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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호세를 '폭행범'으로 만들고 있는 롯데팬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5. 7.
어린이날부터 시작된 롯데와 SK의 3연전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 내용이 문제가 아니다. 사직구장을 찾은 관중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타자의 등 뒤로 공이 날아가자 “맞춰라~!”라고 고함을 지르는 관중들이 있는가 하면, 경기에 졌다고 그라운드 안으로 오물을 투척하는 이들도 있었다. 박재홍의 타석 때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경기장 안으로 난입한 취객도 있었으며, 수비하던 박정권을 향해 물병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이날에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아이들 앞에서 시작된 이 ‘추태’는 다음 날이 되어서도 그칠 줄을 몰랐다. 6일 경기가 끝난 후에는 퇴장하는 SK 선수단을 향해 각종 오물과 더불어 돌까지 날아들었고, 결국 선수단 버스의 유리가 소주병에 맞아 깨지는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 줄 놓은’ 롯데 팬들은 10년 전 당시의 기억을 잠시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이틀 동안 사직구장의 관중들이 보여준 몰상식한 매너는 10년 전 그들의 영웅이었던 호세를 단순한 폭행범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걸까.

1999년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는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특히 롯데팬이라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경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4차전까지 1승 3패로 뒤지던 롯데는 5~7차전을 모두 6-5의 한 점차 승부로 싹쓸이하며 한국시리즈 티켓을 따냈다. 그리고 거기에는 3경기 연속 홈런을 친 호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또한 ‘방망이 투척 사건’이라는 대형사고가 벌어진 것도 바로 그때였다.

5차전에서 삼성의 마무리 투수 임창용을 무너뜨리는 끝내기 3점 홈런으로 팀에 승리를 가져다 준 호세는 이후 대구에서 벌어진 7차전에서도 0-2로 끌려가던 6회초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혀있었기 때문일까,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호세에게 관중들이 계란이나 맥주캔 등을 던지기 시작했다. 급소를 맞은 호세는 분노했고, 관중과 선수가 철망을 사이에 두고 싸움을 벌이는 촌극이 연출되고 말았다.

분을 이기지 못해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던졌던 호세는 결국 퇴장당하고 말았지만, 그 분노를 이어받은 마해영은 곧바로 동점을 터뜨린 후 주먹을 불끈 쥐고 헬멧을 강하게 내던지는 세레머니로 동료에게 오물을 던진 삼성 팬들에게 제대로 복수를 한다.

당시 대구 구장을 찾은 일부 팬들의 매너 없는 행위로 인해 오히려 롯데 선수단이 하나로 똘똘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근성으로 무장한 롯데는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구어내며 ‘역대 최고의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데 10년 전 심정적으로는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호세를 영웅시했던 롯데 팬들이 이번에는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SK 선수들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조성환이 얼굴에 공을 맞아 큰 부상을 당하고, 김일엽의 몸 쪽 변화구를 빈볼이라 여긴 박재홍이 과잉대응을 했을 때 나온 말이 있다. “과잉대응 한 박재홍이 채병용의 투구까지도 일부러 던진 빈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는 지적이었다.

이번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팬들의 매너 없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그 팬들은 스스로 10년 전 오물을 던진 관중들과 싸웠던 호세를 단순한 ‘폭행범’으로 만들고 있다. SK 선수들을 향해 각종 쓰레기를 던지는 자신들의 모습이 10년 전 호세에게 계란을 던지던 그 관중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조성환 주장의 복수를 할 뿐이다”라고 변명하고 싶겠지만, 과연 경기에 이겼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을 벌였을까. 조성환의 부상이 문제가 아니라 거듭되는 ‘패배’가 더 큰 원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패배감과 군중심리가 결합되어 지금과 같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롯데 팬들이 처음 분노한 이유는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부상을 당해 장기 결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더욱 큰 부상을 초래할 수도 있는 행위를 망설임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역설적이다. ‘내가 응원하는 선수는 다치면 안 되고, 다른 팀 선수들은 다쳐도 된다’는 것만큼 이기적인 발상이 어디에 있는가.

2008년의 롯데 팬은 한국 야구의 자랑이었다. 그들은 사직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만들며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멋진 응원 문화 트렌드를 구축했다. 하지만 2009년의 롯데 팬들은 한국 야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롯데의 성적 하락과 연패 때문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고의 팬 문화를 만들어졌던 사직구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이틀 연속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일부’의 행위로 인해 전체가 비난 받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일부의 팬들이 부산의 야구팬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