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남의 미국 진출과 관련되어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상 오늘(21일)까지도 롯데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도 사라지고 만다.
이 과정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팬들로부터의 너무나도 심한 반발과 비난에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롯데가 잘못한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와 개인이 이해관계로 얽히게 되면 때면, 심정적으로 개인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롯데와 최향남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지금부터 이 사건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살펴보자.
“롯데라는 인기 구단이 고작 3만불이 아까워서 최향남을 보내주지 않느냐?”
바로 이것이 지금 현재 롯데가 비난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최향남이 이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마이너계약을 성사직전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롯데는 포스팅시스템이라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흘러나온 말이 2년전 롯데가 최향남을 영입할 때 클리블랜드 측에 3만불을 이적료로 지금했다는 말이었다.
자,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점이 무엇일까? 우선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1. 최향남은 FA가 아니다.
최향남은 KBO의 규정상 3일이 모자랐기 때문에,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취득하는데 실패했다. 즉, 그는 여전히 규정상으로 롯데 소속이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른 구단들과의 협상 등을 진행해서는 곤란하다.
롯데는 시즌이 끝난 후 최향남의 윈터리그 참가를 허락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팀과의 협상까지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엄연한 ‘규정위반’이다. 최향남이 한국 프로야구의 규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일을 진행시킨 것이다. 롯데로서는 소위 ‘뒤통수를 맞은 격’이나 다름없다.
최향남이 애당초 FA 신분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FA 자격을 획득한 김동주가 일본으로 진출하겠다며 다소 돌출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KBO에서는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왜냐면 김동주는 자신의 노력과 고생으로 취득한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향남은 그렇지 못하다. 단 3일이라고 해도 규정은 규정이다. 규정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행동으로 피해를 입힌 것은 롯데가 아니라 최향남 자신이다. ‘해외 진출을 시도하게 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그가 FA 자격을 획득했거나,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가 먼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무단으로 타구단과의 협상을 진행해 놓은 상황에서, 롯데보고 약속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적어도 모두가 인정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더라면, 롯데 측에 충분한 설명을 한 상황에서 일이 진행되었어야 했다. 아무리 자신의 평생 꿈을 이루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규정까지 무시하면서 이루어지는 형태이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2. 포스팅시스템 도입은 당연한 절차다
롯데가 포스팅시스템을 실행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이적료가 아까워서 저런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롯데 정도의 구단이 얼마 되지도 않을 돈이 아까워서 그랬을까? 겨우 1년 전에 최향남에게 걸려 있던 8천만원의 마이너스 옵션을 배려 차원에서 실행하지 않았던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포스팅시스템 역시도 규정이다. FA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선수가 미국 무대에 진출할 때면, 이러한 절차를 밟아서 30개 구단 모두에게 기회를 주게 되어 있는 것이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KBO의 협약 내용이자 공식적인 절차다. 단지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이러한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방법은 롯데가 최향남을 조건 없이 FA로 풀어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 사정이 어떻건 간에 ‘규정을 벗어난 선례’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그것은 언젠가 족쇄가 되어 선수와 구단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3일이 결국 30일이 되고 나아가서는 3년이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향남이 이 정도로 이슈가 될 정도라면, 한국 야구에서 5년 연속 40홈런을 치거나 5년 연속 15승을 한 최고 인기 투수가 FA를 3년이나 앞둔 상황에서 ‘조건 없이 미국에 보내달라’라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를 시작하면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롯데가 최향남과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을 인정해주었다면 그것이야 말로 ‘규정 위반’이다.
3. 롯데는 바보가 아니다
최향남이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롯데가 포스팅시스템을 실행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야구팬들은 분노했다. 롯데를 향한 비난의 여론은 활활 타오르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결국 포스팅시스템 실행을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욕먹을 건 뻔한 일이었다. 고작 3만 달러 따위가 아까웠을 리도 없다. 괜히 이적료를 아까워한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최향남을 아무런 조건 없이 놓아주었다면 ‘쿨(cool)하다’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롯데는 그러지 않았다. 롯데라는 구단은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과거에 실수를 하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했다 해도, 이 문제에 대해서 그 정도 여파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언급한 바와 동일하다. 그것이 바로 ‘규정의 올바른 적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롯데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마땅히 취해야할 올바른 선택을 했다. 단지 그것이 팬들의 감정적인 코드와 맞지 않아서 욕을 먹고 있을 뿐이다.
어떤 부모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번 시험에서 90점 받으면 장난감 로봇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한데 아들은 아쉽게도 87점을 받았다. 부모는 이 아들에게 장난감을 사줄까 말까를 놓고 고민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장난감 가게에서 그 로봇을 들고 오면서, “외상으로 들고 왔으니까 엄마 아빠가 계산해 주세요, 비록 3점 모자랐지만 난 시험 잘 쳤으니까 이거 상으로 받을 자격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
지금 최향남과 롯데가 처한 상황이 이와 동일하다. 장난감(계약)을 외상으로 사들고 온 아들(최향남)은 자신의 아버지가 ‘안 돼’라고 말하자 주저앉아서 울며 떼를 쓰고 있다. 자신이 90점을 넘지 못했다는 것도, 스스로에게 정당한 권리가 없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개인적으로는 최향남의 미국 진출을 응원하고, 또한 그의 도전을 향해 기립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노장의 이와 같은 투혼을 필자가 얼마나 높이 사는 지는 그 동안 MLBspecial의 포스팅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그 도전과 꿈이 규정을 무시한 채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마도 이 글을 놓고도 많은 야구팬들의 질타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문제이든 한 쪽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최향남의 입장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롯데의 입장도 있는 것이다.
롯데가 최향남에 대한 보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그들의 권리다. 물론 그 권리를 포기했다면 팬들은 롯데를 향해 박수를 쳐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좋지 않은 선례’라는 것은 분명하며, ‘개인의 꿈’ 만큼이나 ‘팀의 꿈’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봤을 때, 그 누구도 롯데에게 그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약자의 편을 들고 싶은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싸움이 약자의 실수로 비롯된 것이라면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은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복잡하고 가슴 아프게 얽힌 문제이긴 하지만... 이 싸움... 최향남에게는 정당한 명분이 없다.
[사진출처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PS. 개인적으로도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습니다. 성격 급한 팬들은 글도 제대로 읽지 않고 대놓고 욕부터 하실 것 같아서요... 하지만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그리고 '규정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는 소신에 따라 글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먹구구식 운영'이야말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니까요.)
// 김홍석(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