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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무관의 제왕’ 양준혁, 그의 17년이 묻어나는 1인자의 자리

by 카이져 김홍석 2009. 5. 9.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 양준혁이 드디어 개인 통산 341번째 홈런을 터뜨렸다.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을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던 장종훈(340개)을 넘어서 단독 1위로 올라선 된 것이다.

이미 양준혁이라는 이름은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1993년 데뷔와 더불어 타율 1위를 차지하며 신인왕을 거머쥐는 등,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8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대화와 더불어 최다)했다. 4번이나 타율 1위(93,96,98,01시즌)에 오르며 장효조와 더불어 이 부문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타점왕도 1차례(94시즌) 차지했다. 14번의 올스타전 출장 기록도 당연히 최다 기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홈런왕 타이틀만큼은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한 채, 2위에만 3번(93,96,97시즌) 올랐다. 시즌 홈런 1위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가 통산 홈런왕에 등극했다는 사실이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데뷔 후 2007년까지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그에게 ‘자격’ 문제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역대 최고의 ‘기록’ 보유자

9년 동안 활약하며 한국 야구의 단일시즌 홈런-타점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이승엽이 선수 시절의 선동열과 같은 과라면, 양준혁은 송진우와 같은 과라고 할 수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서 군림했던 앞의 두 명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단일 시즌 기록 보유자라면, 뒤의 두 명은 오랜 세월 동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한 통산 기록 보유자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양준혁은 타격과 관련된 모든 통산 기록에서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장종훈-장효조-전준호도 ‘기록의 사나이’라고 불리지만 양준혁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심지어 4번이나 20홈런-20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호타준족’이기도 한 양준혁은 도루 부문에서조차 191개로 역대 13위에 올라 있다.

▶ ‘무관의 제왕’ 양준혁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양준혁이지만, 유독 MVP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규시즌 MVP를 3번은 수상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커리어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은커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적도 없을 정도다. 심지어 포스트시즌 시리즈나 올스타전 MVP와도 인연이 없었다.

93년 신인으로 타율(.341) 1위, 홈런(23)과 타점(90) 2위를 차지하는 등 타자로써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MVP는 홈런-타점 1위를 차지한 팀 선배 김성래(28홈런 91타점 .301)에게 돌아갔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신인이 MVP까지 동시수상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96년에는 타율(.346)-최다안타(151)-2루타(33)-장타율(.624) 1위, 홈런(28)-타점(87)-득점(89)-출루율(.452) 2위, 거기에 23개의 도루까지 곁들이며 다시 한 번 MVP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수상의 영광은 한화의 구대성(18승 3패 24세 1.88)에게 돌아갔고, 양준혁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30-30클럽에 가입하며 홈런-타점 타이틀을 싹쓸이한 ‘경이의 신인’ 박재홍(30홈런 108타점 36도루)에게 밀려 2위에도 오르지 못했다.

97년 이후로는 혜성처럼 등장한 후배 이승엽이 번번이 그의 수상을 가로 막았다. 양준혁 보다 3년 늦게 데뷔하여 무시무시한 홈런포를 무기로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은 이승엽은 무려 5번이나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며 양준혁을 ‘만년 2인자’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30홈런 98타점 25도루를 기록한 97년과 32홈런 105타점 21도루의 99년, 그리고 33홈런 92타점을 기록한 2003년에도 MVP는 모두 이승엽이 가져갔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한 2004년에도 28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 해의 주인공은 또 다른 팀 후배 배영수(17승 2패 2.61)였다.

타고투저의 시절이었던 터라, 굳이 이승엽이 아니었더라도 양준혁의 MVP 수상을 저지했을 타자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승엽이라는 특출난 선수 때문에 ‘2인자’라는 인상이 굳어졌고, 그로 인해 MVP 후보로 거론조차 되기 힘들었던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세월이 묻어나는 1인자의 자리

앞으로도 여전히 ‘홈런왕’하면 양준혁 보다는 이승엽의 이름이 먼저 거론될 것이다. 아무리 양준혁이 통산 홈런 1위에 올랐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에서 통산 324홈런을 기록 중이던 이승엽이 일본행을 택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미 5년 전에 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준혁에게는 홈런 기록이 전부가 아니다. 그가 기록을 깨는 데는 무려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긴 세월 동안 활약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이 어느 순간부터 순위표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몸으로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양준혁은 데뷔 이후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100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규정 타석을 소화한 ‘철인’이다. ‘부상’이라는 최대의 적이 그를 가로 막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양준혁은 몇 년 간의 반짝 활약으로 어떠한 기록의 1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9년 연속 3할 기록과 15년 연속 두 자리 승수, 13년 연속 올스타전 출장 등, 그와 관련된 기록은 모두 ‘연속’ 혹은 ‘회수로서의 최다’와 관련된 것이 많다.

1,2년이 아닌 17년이란 긴 세월 동안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1인자의 자리에 오른 양준혁. 그렇기에 그 자리가 더욱 가치 있는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