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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이승엽의 부진, 플래툰을 변명삼아선 곤란하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5. 5.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부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연일 하라 감독의 용병술이 한국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 결과 야구팬들도 하라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마치 그것이 이승엽이 부진한 이유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정말 그런 것일까?

▶ 플래툰 시스템이란?

이해를 위해서는 플래툰 시스템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야구에서의 플래툰 스시템(Platoon System)이란 한 포지션에 두 명 이상의 선수를 돌아가며 기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지금의 하라 감독처럼 상대 선발에 따라 좌타자와 우타자를 번갈아가며 투입하는 방식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며, 그 기록의 결과 좌타자는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실제 기록도 그렇게 나타난다. 좌-우의 투수와 타자가 상대하여 만들어내는 4개의 조합 가운데 좌투수를 상대로 한 좌타자의 성적이 가장 나쁘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에 비해 소수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생소함’과 피칭-타격의 매커니즘적인 문제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결과다.

좌타자는 우투수에게 기본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고, 우타자는 좌투수에게 좀 더 강하다. 반대로 좌타자는 좌투수에게 약점을 보이고, 우타자는 우투수에게 약점을 보인다. 따라서 플래툰 시스템은 해당 포지션에서의 생산력 극대화를 노리고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표본을 확인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를 예로 들면, 2008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 결과는 위의 표와 같다. 좌-좌의 경우 궁합이 최악이다. 저 정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감독들은 좌타자를 중심으로 플래툰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플래툰 시스템이기에 타자들의 자신감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우타자에게 좌투수만 상대하게 만들고, 좌타자에게 우투수만 상대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으라는 것과 같다. 편한 쪽만 상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연히 성적이 좋아지니 자신감도 뒤따라 온다.


▶ 플래툰을 통해 붙박이 타자로 성장한 추신수

이러한 플래툰 시스템을 즐겨 사용하는 감독들이 꽤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신인급 좌타자는 아무리 특급 유망주 출신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시킨다.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승엽과 마찬가지로 좌타자인 추신수가 올 시즌 좌투수와 우투수를 가리지 않고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할 수 있는 것은 지난해 에릭 웨지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 속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또한 그것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추 신수는 지난해 부상에서 복귀한 후부터 상대 선발이 우투수일 경우에는 주전으로 출전하기 시작했고, 그 우투수들과의 대결에서 .317/.413/.579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렇게 시즌 전체 성적이 오르자 이제는 좌투수들을 상대로도 점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그 동안 약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좌투수 상대 타율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리며 .286/.345/.455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플 래툰에서 벗어난 올 시즌의 추신수는 현재까지 우투수 상대 타율(.281)과 좌투수 상대 타율(.200)이 꽤나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와는 달리 붙박이 주전으로 출장하고 있기 때문에 좌투수를 상대하는 비율이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플래툰 시스템에서 벗어나게 되면 누적 스탯(타점, 홈런)은 늘어나지만, 비율 스탯(타율/출루율/장타율)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 하라 감독의 용병술이 문제?

요미우리는 현재 16승 8패로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서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많은 투자로 인해 그만큼 좋은 선수들을 다수 보유한 결과지만, 실제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감독의 용병술을 무조건 폄하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것도 플래툰 시스템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베테랑 타자 한 명을 변명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플래툰 시스템에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두 명의 타자가 모두 매일같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에 타격감을 조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승엽을 위한 변명에 발 벗고 나선 일부 국내 언론들이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점이다.

하지만 ‘프래툰 시스템 때문에 이승엽이 타격감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성적이 나쁘다’는 의견과 ‘자신에게 유리한 밥상만 차려주는 플래툰 시스템 하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는 선수는 붙박이 주전의 자격이 없다’는 의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현재 이승엽은 63투수 12안타로 .190의 빈약한 타율을 기록 중이다. 우투수를 상대로도 49타수 10안타(.204)에 그치고 있으며 좌투수 상대로는 14타수 2안타(.143)로 더욱 나쁘다. 이래가지고야 플래툰을 변명 삼을 수도 없는 수준이 아닌가. 잘 하던 선수를 플래툰으로 돌려서 못하게 되었다면 그건 감독의 책임이다. 하지만 2년째 난조를 보이고 있는 이승엽은 그러한 경우도 아니다.

플래툰 시스템으로 기용되면서 3할 이상의 타율을 비롯해 좋은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그를 붙박이로 기용하지 않아 누적 스탯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면 그것은 감독에게 떳떳하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저렇게 심각할 정도로 팀에 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의 용병술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우선은 당장의 부진부터 벗어나야...

원래 이승엽은 좌투수를 상대로 나쁜 기록을 보이는 선수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일본 진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요미우리에 몸담은 2006년부터 작년까지 이승엽의 좌투수 상대 타율(.297)은 오히려 우투수를 상대했을 때(.287)보다 높았고, 장타율의 경우도 큰 차이 없이 골고루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좌투수 상대 장타율=.523, 우투수 상대 장타율=.556)

하지만 전체적으로만 그럴 뿐, 좌투수 상대 성적은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2006년에는 좌투수를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과시하며 .341의 타율을 기록했었지만 2007년에는 .288로, 작년에는 .194로까지 떨어졌다. 하라 감독이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른 이승엽을 플래툰 시스템으로 돌리기로 결심한 이유다.

당장 이승엽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플래툰)을 인정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만 눈앞에 차려진 상황이다. 매일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일단은 우투수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우선이다. 플래툰 시스템에 대한 불평은 그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베테랑이자 슈퍼스타인 이승엽에게는 그것조차 굴욕적인 처사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실력이 전부인 프로 세계에서 권리와 자존심은 성적이 받쳐줘야만 주장할 수 있다. 이미 작년에 연봉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나쁜 인상을 심어준 상황에서 자신의 편의만 앞세울 수는 없다.

언론과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무조건 하라 감독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플래툰 시스템을 놓고 투덜거리기만 해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