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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의 꽃 보다 야구

다시 한 번 드러난 국내 야구장의 열악한 시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7. 4.

잠실구장은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인프라를 자랑하는 야구장이다. ‘야구장으로 소풍가자’는 모토를 내건 인천 문학구장이나 ‘익사이팅 존’을 새로 탄생시킨 부산 사직구장도 빼어난 시설을 자랑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많은 관중을 수용해 왔던 잠실구장은 ‘한국 프로야구의 메카’라 할 수 있다. 3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로 다가온다.

이렇게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잠실구장도 비 앞에서는 꼼짝을 못 했다. 특히, 많은 야구팬들은 2004년 현대 유니콘스(히어로즈 전신)와 삼성 라이온스의 한국시리즈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당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치러졌던 한국시리즈 9차전 경기는 양 팀 구단 직원들이 스펀지로 그라운드에 고인 빗물을 제거하는 등 갖은 고생 끝에 현대가 8-7로 승리하며 4승 3무 2패로 우승기를 휘날린 바 있다.

그리고 이 경기를 지켜보았던 많은 야구팬들과 야구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국내에서 가장 시설이 좋다는 잠실구장도 기본적인 배수시설조차 구비가 안 되어 있는데, 나머지 구장은 어떻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 다시 한 번 목동 구장에 등장한 ‘물 빼기용 스펀지’

그렇게 ‘폭우 속의 한국시리즈’를 경험한지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동안 야구장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문학구장의 ‘바비큐 존’, 사직구장의 ‘익사이팅 존’, 잠실구장의 ‘엑스 존’ 등 경기 흥미를 이끌기 위한 팬서비스는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정작 야구장 시설 관리는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2일 목동 경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 다른 구장에 비해 목동 구장은 특히 방수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일일이 손으로 빗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실시해야 한다.

사실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시즌 11차전 경기는 진행 자체가 불투명했다. 경기를 앞두고 세 번의 국지성 소나기가 목동 야구장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 경기 지속 여부를 놓고 김호인 KBO 경기 감독관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오후 5시를 전후하여 날씨가 맑아지자 김 감독관은 “그라운드를 정리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히어로즈 구단 관계자들은 젖은 목동구장 그라운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천용 천막을 걷어 낸 이후 드러낸 목동구장 홈 플레이트는 빗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흥건히 젖은 잠실구장에서 혈투를 펼쳐야 했던 히어로즈 선수들은 ‘경기속개’ 소식에 내심 반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날씨는 뒤로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상이 더 큰 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촉촉하게 젖은 인조 잔디 구장에서는 평범한 내야 땅볼도 스핀이 빨라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선수들의 안면을 강타할 수 있었다. 이는 외야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결국 히어로즈 구단 관계자들은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그러했듯이, 스펀지와 삽 등 각종 도구를 활용하여 빗물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빗물만 제거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홈 플레이트 주변의 젖은 모래를 그대로 놔둘 경우 포수와 주자가 미끌어져서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를 모두 제거한 이후 새로운 모래로 뒤엎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완성하는 데에만 최소 40분, 최대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결국 이 날 목동 경기는 20분이 지연된 오후 6시 50분에 진행됐다.

▲ 새로운 모레로 홈플레이트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히어로즈 구단 관계자들과 목동구장 관리 직원들. 이러한 모습 없이 안심하고 야구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에 대한 대가는 ‘전무’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에 빛나는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가 이렇다.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들은 이렇게 척박한 그라운드에서 자기 몸 아까운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선수들이 몸으로서 국민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선물한 만큼, 한국 야구 위원회(이하 KBO)에서도 야구장 시설 개선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만 무성했을 뿐 이제까지 정말로 한 일이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라운드에서 스펀지로 빗물을 제거하는 구단이 있을 정도다.

이는 이용일 초대 KBO 사무총장도 같은 생각이다. 야구계 원로인 이 총장은 지난 야구발전 토론회에서 “메이저리그의 셀릭 커미셔너는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29개의 야구장을 신설하거나 개/보수하는 데 힘썼다. 우리나라 역대 총재들은 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군림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해 놓은 것이 없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올림픽 금메달과 두 번의 WBC 직후 선수들이 얻은 것은 약간의 포상금과 ‘2006 WBC 이후 병역면제 혜택’ 뿐이다. 이 외에 야구팬들이나 나머지 야구 선수들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즉, 이러한 국제무대 선전을 ‘지나가는 행사’로 치부해 버렸다‘는 이야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야구발전 토론회 등을 통하여 돔구장 건립 작업 구체화, 각종 유소년 구장 건립 사업 추진 등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만큼은 KBO를 포함하여 KBA(대한야구협회)도 ‘일 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두 번 다시 그라운드에서 스펀지에 빗물 제거하는 장면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도 프로야구 선수들은 배수 시설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야구장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다.

<사진 = 직접 촬영 Ⓒ 유진, 무단 복제 금지>

// 유진(http://mlbspeci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