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가 이틀 연속 멀티 홈런을 터뜨리며 길었던 팀의 연패를 끊는데 결국 성공했네요. 3경기 연속 1점차 패배였는데, 일요일 경기에서는 이대호가 마침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이대호가 살아야 롯데가 산다”
아마 이대호 본인 스스로가 이 말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대호가 팀 내에서 차지하는 그 위상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이대호가 얼마나 큰 부담을 안고 있는가를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 명제가 사실에 가깝기 때문이죠.
롯데 타선의 핵은 누가 뭐래도 이대호입니다. 아무리 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해도 홍성흔은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없죠. 경기수가 차이난다고 하지만 이대호는 115경기에서 90타점을, 홍성흔은 101경기에서 51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점이 모든 것을 나타내주는 지표는 아니지만, 이것만 봐도 두 선수의 공헌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는 잘 알 수 있습니다. 8푼의 타율 차이로는 두 배가 넘는 홈런 차이를 극복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리 홍성흔이 잘 쳐주고 김주찬과 정수근이 출루를 잘 해준다 해도 이대호가 해결사의 역할을 해줄 수 없다면 롯데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습니다. 롯데의 팀 분위기를 좌우하는 팀 내 최고의 타자가 이대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대호는 그런 위상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기도 하죠. 심지어 롯데 팬들 중에서도 ‘찬스에 약하다’는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하며 이대호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모든 원인이 그의 체중에 있다고 봅니다. 이대호가 만약 김현수나 이승엽 같은 체격이었다면, 그게 아니면 김태균 정도만 되었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욕을 먹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그 어떤 것을 보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대호가 딱 그렇죠. 씨름선수라면 모를까 야구선수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구를 지닌 이대호, ‘프로 스포츠 선수라면 날렵하고 근육질이어야 한다’는 이유 없는 고정관념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삐딱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실력에 관계없이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 선수의 본질까지 해칠 수는 없습니다. 이대호의 실력은 그런 것으로 가려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007년 이후 올해까지의 3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 선수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대호(71개)가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선수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꽤 되더군요. 가장 많은 타점(271개)을 기록한 선수도 이대호입니다.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던 2006년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 그 정도 입니다. 당연히 4년 내 최다 홈런-타점은 이대호죠.
가끔 사람들이 “너는(혹은 자네는)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가 누구라고 생각해?”라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전 한결같이 “이대호와 김동주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타자는 이대호와 김동주, 이렇게 두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년에는 이 대답에 김현수가 추가될 것 같지만 어쨌든 당장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혹시 롯데 소속으로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롯데에는 ‘안타제조기’ 장효조를 비롯해, 김용철, 김민호, 김응국, 박정태, 마해영 등 한가락 하는 타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3년 연속 3할을 기록한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정답은 한 명입니다. 2006년부터 작년까지 3할을 기록한 이대호만이 유일하게 롯데 선수로서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장효조는 2년 연속에도 실패했고, 김민호나 박정태 등도 2년 연속이 고작이었습니다. 사직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팀에서 3할을 친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대호는 롯데 선수로 4년 연속 20홈런을 때려낸 유일한 선수이며, 5년 연속 80타점 이상을 기록한 단 한 명의 선수입니다. 통산 홈런 개수가 150개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기록이라는 것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사직 구장에서 홈런을 친다는 것은 그만큼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대호와 자주 비교가 되는 김태균을 예로 들자면, 그는 지난 3년 동안 304경기에 출장해 67개의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그 중 42개가 홈(대전 혹은 청주구장)에서 기록한 것으로 모든 선수들 가운데 홈경기 홈런 1위입니다. 반대로 원정에서는 25개에 그쳤죠. 이대호는 358경기에서 71홈런을 기록 중이고 그 중 34개를 홈에서, 나머지 37개를 원정에서 쏘아 올렸습니다. 원정경기 홈런 1위가 바로 이대호입니다.
위에서 나열한 사실들은 사직구장이 얼마나 타자에게 불리한 곳인가를 잘 나타내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직 구장에서 2006년의 ‘트리플 크라운’을 비롯하여 정상급 타격 실력을 뽐내고 있는 이대호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죠.
이대호는 홈(.319/.425/.547)과 원정(.303/.401/.530)을 가리는 선수가 아닙니다. 우완 투수를 상대할 때(.310/.416/.527)도 좌완을 상대할 때(.312/.404/.575)만큼이나 좋은 타격을 보여주는 매우 드문 선수 가운데 하나입니다.(타율/출루율/장타율)
또한 1루수로 출장할 때(.300/.408/.535)나 지명타자로 출장할 때(.321/.433/.506), 그리고 3루수로 나설 때(.318/.413/.551), 어떤 포지션으로 출장하든 그에 관계없이 꾸준한 타격을 자랑합니다. 이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선수 정말 드뭅니다.
주자가 없을 때(.292/.379/.524)보다 주자가 있을 때(.329/.443/.552)의 성적이 더 좋습니다. 주자가 득점권에 출루해 있을 때(.321/.461/.549)는 말할 것도 없지요. 특히 그의 홈런포 가운데 절반은 동점이거나 1점차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천금 같은 역전 홈런입니다.
위의 세 단락에서 나열한 기록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만큼 이대호가 꾸준하면서도 좋은 타자라는 뜻이죠. 이래도 이대호를 욕하시겠습니까? 툭하면 “이대호, 넌 글러먹었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이대호는 여러분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뚱뚱한’ 야구선수입니다. 하지만 그 이대호는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타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만한 4번 타자는 김동주를 제외하곤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카이져 김홍석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PS. 우리나라에서 가장 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은 잠실구장입니다. 각 팀 감독들이 김동주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구요, 김현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두산은 올 시즌 총 104개의 홈런을 터뜨렸는데요, 그 중 홈에서 기록한 것은 29개에 불과합니다. ‘김현수나 김동주가 삼성이나 한화 소속이었다면’하는 상상을 가끔은 해보게 되는 이유지요.(롯데는 홈-41개, 원정-62개)