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는 고독하다. 경기 막판 팀의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 홀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국내의 대표적인 마무리투수 출신인 김용수 코치는 그 고독한 싸움을 즐기라고 말한다. 누군들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결국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감히 팀의 뒷문을 지켜낼 수 없다. 그렇기에 신인급 투수들이 마무리 보직을 맡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전무한 것은 아니다. 올 시즌만 해도 두산의 새로운 마무리로 낙점받은 이용찬이 제 몫을 충실히 수행해 주고 있기에. 하지만 올 시즌 이용찬의 성적표를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원포인트 릴리프도 아닌 원포인트 마무리?
원포인트 릴리프. 단 한타자 만을 상대하기 위해 올라오는 투수를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으로는 LG의 류택현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의 특징이라 하면 출장수에 비해 이닝수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타자, 많아야 두타자 정도를 상대하기 때문에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올시즌 이용찬의 성적표에서 역시 이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출장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이닝수다.
보통 마무리 투수는 상대팀의 마지막 공격시, 혹은 감독의 선택에 따라 8회 2사쯤에 조기등판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용찬 같은 경우, 8회 2사는 고사하고 등판한 뒤 한이닝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김경문 감독이 밝혔듯 아직 신인인데다 부상전력이 있는 선수기에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른 선수가 피해를 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태훈도 보호받고 싶다
이용찬이 출장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이닝 수를 소화하고 있다면 임태훈은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용찬이 38경기에 출장했지만 이닝 수는 30이닝도 체 되지 않는데 반해 임태훈은 벌써 80이닝을 눈앞에 두고 있다.(49경기 출장)
물론 앞서도 말했듯 이용찬을 보호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임태훈 역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07시즌 불펜으로 100이닝을 소화한 뒤 08시즌 87이닝, 그리고 올 시즌 100이닝 가까이 던질 것으로 보이는데 선발도 아닌 불펜투수가 이렇게 많은 이닝을, 그것도 3년 연속으로 던지게 된다면 분명 머지않아 그의 팔은 망가져 버릴 것이다.
이미 올 시즌 두산의 허약한 선발진 덕분에 임태훈이 긴 이닝을 소화하는 일은 심심찮게 나타난다. 여기에 이용찬이라는 원포인트 마무리의 등장으로 임태훈이 책임져야 할 이닝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팀 승리가 우선이다
일단 오해가 없도록 미리 밝혀두자면 당연히 팀 승리보단 선수 보호가 우선이다. 하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임태훈이 2이닝 혹은 그 이상을 던지고 9회 1사, 2사에 마운드를 내려온다고 가정했을 때, 이용찬이 책임지는 이닝은 많아야 0.2이닝이다. 설마 이보다 한타자를 더 상대한다고 해서 그가 탈이 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선수 보호도 보호지만 아직까지 이용찬에 대한 감독의 ‘믿음’이 부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15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이용찬은 1점차 리드상황에 등판해 볼넷만 4개를 헌납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왜 김경문 감독은 이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의문 또한 들었다. ‘그럴거면 왜 마무리 보직을 맡겼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팀의 승리에는 크게 보탬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선수의 실적 올려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것인데 팀 성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아직까지 그가 성장하고 있고 더 경험을 쌓아야 하는 선수라는 데에 적극 동의하지만 왜 그의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 내주는 자리가 마무리여야 하냐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두산이 모험을 걸만큼 여유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이변이 없는 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될 두산, 그리고 플레이오프시 세이브 상황에서 과연 김경문 감독은 주저없이 이용찬을 마무리로 내세울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팀의 뒷문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그 다음이 되어도 늦지 않다.
[사진제공=두산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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