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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4할을 치기 위한 조건은?

by 카이져 김홍석 2009. 5. 13.
모처럼 ‘타고투저’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2009시즌 프로야구에서는 LG의 페타지니(.440)와 SK의 정근우(.425), 그리고 두산의 김현수(.411)까지 무려 3명의 타자가 5월 중순까지 4할 이상의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4할 타자’의 탄생을 놓고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도 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을 쳤던 선수는 프로 원년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활약했던 백인천 한 명 밖에 없다. 팀 별 경기수가 80이던 당시 백인천은 72경기에 출장해 250타수 103안타를 기록해 .412의 대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경기수가 적었던 당시라 지금에 와서는 그 감흥이 조금 덜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1994년 이종범은 102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4할 타율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이종범은 시즌 막판의 체력 저하를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늘어난 경기수로 인해 4할 달성에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다.

4할 타율은 70년 역사를 가진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의 테드 윌리암스(.406) 이후 씨가 말랐다. 그만큼 발전된 현대 야구에서 타자가 4할을 친다는 것은 투수가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야구팬들은 4할을 치기 위해서는 ‘발이 빠르고 안타를 잘 치는 선수’가 유리할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한-일 양국에서 가장 4할에 근접했던 두 명의 선수(이종범, 이치로)가 모두 그러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부터 백인천과 테드 윌리암스 등의 사례를 살펴보며 4할을 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순히 ‘정확도’가 4할의 필수 조건임은 확실하지만, 단순히 ‘많은 안타를 치는 것’이 4할을 위한 충분한 조건인 것은 결코 아니다.


▷ 첫째, ‘타수’를 줄여라

4할의 가능성을 점치기 위해서는 우선 타율을 구하는 공식(타율=안타/타수)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타율은 안타를 타수로 나누어서 계산한다. 타율을 늘리는 1차적인 방법은 안타를 많이 치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어쩌면 4할을 치기 위해서는 ‘안타를 많이 치는 것’보다 2차적인 방법인 ‘타수를 줄이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타수와 타석은 다르다. 타석은 타자가 배터박스에 들어서서 타격행위를 한 모든 기회를 뜻한다. 하지만 타수는 쉽게 설명하면 ‘유효 타석’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가 타석에서 순수하게 타격 행동을 한 회수만을 의미한다. 좀 더 정확한 타율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볼넷, 몸에 맞는 공, 희생 플라이, 희생 번트(기습 번트 제외) 등은 타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드물지만 타격 방해나 주루 방해 등으로 인해 1루로 진출했을 경우에도 타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1941년 당시 테드 윌리암스(.406)는 185개의 안타를 때렸고, 이는 리그 5위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윌리암스가 4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수가 45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606번의 타석에 들어섰지만 무려 147개의 볼넷(전체 타석의 24%)을 얻어냈고 그 결과 타수를 상당수 줄일 수 있었다.

당시 윌리암스보다 33개나 많은 안타를 기록했던 최다안타 1위 세실 트레비스의 타율은 .359(608타수 218안타)에 불과(?)했다. 663타석에 들어선 트레비스가 얻어낸 볼넷은 52개, 만약 트레비스가 윌리암스만큼 많은 볼넷을 얻어냈다면, 그의 타율은 .425가 될 수 있었다. 무려 95개의 볼넷 차이가 안타 33개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어 무려 5푼에 가까운 타율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82년 당시의 백인천도 298타석에서 42개의 볼넷(14%)을 얻어냈다. 반대로 한-일 양국에서 역대 최다안타 기록을 세운 이종범(.394)과 이치로(.385)의 1994년은 타석 당 볼넷 비율이 10%를 넘지 못했다.

이러한 관계는 메이저리그 현역 타율 1,2위를 달리고 있는 알버트 푸홀스(.334)와 이치로(.330)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5번이나 최다안타 1위를 차지한 이치로(통산 1839안타)는 푸홀스(통산 1568안타)보다 무려 271개나 많은 안타를 기록했지만, 통산 타율은 더 낮다. 푸홀스는 타석의 13%(718개)가 볼넷이고, 이치로는 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맞추는 능력’만으로는 4할을 넘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냥 방망이에 맞춰서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타수 당 안타 비율(타율)’이 아니라 ‘타석 당 안타 비율’을 알아보면 된다. 여기에서 이치로(.304)는 푸홀스(.284)를 큰 차이로 압도하지만, 결국 타율에서는 푸홀스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치로보다 푸홀스의 4할 타율 가능성이 더욱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4할을 위해서는 ‘반드시 안타를 치겠다’가 아니라 ‘여차하면 걸어 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반발력이 적은 공을 때려내기 위해 중심이 넓은 방망이를 사용했던 20세기 초반 이후 ‘많은 안타’로 4할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둘째, 리그 정상급의 파워를 지닌 중심타자여야 한다.

볼넷은 단순히 ‘뛰어난 선구안’만의 산물은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파워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2할대 중반의 타율을 기록하는 선수를 두고 ‘선구안이 좋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도 종종 4할에 가까운 출루율을 기록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들이 지닌 파워는 리그의 평균 수준을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다는 것은 때로 ‘정교함’ 이상으로 높은 타율을 기록하게 되는 원인이 되곤 한다. 홈런 맞을 것을 두려워 한 상대 투수가 그 타자와의 승부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고의사구로 기록되지 않을 뿐, 실제로 그 내용은 일부러 거르는 것과 마찬가지일 때가 많다.

데뷔 이후 1999년까지 개인 통산 .288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배리 본즈는 금지약물의 힘을 빌려 파워를 늘린 2000년부터 5년간은 .339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17%정도였던 타석 당 볼넷 비율이 이 기간 동안 무려 29%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뛰어난 선구안으로 만들어낸 볼넷(19%)에 본즈의 파워에 부담을 느낀 상대투수의 고의사구(10%)가 더해진 결과였다.

82년 당시 백인천은 4할 타율과 더불어 19홈런으로 이 부분 2위에 올랐다. 김봉연(22홈런)에게 홈런왕의 자리는 넘겨줬지만, 순수한 장타력을 나타내주는 (장타율-타율)은 .328로 김봉연(.305)을 제치고 1위였다. 즉, 파워면에서도 백인천이 당대 최고였다는 뜻이다.

1941년의 테드 윌리암스는 37홈런으로 타율과 더불어 리그 홈런왕까지 동시에 거머쥐었다. 무려 3번의 4할 타율을 기록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2루수 로저스 혼스비의 경우 1921년부터 25년까지의 합산 타율이 무려 .402에 이르렀고, 이 기간 동안 기록한 144홈런 598타점 352볼넷 등은 모두 리그 1위의 기록이었다.

단타를 많이 치는 타자는 아무리 몬스터 시즌을 보낸다 하더라도 4할 타율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치로가 그 대표적이다. 이종범의 경우는 평균 이상의 파워도 겸비했지만, 1번으로 출장한 이상 ‘타수 줄이기’에 있어 불리할 수밖에 없다.

4할을 치기 위해서는 정상급에 달한 파워로 상대투수가 피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을 최대한 좁히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공’만 때리면 된다. 기다림은 볼넷을 만들어 타수를 줄여줄 것이고,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는 것은 안타의 비율을 높여줄 것이다.

▷ 셋째, 삼진이 적어야 한다.

72경기를 뛴 백인천이 당한 삼진은 고작 17개였다. 타석당 비율로 5.7%였고, 테드 윌리암스(4.5%)는 그 보다 더 낮았다. 혼스비(6.4%)도 마찬가지였다. 삼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인플레이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좀 더 많은 안타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종범과 이치로가 앞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면서도 4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삼진이 적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때려내기만 하면 그들의 빠른 발은 단순한 땅볼을 안타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건은 ‘홈런 타자는 삼진이 많다’는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두 번째 조건과 배치를 이룬다. 4할 타자의 탄생이 쉽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다릴 줄 아는 홈런 타자가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면서도 많은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 솔직히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다.

▷ 그럼 올 시즌 가장 가능성이 높은 타자는?

위와 같은 조건을 감안했을 때 올 시즌 현재까지 4할을 유지하고 있는 3명의 타자 가운데

그나마 시즌 막판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 선수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다. 볼넷 비율(19%)에서 정근우(7%)와 김현수(12%)에 비해 앞서 있으며, 2위(10개)에 올라 있는 홈런 파워도 최정상급이다. 하지만 그는 16%에 달하는 삼진 비율이 걸림돌이다.

정근우가 지금은 비록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어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1번 타자인 그는 결국 다른 두 명보다 좀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설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타수 줄이기’에 절대적인 불리함을 안고 있다. 정근우 같이 전형적인 리드오프형 선수가 4할을 기록한다면 그것은 ‘현대야구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김현수는 맞추는 능력과 선구안에서 모두 강점을 나타내고 있지만, 아직 리그를 압도할 만한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다. 2년 연속 타율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장 올해 4할 타율을 노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파워를 늘려가겠다고 공언했으며, 그것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이상, 향후 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임은 틀림없다.

메이저리그에서 지난 67년 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것이 바로 4할이라는 꿈의 타율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프로야구가 27년 만의 두 번째 4할 타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다.

과연 올 시즌 한국의 야구팬들은 사상 두 번째 4할 타자를 볼 수 있을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은 언제나 팬들의 ‘특권’이자 ‘자유’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