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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져의 야구 칼럼/프로야구 이야기

이것이 로이스터의 메이저리그식 투수운용이다

by 카이져 김홍석 2009. 6. 19.
18일 벌어졌던 롯데와 삼성의 시즌 9차전 경기에서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1회에 난타당하며 무려 6점이나 내준 롯데 선발 조정훈이 2회에도 마운드에 오르더니 그대로 7회까지 던지고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프로야구를 즐겨보는 팬이라면 이것이 한국에서 얼마나 보기 드문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정훈이라는 투수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조정훈은 2아웃 이후에 연속 5안타를 얻어맞는 등 1회에만 안타 6개와 사사구 2개를 허용하며 6실점했다. 보통의 경우, 1회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점수를 내주면 한국의 감독들은 투수교체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현역 감독들 중에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감독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이닝 중에 그를 교체하지 않았다. 1회초에 타자들이 분발해준 덕에 2-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가 순식간에 2-6으로 뒤집어진 상황, 자칫 경기를 포기해야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조정훈에게 1회를 끝까지 맡겼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2회에도 조정훈이 마운드에 올랐다는 것이다. 1회를 간신히 넘기긴 했지만, 마지막 아웃 카운트도 1루 주자 김재걸이 3루에서 가르시아의 송구에 걸렸을 뿐, 투수 스스로의 힘으로 잡아낸 것은 아니었다. 이만하면 국내 감독들은 십중팔구 2회에 다른 투수를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신기한 장면은 그 다음부터 이어졌다. 2회 조동찬-강봉규-양준혁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상위타선을 3자 삼진으로 처리한 조정훈은 이후 7회까지의 6이닝 동안 삼성 타선을 2안타 1볼넷 9탈삼진으로 철저히 봉쇄했다. 더 이상의 실점은 없었고, 롯데가 7점을 더하면서 9-6으로 승리, 7이닝 합계 8피안타 6실점 10탈삼진을 기록한 조정훈은 시즌 6승째를 따냈다.

조정훈을 교체하지 않고 마운드에 계속 올린 로이스터 감독의 독특한 투수 운용과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 조정훈의 변신이 있었기에 결국 롯데는 승리할 수 있었다. 한국의 기본적인 야구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의 이 같은 투수 운용 방식은 소위 말하는 ‘메이저리그 식’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 투수를 기용함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이 몇 가지 있다.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리고 팀의 상황에 따라 변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원칙은 잘 지켜지는 편이다.

1) 아무리 선발 투수가 초반 난조를 보였다 하더라도 두 자리 수 안타를 허용하지 않은 이상 1회에는 투수를 교체하지 않는다. 2회에도 일단은 마운드에 올린다. 교체를 생각하는 것은 투수가 2회에도 여전히 난타를 당할 때다.

2) 선발 투수가 난조를 보이며 계속해서 실점을 허용하더라도, 이기고 있는 경기라면 해당 투수의 ‘승리투수가 될 권리’를 지켜준다. 즉,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선발 투수에게 5회까지는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설령 그 결과가 역전패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것을 질책하지 않는다. 선수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감독은 그러한 선수의 (승을 따낼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한다.

3) 감독은 선발 투수가 의미 있는 기록을 작성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 가령 1-0의 아슬아슬한 리드라 하더라도 선발의 완봉승이 걸렸다면 9회의 투수교체는 없다. 설령 힘이 빠진 투수가 역전을 허용해도 할 수 없다. 8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틴 투수가 9회 교체되는 것은 투구수가 120개를 넘었거나, 본인 스스로가 교체를 원할 때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눈앞의 ‘1승’을 위해 완봉승을 눈앞에 둔 투수를 감독이 강제적으로 교체하면, 팬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메이저리그의 감독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선발 투수를 운용한다. 눈앞의 1승보다는 시즌 전체의 흐름을 더 중요시 여기고, ‘무조건 이기는 야구’보다는 ‘팬들이 즐거워하는 야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지켜지는 원칙들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작년부터 계속해서 이러한 투수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8일 경기에서 조정훈을 2회에도 마운드에 올렸다.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는 선발 투수를 여간해서는 교체하지 않는다. 롯데 선발들이 평균자책점에 비해 승리가 많은 이유다.

또한 작년 4월 25일 삼성전에서 로이스터는 2-0으로 앞서던 9회말 2사 2,3루의 위기 상황에서 완봉승을 목전에 두고 있던 손민한을 교체하지 않고 계속 던지게 했다. 비록 진갑용의 동점 적시타가 터지며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나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로이스터가 추구하는 메이저리그식 투수 운용법이다.(경기는 연장전에서 롯데가 4-3으로 승리)

올 시즌 롯데 선발진이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5.31로 8개 구단 가운데 4위권이다. 하지만 전체 이닝 가운데 선발투수들이 책임진 비율은 62.8%로 최강 선발진을 자랑하는 KIA(63.7%)에 근소하게 뒤진 2위, 경기당 등판하는 구원투수는 2.71명으로 오히려 KIA(2.80명)보다 더 적다.

비슷한 선발 방어율을 기록한 삼성(5.38)이 선발 소화비율 53.8%에 3.13명의 구원투수를 기용하고, LG(5.44)가 57.9%의 선발 소화비율로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3.74명의 구원투수를 기용하는 것과는 확실히 대조적이다.

18일 경기는 로이스터의 메이저리그식 투수 운용과 조정훈의 보답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1회도 위태했던 조정훈을 믿어줌으로 인해 구원투수들을 아낄 수 있었고, 그렇게 아낀 전력은 주말 3연전에서 롯데의 무기가 되어 연승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로이스터의 이러한 투수 기용 방식은 기본적으로 ‘장기전’을 염두에 둔 것이다. 5일마다 등판하는 선발진이 최대한 긴 이닝을 책임지게 하면서, 구원투수의 투구이닝과 등판회수를 줄여주는 것은 6개월 동안 이어지는 페넌트레이스의 체력 안배차원에서 무척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의 위력은 선발진이 막강했던 작년에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한 바 있다.

로이스터 감독이 아니었더라면 롯데 팬들은 18일 경기와 같은 짜릿한 승리를 맛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피칭과 타격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마련이며, 이 경기에서 보여준 롯데 타자들 집중력은 2회부터 제 컨디션을 찾은 조정훈에 대한 화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의 선발진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로이스터 감독의 이러한 투수 운용도 다시금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작년에 보여줬던 그 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다.

롯데가 4위 삼성에 2패를 안긴 덕에, 4위부터 7위까지의 4팀의 승차는 겨우 1경기 밖에 되지 않는다. 4팀 모두에게 기회가 있으며, 이들 가운데 가장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은 최근 11경기에서 8승 3패를 기록 중인 롯데다.

로이스터 감독의 ‘메이저리그식 야구’가 다시 한 번 4강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만약 롯데가 4강 진출에 성공한다고 했을 때, 지난해 포스트 시즌에서 ‘단기전에서의 동양 야구의 매서움’을 톡톡히 경험한 로이스터 감독이 이번에는 어떠한 타개책을 내놓을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과연 로이스터 감독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한국식으로 특화된 리그’에서 ‘메이저리그식 용병술’로한국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다른 이와의 ‘비교’와 ‘선의의 경쟁’은 언제나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 카이져 김홍석(Yagoo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