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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Sports

김연아... 또 하나의 ‘성역’이 되지 않기를...

by 카이져 김홍석 2009. 2. 25.


요즘은 어딜 가나 김연아 때문에 난리다.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는 피겨에서부터 시작해, 노래를 한 불러도 포털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 TV에 출연하면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광고를 찍는 것 가지고도 말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 스타의 광고 촬영을 매우 반기는 편이다. 애당초 스포츠라는 건 그 자체로 물질적인 생산력을 가지지 않는다. 스포츠라는 것은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이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과 그 결과로 보여지는 결정체로 하여금 팬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물하는 정신적인 가치를 생산한다.


즉, 스포츠 선수는 그러한 추상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추상적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광고인 것이다. 김연아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해 만든 가치를 가지고 광고 모델로 나서고, 그로 인해 모델료를 받는 것은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김연아의 목표가 올림픽 금메달이냐 돈이냐며 광고 촬영을 절제하기를 충고하는 칼럼이 문제가 되고 있다. 글을 쓰신 분에게 되묻고 싶은 것은 한 가지. 김연아가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느냐이다.


시장에서 과일 파는 아주머니의 최종 목표는 ‘소비자에게 맛있는 과일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직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돈’이다.


막말로 올림픽 금메달 따고 매달 연금 100만원씩만 받고 살래, 아니면 금메달 못 따더라도 인기가 올랐을 때 광고로 50억 벌래? 라고 물으면 그 답은 뻔 한 것이 아닌가. 설마 이제 갓 20살이 된 소녀에게 ‘국가를 위해 개인의 영달과 부를 포기하고 훈련에만 매진하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김연아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겠지만 그 금메달이라는 것이 ‘돈’이라는 부가가치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이후의 김연아의 인생에 있어서 ‘과거의 찬란한 영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생활고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설령 김연아가 광고 찍는 것에 정신이 팔려 훈련에 소홀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던가? 김연아는 국민들의 대리 만족을 위해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일을 겪다보면서 드는 생각은 김연아가 또 하나의 ‘성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연예 기자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두 명의 ‘성역’이 존재했다.


하나는 ‘문화 대통령’ 서태지였고, 다른 한 명은 메이저리그의 ‘코리안특급’ 박찬호였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이들을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만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명에 대한 네티즌과 팬들의 반응은 격렬했던 것이다.


이후 박지성과 박태환이 비슷한 길을 걷는 듯 했으나, 아직까지는 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긴 어렵다. 현재 과거의 그 두 명이 가졌던 위상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것은 분명 김연아다.


그리고 이러한 ‘성역화’는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절대의 성역’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곪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역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난은 물론이고 비판도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성역의 주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자체가 성역 안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김연아 선수의 연기 방향에 대해 일침을 가한 모 교수에 대한 김연아 팬들의 반응과 이번 칼럼에 대한 반응. 겉에서 보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격렬하다. 이런 식이면 김연아에게는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충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까 그러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체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의 기준은 무엇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또한 그러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미니홈피가 욕설로 도배되고, 관련 기사의 댓글에 악플만이 가득한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서태지는 더 이상 과거의 성역의 주인이 아니다. 박찬호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서태지가 누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으며, 박찬호를 두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악의 먹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성역이 무너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 서태지와 박찬호는 여전히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안티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안티팬의 상당수는 ‘성역화’에 대한 반작용에 의해 안티가 된 경우다. 즉,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의 팬들이 만들어 버린 너무나도 높은 성벽에 실망한 이들이라는 말이다.


지난해 박찬호가 오랜만에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1루수 제임스 로니가 실책성 플레이를 한 적이 있다. 덕분에 미니홈피에서 ‘Loney’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사람의 미니홈피가 융단폭격을 당한 적이 있다. 성역 속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는 분풀이 할 상대가 필했고, ‘집단행동’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말도 안 되는 촌극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것을 지켜보는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그 팬들로 인해 박찬호라는 선수에게 악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에는 제대로 된 비판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김연아 선수의 팬들도 그러한 소식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그로 인해 잘 모르는 대중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깨놓고 말해 네티즌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90%는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애당초 비판이나 충고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비판에 대응하는 태도가 ‘자기만족’과 ‘분풀이’를 위해 욕설과 악플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한국은 제대로 된 비판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것 만큼이나, ‘제대로 된 팬 문화’도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바른 팬 문화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악플을 달고 미니홈피를 폭격하는 것은 그 방향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반응은 오히려 김연아의 안티팬을 만들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는 김연아를 모르는 이들도 있고, 그녀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으며, 어떤 이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쁘고 착하며, 항상 노력하는 김연아이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이 다양성이다. 김연아 보고 ‘잘난 척해서 재수 없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거기다 대놓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올바른 행동은 아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 다른 것이다. 김연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또한 김연아에게 쓴 소리를 하는 이들 역시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이지 그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준은 그 누구도 함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연아가 또 하나의 성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쓴 소리든 충고든 그것을 받아들일 지의 여부는 김연아 스스로가 정하면 된다. 팬들이 나서서 욕설과 악플을 무기로 그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바람직한 팬 문화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지만 아무도 침투할 수 없는 성역을 만드는 주체는 스타가 아니라 그 팬들이었다. 일부라고 국한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언제까지나 김연아는 친근한 여동생 같은 이미지로 남기를 바래본다. 너무나도 높은 성에 홀로 고고하게 거하는 공주님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좀 더 편하게 일상생활에서 친구와의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그러한 김연아가 나는 더 좋으니까...



PS. 워낙에 민감할 수도 있는 글이라 몇 마디 남깁니다.

하나, 나는 절!대!로! 김연아의 안티가 아닙니다.(궁금하면 이 블로그에서 '김연아'를 검색해보시길)

둘, 이 글은 김연아의 팬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에게 향한 글이 아닙니다. 특별히 ‘악플과 욕설을 무기로 김연아를 성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겨냥한 것임을 확실히 알아주길 바랍니다.

셋, 윗글에 대한 반론 또는 비판은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비난 혹은 욕설은 무조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