야구 출신의 고교 야구 감독들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야 할 ‘프로의식’을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감독으로서 역할의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이어나갈 기나긴 야구 인생을 남긴 학생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시기들을 위해 참고 인내 하는 법도 가르쳐야만 한다. 100구의 공을 던졌다면,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더라도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한다.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만이 자기 발전의 원동력은 아니다. 긴장을 풀어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등, 자신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런 상태에서의 시합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후의 야구 인생에서 더 큰 재산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고교 야구 감독이 가르쳐야할 부분이며, 그런 생각이 자신들이 가져야할 고교 야구 감독으로서의 프로의식이 아닐까. 공부 안하는 학생을 공부하게끔 만드는 것도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잠도 자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이 있다면 그것을 말리는 것 또한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이다.
승부라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고교야구의 덕목이 아니다. 그것은 프로에 입단한 뒤 배워도 충분하다. 승리를 위해 200구 이상의 가혹한 투구를 바라보고 있는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로 저 투혼이 어린 선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 자신의 명성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