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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베켓과 싸바시아 그리고 사이영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5.


[카이져의 야구스페셜]


지난 1995년 20승에 도달했던 LG의 이상훈은 25홈런으로 당시 홈런왕에 올랐던 OB(현 두산)의 김상호에게 시즌 MVP를 내주고 말았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상훈의 차지가 확실해 보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체력의 한계를 노출하며 롯데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MVP는 그의 품을 떠나 소속팀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김상호에게로 갔다.


이는 MVP투표를 포스트 시즌이 모두 종료된 후에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포스트 시즌에서의 기여도가 정규시즌의 성적에 더해져서 MVP 투표에 녹아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MVP와 사이영상 등의 중요한 개인상은 정규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비밀리에 투표를 마친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시리즈는 각각 따로 시리즈 MVP를 시상하기 때문에. 정규시즌의 성적을 토대로 뽑는 상에 포스트 시즌의 결과가 반영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월드시리즈가 끝난 뒤에서야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하나씩 발표를 하게 된다. 결과가 미리 발표되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7년도의 MVP와 사이영상의 주인공은 이미 가려져있는 상태다. 단지 발표가 되지 않았을 뿐, 수상의 영광을 누릴 선수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올해 포스트 시즌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아메리칸 사이영상 구도를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 2007 사이영상 레이스


 

베켓

싸바시아

카모나

랙키

경기

30

34

32

33

20

19

19

19

7

7

8

9

투구이닝

200.2

241

215

224

방어율

3.27

3.21

3.06

3.01

QS

20

25

26

24

탈삼진

194

209

137

179

완투

1

4

2

2

완봉

0

1

1

2

삼진/9

8.7

7.8

5.7

7.2

볼넷/9

1.8

1.4

2.6

2.1


위의 표는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후보 4인방의 성적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다승 부문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자쉬 베켓이 단독 1위로 앞서있다. 하지만 다승과 9이닝 당 삼진 부문에서만 우위를 보일 뿐, 출장 경기 수, 투구이닝, 방어율, 퀄리티 스타트 회수, 거기에 에이스급 선발 투수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완투-완봉까지 4명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장 강력한 후보인 C.C. 싸바시아는 제쳐두고라도 파우스토 카모나와 존 랙키와의 비교에서도 쉽사리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도 퀄리티 스타트(6이닝 3자책이하)가 20번에 불과한데도 20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타선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게임당 득점 지원 6.59점, ML 4위)


반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에이스 싸바시아는 다른 3명과의 비교에서 단 한 가지도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 없으며, 5개 부문에서 우위를 차지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241이닝이라는 투구 이닝은 베켓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


앞서 밝혔던 것처럼 이미 수상자는 결정이 났고, 일반적인 예상대로라면 싸바시아의 수상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인다. 물론 이변의 가능성도 있지만 과거의 전례를 돌아봤을 때 1승의 우위를 앞세운 베켓이 투구 이닝에서 40이닝 이상 앞선 싸바시아를 이기기란 힘들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4명의 후보가 모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베켓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싸바시아와 카모나, 그리고 이미 탈락한 LA 엔젤스의 존 랙키까지. 거기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베켓과 싸바시아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2번의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 싸바시아의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


위의 표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싸바시아가 올 시즌 241이닝을 던지면서 허용한 볼넷은 겨우 37개에 불과하다. 5.65에 달하는 삼진/볼넷 비율은 80이닝 이상 던진 175명의 투수들 중 가장 뛰어난 수치다.


2001년 데뷔 당시만 해도 95개(180이닝)나 되는 볼넷을 허용했던 싸바시아는 이후 제구력 부분에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2004년에는 72개 재작년과 작년에는 각각 62개, 44개로 줄이더니,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올해 가장 적은 볼넷을 내주는 기염을 토하며 단번에 사이영상 후보로 떠올랐다.


그런 싸바시아였기에 이번 2007년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주는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는 참으로 의외다.


연도

경기

이닝

안타

자책

볼넷

삼진

결과

비고

2001

ALDS 3차전

6

6

2

5

5

 

2007

ALDS 1차전

5

4

3

6

5

 

ALCS 1차전

4.1

7

8

5

3

 

15.1

17

13

16

13

2승 1패 방어율 7.63


신인 시절이던 2001년 디비즌 시리즈에서의 5볼넷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6년이 지나 사이영상 후보(또는 잠정적인 수상 확정자)로서 맞이하는 올해의 포스트 시즌에서 9.1이닝 동안 무려 11개의 볼넷을 허용했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11볼넷은 싸바시아가 5월과 6월의 13경기(95이닝)에서 허용했던 볼넷보다도 2개가 많다.


또 다른 19승 투수인 뉴욕 양키스의 왕첸밍과의 맞대결에서는 7개의 사사구(힛 바이 피치 1 포함)를 허용하면서도 겨우겨우 막아 승리를 따냈지만, 라이벌 자쉬 베켓과의 맞대결에서는 결국 그 볼넷이 원인이 되어 대량실점하면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5차전에서 확실한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사이영상 수상자로 발표된다 하더라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부활 여부는 시리즈의 승패와 직결됨과 동시에 스스로의 자존심 회복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할 전망이다.



▷ 자쉬 베켓 - 새로운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


베켓이 지난 2003년 플로리다 마린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시리즈 MVP를 수상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직은 ‘미완의 대기’에 불과했던 ‘깜짝 스타’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베켓은 전통의 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로 성장했고, 그런 그의 활약은 팀 성적에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연도

경기

이닝

안타

자책

볼넷

삼진

결과

비고

2003

NLDS 1차전

7

2

1

5

9

 

NLCS 1차전

6.1

8

6

1

5

 

 

NLCS 5차전

9

2

0

1

11

 

NLCS 7차전

4

1

1

0

3

홀드

이틀 휴식후 구원등판

WS 3차전

7.1

3

2

3

10

 

WS 6차전

9

5

0

2

9

3일 휴식후 선발등판

2007

ALDS 1차전

9

4

0

0

8

 

ALCS 1차전

6

4

2

0

7

 

57.2

29

12

12

62

4승 2패 방어율 1.87


베켓의 포스트 시즌 성적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정규 시즌의 166번의 선발 등판에서 2번 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완봉승을 포스트 시즌에서만 3번이나 해냈다. 특히 2003년 월드시리즈 6차전은 3일 휴식 후 4일 만의 선발 등판에서 이루어낸 값진 완봉승이었다.


이번 디비즌 시리즈 1차전에서도 또 다른 사이영상 후보인 존 랙키와의 맞대결을 포스트 시즌 2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장식한 베켓은 챔프전에서는 싸바시아마저 꺾으며 포스트 시즌 최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현역 선수 중 유난히 포스트 시즌에서 강한 면모를 과시한 선발 투수로는 17경기에 등판해 9승 2패 2.2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팀 동료 커트 쉴링과 40번의 등판(선발 등판 27회)에서 2.65의 방어율로 15승 4패 4세이브를 거둔 존 스몰츠(애틀란타 브레이브스)가 손에 꼽힌다.


베켓은 그들이 지나왔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며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사이영상은 싸바시아에게 빼앗길지 모르지만, 포스트 시즌에서의 이와 같은 활약은 팬들로 하여금 베켓이야 말로 2007년 최고의 투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메이저리그 관례에 따라 MVP와 사이영상은 정규 시즌 성적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처럼 유난히 사이영상 레이스가 치열한 시기에, 가장 유력한 두 투수가 포스트 시즌에서 그 명암이 갈리고 보니,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게 된다.


아직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는 금요일(19일) 아침, 두 투수는 다시 한 번 맞대결을 펼친다. 이번이 최후의 승부가 될 것이고, 그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이 결국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연 싸바시아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두 투수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한 판 승부가 참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