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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MLB Stories

박찬호는 필라델피아에서 선발로 부활할 수 있을까?

by 카이져 김홍석 2008. 12. 16.

2009년에 뛸 팀을 찾던 박찬호의 선택은 2008년 월드시리즈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내년에도 우승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박찬호가 필리스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메이저리그의 30개 구단 가운데 선발투수 박찬호를 원했던 유일한 팀이 필라델피아였기 때문이다. 선발만을 고집했던 박찬호에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없었다.


▶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는 3명의 확고부동한 선발투수가 있다. 월드시리즈 MVP에 빛나는 좌완 에이스 콜 하멜스(14승 10패 3.09)브렛 마이어스(10승 13패 4.55), 조 블랜튼(9승 12패 4.69)이 바로 그들이다.


2년 만에 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한 하멜스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좋은 투수다. 2007년 마무리로 변신했다가 다시금 선발로 돌아온 마이어스는 전반기에는 3승 9패 5.84로 부진했지만, 선발로서의 감각을 회복한 후반기에는 7승 4패 3.06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다. 조 블랜튼은 올해는 다소 부진했지만 2006년에는 16승, 2007년 14승을 거뒀던 선수다. 이들은 내년 스프링 캠프나 시범경기에서의 성적과 관계없이 선발 확정이다.


아직 그 주인공이 가려지지 않은 선발 로테이션은 두 자리, 그 중 한 자리는 현재 필리스가 총력을 기울여 붙잡으려고 하는 노장 제이미 모이어(16승 7패 3.71)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이면 47세가 되는 모이어는 올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공헌(7월 이후 9승 1패 3.28)을 했다. 계약 금액을 놓고 약간의 의견차가 있지만, 조만간 합의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이 글을 마무리할 때쯤 모이어와의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럼 남은 것은 5선발 한 자리, 박찬호는 이 자리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물론 상황은 1년 전보다 훨씬 좋다. 초청선수 자격으로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당시의 박찬호는 선발 투수는커녕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야할 상황이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선발 가능성’을 운운하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찬호의 연봉은 250만 달러. 옵션까지 모두 합치면 500만 달러에 달한다. 필리스 입장에서도 ‘최악의 경우’ 구원투수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만하면 적지 않은 투자이기에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더욱 높게 보고 있을 것이다. 필리스는 ‘복권’으로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할 수 있는 뉴욕 양키스와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올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의 길을 활짝 열었던 채드 더빈(2.87)-라이언 매드슨(3.05)-클레이 콘드리(3.26)라는 우완 셋업맨 3인방이 건재하다. 마무리 브래드 릿지(2승 41세이브 1.95)도 오른손 투수다. 이런 상황에서 250만 달러짜리 (그것도 내년이면 36살이 되는) 우완 구원투수의 영입은 단장에게 ‘바보(또는 멍청이)’라는 별명을 선물할 뿐이다. 즉, 적어도 현 시점에서 필리스는 박찬호를 5선발 요원 1순위로 생각하고 영입했다는 말이 된다.


▶ 5선발을 다툴 경쟁자는?

필리스에는 관계자와 팬들의 두통을 유발하는 말썽꾸러기가 한 명 있다. 3년간 2451만 달러의 거액을 들여 영입했지만 지난해(10승 10패 6.29)에 이어 2008년까지 4승 8패 5.80의 처참한 성적으로 무너저 내린 아담 이튼(31)이라는 선수다. 한 때는 꽤나 촉망받는 선발 유망주였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계륵’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필리스는 이미 스토브리그의 시작과 동시에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이튼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면서, 필요하다면 연봉 보조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어떻게든 내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설령 남아 있다 하더라도 박찬호의 경쟁자는 아니다. 그는 이미 모든 신뢰를 잃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내년에 3년차가 되는 카일 켄드릭(24)이다. 2007년에 단 20경기에서 10승(4패 3.87)을 거둬, 팀이 기적같이 뉴욕 메츠를 따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며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신예다.


하지만 올해는 5이닝 피처로 전락하며 31경기(30선발)에서 고작 155.2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팀 타선의 도움을 얻어 11승(9패)을 챙겼지만 평균자책점은 5.49로 매우 나빴다. 특히 8월에는 6.08, 9월에는 14.81로 평균자책점이 수직상승하는 바람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투구 패턴이 읽혔을 가능성이 큰 터라, 당장 내년에 재기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 외에 경쟁자가 될 만한 선수는 팀 내 유망주 랭킹 1위인 카를로스 카라스코(21)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잠시 경력을 쌓은 J.A. 햅(26) 정도가 있다. 카라스코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전혀 없으며 올해 후반기에 되어서야 트리플 A로 올라간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선수다. 더군다나 ‘특급 유망주’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올해 박찬호의 팀 동료였던 클레이튼 커쇼와는 그 레벨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봐도 된다. 그보다 순위가 낮은 데다 나이까지 많은 햅은 말할 것도 없다. 박찬호가 스프링캠프에서 완전히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이들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최고의 마무리와 막강 팀 타선

박찬호가 선발 투수 보직을 확정지을 수만 있다면 필리스라는 팀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팀이다. 이 팀에는 2008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와 홈런왕이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 브래드 릿지는 올해 정규시즌에서 맞이한 41번의 세이브찬스를 100% 성공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과시했다. 포스트시즌 7세이브까지 합치면 48세이브 0블론, 그야말로 ‘퍼펙트 클로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우완 셋업맨들과 더불어 좌완 스페셜리스트인 J.C. 로메로(2.75)의 존재도 든든하다. 적어도 어지간해서는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온 박찬호의 승리가 날아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필리스는 며칠 전 외야수 라울 이바네즈(23홈런 110타점 .293)를 영입했다. 이바네즈는 FA로 풀린 팻 버렐(33홈런 86타점 .250)을 대신해 라이언 하워드(48홈런 146타점), 채이스 어틀리(33홈런 104타점 .292)와 막강 3-4-5번을 형성할 전망이다. 이들은 모두 좌타자로, 필리스를 상대해야 하는 우완 선발투수들에게 ‘악몽’ 그 자체다.


또한 지미 롤린스(47도루 .277)쉐인 빅토리노(36도루 .293)라는 두 명의 스위치 타자로 이루어진 테이블세터진도 메이저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다. 제이슨 워스(24홈런 67타점), 페드로 펠리즈(14홈런 58타점) 등의 하위 타선도 수준급. 필라델피아는 올해 내셔널리그에서 시카고 컵스(855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점수(799점)를 뽑았고, 그것은 내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36살이 될 박찬호가 선발투수로서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는 6이닝 3실점 정도라고 볼 수 있다. 5선발 자리를 확정 짓고 30경기에 등판해 180이닝을 던지고 4.50 정도의 평균자책점만 기록할 수만 있다면 무난히 12승 이상이 예상될 정도로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게 된다.


▶ 불안 요소는?

물론 낙관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박찬호는 투수에게 유리하고 특히 자기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다저스타디움을 떠나야 하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필라델피아의 홈 구장인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비교적 타자에게 유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구장에서 어떻게 적응에 성공하느냐가 선발 투수로의 재기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두 번째 난관은 같은 지구에 속해 있는 팀들의 강타선이다. 뉴욕 메츠는 필리스와 더불어 리그 득점 공동 2위(799점)에 오른 팀이다. 5위의 플로리다 말린스(770점)와 6위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753점)까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는 서부지구 최고의 타격 팀인 콜로라도(747점)를 능가하는 팀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만만한 팀은 워싱턴 내셔널스(641점) 정돈데, 이 팀도 내년 시즌 상당한 전력 보강(현재 마크 테세이라에게 8년간 1억 6000만 달러 제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리스의 날씨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태평양 연안에 있는 LA에 비해 훨씬 겨울이 길고 추위가 빨리 찾아온다. 지금껏 박찬호가 뛰었던 팀들은 뉴욕을 제외하면 LA나 센디에이고처럼 남부 연안의 푸근한 기후거나, 텍사스처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었다. 변화된 기후에 무사히 적응하는 것은 가족이 있는 LA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팀을 옮긴 박찬호가 정신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행을 택했고, 이는 최상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남은 것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5선발 보직을 확정짓고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뿐.


2008년 구원투수로서 재기에 성공해 고국의 팬들에게 다시금 희망을 안겨준 박찬호가 2009년에는 그토록 염원하던 선발투수로도 재기에 성공하여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