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진의 꽃 보다 야구

WBC 국가대표팀,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5.


텍사스 레인저스의 2004년은 '변혁(變革)'의 한 해였다.

오프시즌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즈를 뉴욕 양키스로 보내면서 알폰소 소리아노를 데리고 오는 '블록버스터'를 감행한 것을 비롯하여 팀의 노장들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이반 로드리게즈를 포함하여 후안 곤잘레스, 라파엘 팔메이로, 러스티 그리어가 팀을 떠났다.

이는 분명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큰 손실인 것처럼 보였다. 특히, 당시까지만 해도 만 30세가 되지 않은 영건들이 내야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텍사스의 불안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텍사스의 패기는 2004년 내내 빛났다. 한때 지구선두였던 이들은 시즌 막판까지 선두 경쟁을 이어가며,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3루수 행크 블레이락, 유격수 마이클 영, 2루수 알폰소 소리아노, 1루수 마크 텍세이라 등 '천만 달러의 내야진(개인당 연봉 1천만 달러도 아깝지 않은 선수임을 의미)'으로 불렸던 이들은 시즌 종료까지 주가를 높였다. 특히, 유격수 마이클 영, 3루수 행크 블레이락은 구단으로부터 장기계약을 선물받기도 했다.

2004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2009년 WBC 국가대표팀의 사정도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많은 베테랑 선수들을 떠나보내고도 텍사스가 당시 지구 3위,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했던 것도 빈틈없는 내야진을 포함하여 제럴드 레어드(포수), 케빈 멘치, 렌스 닉스, 라몬 니바르(이상 외야수) 등 젊은 선수들이 폭발한 데에 있다.

국가대표팀 역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박찬호(필라델피아 필리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 김동주(두산 베어스), 박진만(삼성 라이온스) 등이 부상 및 대표팀 참가 고사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대신 김광현을 필두로 정근우, 최정(이상 SK 와이번스), 고영민, 이종욱(이상 두산 베어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류현진, 김태균(한화 이글스),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뽑혔다. 이들 모두 만 30세 미만의 선수들로 경험보다는 ‘패기’를 앞장세운 선수들이다.

영건들의 합류가 오히려 기회일 수 있어

내야진을 살펴보면, 2004 시즌의 텍사스와 상당히 비슷하다. 3루수 최정, 2루수 정근우/고영민, 유격수 박기혁, 1루수 김태균/이대호 라인은 '안정감'이라는 측면에서 만점을 줄 수 없어도 상당히 '젊다'는 느낌이 강하다. 당시 텍사스 프런트도 2004 시즌을 앞두고 '쪽박 아니면 대박'이라는 심정으로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그리고 결과는 쇼월터 감독이 이끄는 텍사스 영건들의 '대박'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또한 2009 WBC를 앞두고 베테랑들이 대부분 참가하지 않은 우리나라에 ‘쪽박’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바라보는 이들은 ‘2004년 텍사스’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어떠한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합류했을까.

마운드 : 김광현, 류현진, 봉중근, 윤석민, 장원삼(이상 선발요원), 손민한, 이재우, 정현욱, 임태훈, 이승호(이상 중간계투), 정대현, 임창용, 오승환(이상 클로저)

대만전과 일본전을 책임질 ‘확실한 카드’ 류현진과 김광현을 필두로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봉중근, 1회 WBC에서 승리 투수로 이름을 올린 손민한의 조합은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베테랑 손민한에게 ‘맏형’노릇을 기대할 수도 있다. 또한 올림픽에서 전천후로 활약했던 윤석민을 포함하여 ‘마당쇠’ 정현욱, 이재우 등의 존재도 든든한 편이다.

다만, 문제는 윤석민을 제외한 나머지 중간계투 요원들의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는 데에 있다. 이들은 또한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특히, 윤석민과 이재우는 자신의 장점을 잊어버린 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제 모습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WBC 1라운드 전까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황두성을 대신하여 합류한 임태훈이 대표팀에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임태훈은 작년 올림픽 엔트리 발표 이후 올림픽 휴식일 전까지 9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클로저는 대부분 국제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든든한 편이다. 임창용 - 정대현 -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는 누가 나와도 훌륭하게 경기를 마무리 질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셋을 한 경기에 모두 등판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 3이닝, 최대 4이닝까지 무실점으로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기혁에게 ‘제 2의 박진만’을 기대

그러나 못내 아쉬운 것은 박진만이 빠진 유격수 자리다. 박기혁이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안정감이라는 측면에서 만점을 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야진에서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3루, 2루, 1루를 지키는 선수들의 수비 범위가 나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내야수 : 정근우, 고영민(이상 2루수), 최정, 이범호(이상 3루수), 박기혁(유격수), 김태균, 이대호(이상 1루수)

포수 : 박경완, 강민호

특히, 한국시리즈 MVP ‘소년장사’ 최정의 합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한 박재홍은 최정을 가리켜 “향후 30-30 클럽에 오를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최정이다” 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은 뒤로 하더라도 핫 코너를 커버할 만한 넓은 수비 범위는 오히려 전임 국가대표 3루수 김동주보다 넓은 편이다. 여기에 1회 WBC에서 무실책을 기록한 3루수 이범호도 있다.

포수에는 박경완과 강민호가 선발되었다. 박경완이 주로 포수마스크를 쓰겠지만, 올림픽에서의 경험을 충분히 살린 강민호도 다양한 방법으로 기용할 수 있다. 다만, 올림픽때와 마찬가지로 퇴장, 부상 등의 이유로 포수자원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포수 경험이 있는 이택근(외야수)의 발탁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대주자/대타 등 주로 백업 멤버로 활약하겠지만, 불펜포수 역할을 자처하는 이택근의 활용도는 김인식 감독에게 분명 좋은 소식이다.

외야는 그야말로 ‘경험이 풍부한 세대’들의 집합체다. 내야나 포수에 비해 확실히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외야수 : 이종욱, 이용규(이상 중견수), 김현수, 이택근(이상 좌익수), 이진영, 추신수(이상 우익수)

위의 멤버 중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제외한 다섯 명의 선수가 전원 올림픽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던 선수들이다. 따라서 WBC에서도 이들 다섯의 활약이 필수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상대팀에 따른 수비범위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김현수(좌) - 이종욱(중) - 추신수(우) 라인이 타격/수비에서 가장 안정적이지만, 이용규(좌) - 이종욱(중) - 이진영(우) 라인도 괜찮은 편이다. 좌타자만 다섯이라는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이는 오른손잡이 내야수/포수와 최상의 조합으로 극복할 수 있다.

추신수 딜레마가 옥의 티

그러나 국가대표팀에 희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는 추신수에 대해 소속구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참가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올 시즌부터 풀타임 주전 외야수로 뛰게 될 소속팀 선수의 부상을 걱정하는 것은 메이저리그 구단이라면 당연하다. 이는 히데끼 마쓰이(일본), 왕치엔밍(대만)도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의 부상을 염려한 양키스는 이들의 WBC 참가를 불허한 바 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1라운드 1경기, 2라운드 2경기에만 외야수로 참가시킬 수 있다는 조건으로 추신수의 WBC 참가를 허락했다. 이른바 '조건부 허락'이었다. 이러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추신수의 부상을 이유로 참가 자체에 이의를 제기했다. 국가대표팀으로서는 분명 '옥의 티'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지 대표팀 합류를 허락한 클리블랜드가 지금에서야 이의를 제기한 것은 분명 마이너스다. 지나친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신수 참가 불허’ 방침이 결정될 경우 국가대표팀은 추신수 없이 WBC를 소화시키거나 추신수 대체 외야수를 다시 선정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쨌든 WBC를 앞두고 전지훈련, 최종 엔트리 발표, 연습게임 등 모든 준비과정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WBC 1라운드를 알리는 대만전이다. 그리고 본 전쟁은 3월 6일 오후 6시 30분, 도쿄돔에서 열린다.

// 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