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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유럽세력의 팽창을 기원한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3. 13.

세계야구의 질서가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세계 축구의 질서가 유럽/남미 일변도에서 아시아로 확산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의견에 많은 이의를 제기하는 축구 전문가들도 있지만, 적어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유럽 축구가 아시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야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을 기점으로 떠오른 신흥 국가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킨 네덜란드,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가장 큰 이변은 이번 대회 복병으로 떠오른 네덜란드의 존재다. 네덜란드는 이미 조별리그 제 1경기에서 우승 후보 도미니카에 3-2로 신승한 것을 비롯하여 패자 부활 2차전에서도 연장 11회 접전 끝에 2-1로 역전승하며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메이저리거 출신 시드니 폰슨(전 뉴욕 양키스)과 톱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 낸 진 킹세일(넵튀니스)이 있었다.

불과 작년 올림픽때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 10-0, 8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던 네덜란드였다. 그러나 자국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던 올림픽과는 달리 폰슨을 주축으로 한 ‘왕년의’ 메이저리그 베테랑들, 그리고 일부 마이너리거들의 참가는 네덜란드에 큰 힘이 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국가대표팀으로 비유하자면 박찬호-이승엽처럼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 냈던 것이다.

폰슨은 이미 1차전 도미니카와의 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더욱 반가운 이름이 네덜란드 중심타선에 있다. 바로 랜달 사이먼(Randall Simon, 전 필라델피아 필리스)이다.

사이먼은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최희섭이 루키로 컵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2003 시즌 막판, 부진에 빠진 최희섭을 대신하여 트레이드로 컵스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가 바로 사이먼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피츠버그, 템파베이, 필라델피아를 전전했던 사이먼은 2006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종적을 감추었던 선수였다. 그러한 사이먼이 아주 오랜만에 네덜란드 국가대표 3번 타자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냈다. 네덜란드 큐라소(Curacao) 출생인 그가 ‘네덜란드 이승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실제로 사이먼의 포지션이 1루수인 점은 2라운드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큰 키에서 뿜어대는 빠른볼이 일품인 톰 스투이프베르겐(Tom Stuifbergen) 역시 네덜란드 2라운드 진출의 일등 공신이다.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인 그는 도미니카와의 패자부활 2차전에서 4이닝 동안 5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헨리 라미레즈, 데이비드 오티즈, 미겔 테하다 등이 마이너리거에 불과한 이 애송이에게 속절 없이 당한 것이다. 미국이나 베네수엘라가 네덜란드를 감히 얕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역사를 살펴 보면, 네덜란드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타이 콥(Ty Cobb)이 명품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를 두고 한 말인데, 공-수-주에 걸쳐 맹활약하는 와그너를 두고 콥은 “저 빌어먹을 놈의 네덜란드인은 내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선수야”라고 한탄한 바 있다. 그래서 와그너의 별명도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The Flying Dutchman)’이다.

어쩌면 네덜란드 선수들이 선전하는 것도 명예의 전당 유격수 와그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어쨌든 19세기부터 네덜란드와 야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며, 지금도 미국에 진출한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만 11명에 이른다(은퇴/FA 선수 제외).

마이크 피아자가 자진 참가한 이탈리아

한편 이탈리아 또한 네덜란드 못지않은 ‘유럽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1회 WBC에 참가한 마이크 피아자가 타격 코치로 다시 한 번 자진 참가의 의사를 표하자 적지 않은 메이저리거들이 이탈리아 유니폼을 입고 조국을 위해 뛰었다.

사실 현직 메이저리거 숫자만 놓고 보면 네덜란드보다는 이탈리아가 더 많다. 프랭크 카탈라노토(텍사스 레인저스)를 필두로 닉 푼토(미네소타 트윈스), 마크 디펠리스(밀워키 브루어스) 등 총 6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다. 마이너리거 숫자까지 포함할 경우 총 15명의 선수가 미국에 진출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제이슨 베이(보스턴 레드삭스)와 저스틴 모노(미네소타 트윈스) 등 강타선이 즐비한 캐나다에 신승했다는 사실은 큰 뉴스거리다. 더구나 캐나다는 선수 28명 중 단 세 명만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 프로리그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이다. 이 중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든 선수는 무려 10명이다.

숫자만 놓고 따진다면 분명 이탈리아가 캐나다를 격침시킨 것은 이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승리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단결력에 있었다. 특히 은퇴 이후 모국인 이탈리아에 야구를 깊이 뿌리내리고자 하는 피아자 코치의 노력이 이번 대회에서 더욱 빛난 셈이었다.

베네룩스 3국 등 유럽 세력의 팽창 이끌어야

그러나 아직까지 두 유럽 국가들의 활약이 WBC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 선수 구성이 대부분 미국 프로리그/독립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축구가 대세인 유럽에 야구가 좀처럼 자리를 못 잡는 것은 야구 선진국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따라서 WBC에서 나타난 유럽국가들의 선전을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과 독일, 노르웨이, 러시아 등 각 국가들에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IOC가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를 제외시킨 데에 따른 ‘외양간 고치기’ 작업의 일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 야구세력이 팽창되어야 전 세계 야구시장이 넓어지고, 또 재미있어진다.

// 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