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라는 말은 원래 민족이나 국민의 일부가 오래 거주하던 땅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건설한 사회를 뜻하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외국에 종속하여 외국으로부터 착취를 당하는 지역이란 뜻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후자의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당시 주요 열강들의 권력 과시, 혹은 세력 확장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천 번이나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이웃하고 있었음에도 나라를 잃는 수모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는데,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을 외국에 빼앗기는 기막힌 일로 20세기를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힘 있는 나라가 남의 나라를 빼앗는 것이 당연시되는 제국주의 시대이긴 했지만, 수천 년간 중국에도 당하지 않은 수모를 안겨준 일본에게 우리나라 국민의 감정이 보통 이웃 나라 대하듯 쉽게 풀어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그 국민성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합병’이라는 치명적인 처방을 내리지 않았을 터인데, 이는 모두 일본의 국제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잘못 알고 쓰는 야구용어에 대한 단상
35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그 시기가 무서웠던 것은 해방 이후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못한 일제의 잔재 때문이었다. 소위 ‘문화정치’나 ‘민족 말살 정책’은 ‘우리 것’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이는 스포츠 분야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특히, 야구계 원로나 프로야구 원년 야구선수들을 만날 때면 아직까지 일본에서 유래한 야구용어를 쓰는 경우가 많아 그 안타까움이 적지 않았다. 그나마 허구연씨 등 일부 ‘야구전문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미국식 야구용어’를 우리나라에 맞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프로야구 초창기 잘못 사용되고 있는 야구용어를 재정립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잘못된 야구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일제의 잔재’로 남아 있는 용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크게 잘못 알고 쓰는 용어를 이제부터라도 ‘순화’시켜 사용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이미 방송국에서도 ‘상상 우리말 더하기(KBS)’를 비롯하여 한글을 사랑하고 올바로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하고 있다. 이제는 야구계도 과거 프로야구 초창기의 허구연씨가 그러한 노력을 하셨듯이 우리도 ‘잘못 알고 쓰는 야구용어’를 많이 순화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야구 역사를 정립해 오신 선배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다.
잘못 알고 쓰는 야구용어 사례
19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중파를 통한 프로야구 중계방송이 많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리고 보통 주말 오후 5시, 평일 오후 9시만 되면 아나운서가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끝까지 해 드리지 못합니다”라는, 익숙한 멘트를 들을 수 있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들을 수 있었던 당시 아나운서의 중계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보자.
“1사에 런너 1, 2루. 타석에는 3번타자 마동탁. 피차 구영탄. 제 1구 던졌습니다. 아! 데드볼! 허벅지에 맞았습니다. 절뚝거리며 1루로 향하는 마동탁. 별로 아프지 않은 듯 대수롭지 않은 표정입니다. 이로써 1사 만루. 타석에는 4번타자 설까치. 피차 구영탄. 제 1구 던졌습니다. 설까지 쳤습니다! 아 큽니다! 커요! 호므랑! 호므랑입니다 호므랑! 아 대단하네요. 3루주자 홈인! 2루주자 홈인! 1루주자 홈인! 타자주자도 홈인! 만루 호므랑이 터졌습니다”
왕년의 야구팬들이라면 위의 멘트가 친근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아나운서가 위와 같이 중계방송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중계로 많은 유명세를 치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나운서가 잘 못 쓰인 두 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난하게 중계를 마쳤다. 그렇다면 그때 당시 아나운서가 실수했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투수를 ‘피차(Pitcher)’라고 한 것이나 주자를 ‘런너(Runner)’라고 표현한 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영단어를 그대로 썼으니 ‘투수’나 ‘주자’라는 표현에 비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데드 볼(Dead ball)’은 ‘몸에 맞는 공’을 지칭하는 일본식 용어다. 원래는 ‘볼 데드(Ball dead : 심판원의 타임 선언이나 정해진 규칙에 의해 경기가 일시 정지된 상태.)’ 상황에서 투구가 규정된 타격 자세에 있는 타자의 몸 또는 옷에 닿았을 경우 타자 주자에게 1루 진루를 허용한다는 데에서 생긴 용어를 일본에서 ‘데드 볼’로 바꾼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어는 Hit by Pitched Ball로써, 번역하면 ‘몸에 맞는 공’이 올바른 표현이다.
또 하나 틀린 점은 바로 ‘전형적인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된 ‘호므랑(ホームラン)’이라는 표현이다. ‘홈런(Home Run)’ 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라디오 중계방송에서는 “호므랑을 맞을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홈런’의 일본식 발음임을 인지하고 있다면 빨리 고쳐야 할 부분이다.
▲ 한국인 2세인 ‘최현(미국명 행크 콩거 현 초이)’은 거포로써 많은 ‘홈런’을 기록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모르는 사이에 잘 못 쓰고 있는 야구용어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더라도 마니아들이나 야구팬들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잘못 쓰고있는 야구용어’가 적지 않다. 이들을 모아 몇 개의 문장을 만들어 보자.
“LG 트윈스의 안치용 선수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첫 번째 타석에서 직구를 노리고 들어 온 안치용은 홈런을 기록했고, 이어 안타, 3루타, 2루타를 나란히 기록하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편 이날 경기에서 용병 가르시아 또한 전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우즈 이후 최고의 용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얼핏 보면 전혀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상이 없어 보이는’ 제시문에도 세 가지 잘 못 사용된 용어가 있다. 먼저 ‘사이클링 히트’는 각종 언론사를 포함하여 많은 야구팬들이 잘 못 쓰고 있는 표현 중 하나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며,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역시 일본의 야구용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정확한 원어 표기는 ‘Hit for the cycle(한 타자가 한 경기에서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것을 의미)’이며, 간단하게 ‘사이클’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 ‘해트트릭(Hat trick)’이 있다. 비단 축구뿐만이 아니라 아이스하키를 비롯하여 야구에서도 쓰이는 단어인 셈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빠른 볼(Fast ball)을 ‘직구’라고 표현하는데, 직구는 볼의 변화 없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평범한 볼을 의미한다. 그러나 빠른 볼도 엄연히 ‘볼의 변화’가 존재하는 만큼 직구가 아니다. 또한 빠른 볼에는 종류도 많다. 가장 구속이 빠르다는 ‘포심 패스트볼(Four seam fast ball)’은 투수가 검지와 중지로 공의 4군데 실밥을 모두 가로질러 잡고 있는 힘껏 던지는 방법이 일반적이며, 구속은 다소 떨어지지만 볼의 변화가 심한 ‘투심(Two seam) 패스트볼’을 비롯하여 ‘컷 패스트볼(일명 Cutter)’, ‘스플리터(Splitter)’등이 있다. 따라서 ‘직구’라는 표현보다는 ‘속구’ 또는 ‘빠른 볼’이라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 박찬호 선수는 ‘투심 패스트볼’과 ‘포심 패스트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프로구단과 계약을 맺고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를 일컬어 ‘용병’이라고 하는데, 이는 ‘주종관계’와 ‘계약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단어다. 군대용어인 ‘용병(mercenary)’은 충성심이나 자질상의 문제 외에도 금전에 의해서 고용되는, 성격상 급료나 기타의 계약조건에 따라 아군이나 적군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소속을 바꾸고, 주로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자주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도 구단의 팀원임을 인정하고, ‘함께 간다’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용병 가르시아’보다는 ‘외국인 선수 가르시아’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 곳이 미국이라면 ‘용병’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다. 그 곳은 계약관계로써 인간관계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특성상 단순히 계약관계만으로 인간관계를 끝낸다는 것은 삭막한 일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외국인 선수’라고 불러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시나브로’ 사용하는 야구용어, 이제는 ‘시나브로’ 고쳐야 할 때
‘시나브로’라는 단어는 순수 우리말로써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라는 뜻이다. 이는 야구를 즐겨 보는 마니아들에게 필요한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나브로’ 사용하는 오용단어를 이제부터라도 ‘시나브로’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본고에서 찾지 못한, 일본어의 잔재가 담긴 야구용어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용어들도 ‘시나브로’ 찾아내어 ‘시나브로’ 고쳐 써야 하는 것이 야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본다. 그러한 노력이 가시화 될 때 야구판 ‘상상 더하기’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사진 = 허구연(C) MBC ESPN 공식 홈페이지,
최현/박찬호(C) 홍순국의 MLBphotograph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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